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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1년까지 일본은 울릉도·독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해 -
o 일본 메이지 정부 시기인 1881년 당시 외무성 관료인 기타자와 세이세이(北澤正誠)가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에 대해 6~19세기까지 일본 국내ㆍ외 기록을 집대성한 뒤 이를 분석, 외무성에 보고 한 『竹島考證』(죽도고증)을 완역, 『독도자료집Ⅱ』로 펴냈다.
o 『竹島考證』은 그동안 우리나라 독도 연구자들 사이에 단편적으로만 내용이 알려져 오다 전체 내용이 영인본과 함께 번역돼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o 상·중·하 3권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상권은 죽도(竹島) 즉 울릉도에 대해 일본, 조선, 중국(명나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문헌을 중심으로 영유권에 대한 한일 양국의 역사적 기록을 서술하고 있으며, 중권은 1693년 울릉도ㆍ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하여 인정받게 되는 안용복의 도일 활동과 관련 쓰시마 번주와 부산 동래왜관이 주고받은 20여 통의 서신을 담고 있다.
o 하권은 1830년대에 있었던 일본인의 ‘독도도해(竹島渡海)’ 및 1877년경의 ‘송도개척원(松島開拓願)’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하여 메이지13년(1880) 일본 군함 아마기함의 승무원 미후라 시게사토(三浦重鄕) 등이 ‘송도(松島)’를 측량한 후 이 ‘송도(松島)’가 예전의 울릉도이고 그 북쪽에 있는 작은 암석이 ‘죽도(竹島)’라고 한 후 이를 확정하면서 논쟁을 종결하고 있다.
o 즉 일본정부가 메이지13년(1880)까지도 동해상의 죽도ㆍ송도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지명을 혼동하는 등 오락가락 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일본이 독도에 대해 한때 ‘무주지 선점론’을 주장하다가 고유영토설로 말을 바꾼 사실을 반박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o 바른역사기획단 발행(2006년 5월)
※ 시중에서 구입 가능(정가 4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