소망
"이런 아픈 과거를 내놓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너무 많이 아프니까, 이런 아픔을 여러분과 우리 후손들은 다시는 당하지 않아야 하니까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그러니 제발 여러분은 우리들이 당한 역사를 잊지 말고 잘 기억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일본군'위안부'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82세)가 지난 2월 4일, 851차 수요시위에서 하신 발언이다.
길 할머니는 2002년에서부터야 외부에 얼굴을 드러내 자신이 일본군'위안부'피해자였다고 밝히고, 일본정부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부끄러운 과거'라는 멍에를 지고, 죄인처럼 숨죽여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 젊은 여성들을 만나고 나서 제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무 관계도 없는 저 젊은 여성들이 이렇게 우리 문제를 위해서 열심히 하는데, 피해자인 내가 앞장서야 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어디든지 찾아다니고 있습니다."길 할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우리 역사를, 우리가 겪은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그래서 전쟁을 막아야 하고, 설사 전쟁을 겪더라도 우리처럼 심하게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라고 한다.
삶의자리
일본군'위안부'였던 여성들은 식민지 나라 조선에서 태어나 침략국이었던 일본군대의 성노예로서'군수품보다 못한존재"로, '짐승처럼'혹은 군인들의 성욕처리를 위한'공중변소'로 취급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들의 삶은 진정한 해방이 아니었다. 조롱과 차별이 기다리고 있었고 가족과 고향으로부터, 그들의 국가로부터 침묵을 강요받았다. 그녀들에게 돌아온 것은 손가락질과 냉대였으며, 이러한'위안부'후유증은 그녀들의 삶을 우리 사회의 가장 차가운 곳, 극심한 가난과 소외로 내몰았다.
반세기가 지나고 그녀들의 삶의 자리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침묵을 깨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들과 연고가 전혀 없었던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내민 손을 할머니들이 믿고 잡은 것이다. 할머니들은 그 여성들과 함께 부끄럽다 손가락질하고 차별하던 한국사회를 꾸짖었고, 변화시켜 갔다. 아시아의 피해자들에게도 용기를 내서 일본의 죄를 고발하라고 격려하며 손을 내밀었고, 사죄와 배상실현을 위해 유엔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다부지게 돌아다니는 여성인권운동가가 되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한 수요시위가 17년을 넘고 856차가 되도록 할머니들은 가장 적극적인 시위꾼이 되어있다.
기억과 교육
그런데 일본정부는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도 사죄와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야스쿠니 신사에서 전범자들을 추모하며 다시 전쟁을 꿈꾸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 전쟁에서 여성들은 똑같은 피해는 계속 입고 있다. 그래서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은 더 절박하게"다시는 우리와 같은 희생을 반복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다행히 할머니들의 소망대로, 그녀들이 당한 역사를 잊지 않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교실에서, 삶의 현장에서 실천이 이뤄지고 있다. 자료수집과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교재 개발활동도 진행되고 있다. 다시는 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 위한 진상규명과 법적 책임 규명활동도 진행되고 있다. 일본 도쿄에는 일본여성들이 힘을 모아'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을 만들어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에게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경험을 기억하고 교육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정대협이 서울시로부터 서대문독립공원 작은 모퉁이 땅을 제공받고'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지난 3월 8일 착공식을 개최하여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일에 어린아이부터 학생, 노동자, 수녀, 해외교포, 일본시민 등이 성금을 모아 보내고 있다.
우리가 희망
세월이 흐르고 있다. 전쟁 후 반세기가 훌쩍 지나고,"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살아보고 싶다"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은 이제 대부분 80~95세의 할머니가 되었다. 이미 고인이 되어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여성들의 숫자도 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우리들에게'고인'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들은 우리의 목소리 속에, 우리의 글 속에,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 속에, 박물관에서 기억되고 살아있기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이 땅에서 전쟁을 중단시키고, 여성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할 것이다.
그 일을 누가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여러분이 우리의 희망이고 꿈입니다. 우리 늙은이들은 힘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니까 우리도 힘이 납니다. 역사는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잊으면 안됩니다. 역사는, 진실은 제대로 밝혀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교육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는 지켜지는 것이고, 지난 역사가 잘못했던 것을 다시 반복 안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힘이고 희망입니다. 그러니 계속 힘써 주세요.(851차 수요시위에서)"
할머니의 소망이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