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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_華商의_해관_습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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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 華商의 仁川海關

  • 습격사건 이헌주(국사편찬위원회)
    • 1. 머리말
    • 2. 인천 거류 華商들의 인천해관 습격사건
      • 1) 인천해관 습격사건의 진행과정
      • 2) 사건의 배경과 성격
    • 3. 사건의 처리 과정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적용
    • 4. 맺음말

1. 머리말

1886년 1월 인천해관의 서양인 海關員과 조선인 巡監이 청국 군함을 타고 온 華商 呂裕 生을 홍삼 밀수혐의로 연행하여 심문하다가 소문을 듣고 몰려든 수십 명의 華商들이 해관에 난입하여 해관원들을 구타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외국인이 주재국의 국가기관을 습격하여 통치의 근간이 되는 공권력을 무력화시켰다 는 점에 심각성이 있었고,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치면서 조선에 대해 사실상의 식민지 지배를 추구했던 청국 정부와 그 위세에 가탁한 청국인들이 조선에서 자행했던 횡포가 적나 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1) 이 사건에 대해서는 청국이 조선해관의 인사권과 운영권을 통제함으로써 조선해관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가는 가운데 이를 기화로 한 조선해관에 대한 청국인의 만연한 횡포를 보여주 는 사례로 간략히 소개한다거나2), 1882년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체결 이후 청국 측이 제2 조의 常務委員裁判權이라는 변형된 領事裁判權을 행사하였던 실상이 잘 드러난 대표적 사건 의 하나로 개략적으로 소개한 수준에 머물렀을 뿐 사건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까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3) 본 논문에서는 1886년 발생한 개항장 인천에 거류하는 華商들의 조선해관 습격사건의 내 용과 사건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고, 사건의 발생 배경과 성격 등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이 사건은 무역장정에서 금지되어 있는 화상에 의한 홍삼 밀무역이 이뤄졌고, 이들이 밀수 품의 수송 수단으로 민간 선박이 아닌 청국 군함을 이용함으로써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얽 1) 朴奉植은 1885년 10월부터 1889년 11월까지 朝鮮海關 總稅務司를 지냈던 메릴(H. F. Merrill, 墨賢理)의 書 簡 중 일부를 선별적으로 다루었는데 청국해관 총세무사 하트(Robert Hart, 赫德)에게 보낸 1886년 2월 3일 자 편지에 나타난 인천해관사건에 대한 메릴의 시각과 역할을 소개한 바 있다(박봉식, 1969, 「‘메릴’ 書簡」  김재원박사회갑기념논총, 을유문화사, 365~367쪽). 2) 具仙姬, 1999, 韓國近代 對淸政策史 硏究, 혜안, 209~210쪽. 3) 정태섭․ 한성민, 2007, 「開港 후(1882~1894) 淸國의 治外法權 행사와 朝鮮의 대응」 한국근현대사연구 43, 25~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