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학기에 미국 코넬대학에서'동아시아 역사분쟁'을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수강생들은 한국계 미국인, 혹은 조기 유학와 코넬대학에 개설된 고급 수준의 한국어 강좌를 수료하거나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은 한국인 학생들이었다.
강의는 우리가 7대 현안이라고 부르는 주제들에 대해 9주에 걸쳐 강의하고, 이러한 역사문제의 해결 전망을 이론과 실천 양 측면에서 2주 동안 살펴보는 것으로 구성하였다. 마지막으로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주제를 정해 발표하는 시간을 2주에 걸쳐 가졌다. 학생들이 정한 주제는'동해 / 일본해, 대조되는 논리 그리고 장래를 위한 전략','일본이 지양하는 과거, 일본이 지향하는 미래','고조선의 성립과 발전',' 명성왕후에 대한 재평가와 연구동향',' 안용복의 도일활동'등 이었다.
학기를 시작하면서 매주 강의와 관련해서 읽어야 할 최소 2개 이상의 글 목록을 나눠 주고 그에 대한 감상문을 3페이지 내외로 작성하여 강의 시작 전에 제출하게 하였는데, 학생들은 자기가 쓴 글에 대해 최소한 다음 강의 시간에는 논평을 해 주기를 원했다. 학기 말에 강의를 끝내고 성적을 산출할 때 제출한 레포트를 읽어보고 성적에 반영할 뿐 학생들에게 피드 백을 해주지 않았던 한국의 관행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는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강의를 하는 입장에서는 수고롭기 그지없지만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었다.
강의는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쟁점들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각자의 의견들을 나누는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레포트나 토론을 통해 드러난 학생들의 의견 중에는 한국사회의 과잉 민족주의 경향에 대한 우려, 일본정부와 사회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과 활동에 비교하여 우리의 미흡한 대응 등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넬대의 동아시아 문고인 Wason Collection의 장서만 보더라도 중국본이 약 20만여 권, 일본어본이 약 10여만 권인데 반해 한국본은 1만여 권인 현실이 보여주듯이, 우리보다 앞서 서구의 관심을 받았거나 일찍부터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데 나섰던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알려진 정보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은 데서 일면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나 사회의 노력이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생각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런 점은 독도와 동해 표기에 관한 한·일의 입장에 대해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문건과 우리 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반박문 등을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확인되었다. 즉 우리가 단지 민족주의적인 감정만으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역사적인 맥락이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에서 심각한 모순이 있다는 측면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동해 표기 문제와 같은 불요불급한 문제(?)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는 것은 민족주의적 감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있던 학생의 경우, 이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입장을 상세히 검토한 후 일반적인 바다이름의 표기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일본해 표기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기도 했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역사분쟁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둔 논리적인 접근이야말로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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