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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카이로 선언에 어떻게 '자유 독립'을 관철시켰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행사들이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현재 우리가 대한민국이란 국가에서, 국민이 국가의 주권을 행사하고 민주공화제 체제에서 살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이를 기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카이로회의에서 전후 ‘한국의 자유 독립’을 보장받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영·중 3국의 영수들이 회의를 하고, 회의에서 합의한 내용을 카이로선언으로 발표했다. 이 카이로선언에 “위의 3대국은 한국인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한국을 자유 독립되게 할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는 일본이 패망하면 한국은 자유 독립시킨다는 것으로 한국민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후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중요한 선언이었다.
카이로회의에서 전후 한국의 자유 독립을 보장하였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카이로선언에 한국의 자유 독립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한국의 자유 독립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카이로회의에서 한국의 자유 독립을 제안한 것은 장개석이었고, 장개석을 움직인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카이로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장개석을 움직여서 얻어낸 성과였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