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료,지리,고고학 검증]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은 한반도 서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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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입체 사료학: 사료(사서,문헌) 해석을 중심(근간)으로 고대 지리학, 고고학, 서지학을 참조/고려하는 사료학(사료 해석학)
【 사마천-사기, 한서. 후한서 】BC 128년 예=동예=예맥의 임금 남여가
한나라에 항복해서 "한무제가 연나라(하북성)과 제나라(산동성) 사이에 설치한 '창해군'은
예=동예=예맥의 영토에 설치되었으며, 위만조선 멸망시키려고 창해군에서 위만조선간 도로 건설로 인해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의 창해군 지역이 소란스러워졌는데, 이는 현재의 하북성 창주시 지역에 해당된다
'후한서 동이열전' 예濊 에
하북성 창주시에 있는 예의 서쪽에 낙랑군이 있다(濊 西至樂浪)고 했으니
하북성 중부에 낙랑군이 있어야 되기에 한반도 북한 평양은 낙랑군이 될 수 없다
(낙랑군의 위치는 하북성 중부 형수시衡水市 북부일 수 밖에 없다)
■ [논쟁 쟁점 ] 역사학계의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내용
[ 내용 ] 백제 '한성=하남 위례성'이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병도/신석호 주장)
(1) 삼국사기 지리지의 '고구려 평양성은 본래 한나라 낙랑군(平壤城, 漢樂浪郡也)'의 내용과
1920년대 평양 인근 고분에서 일제 식민사학들이 발굴한 '낙랑' 명문 봉니,'낙랑태수 장량' 명문 등을
근거로 낙랑군 위치를 한반도 평양으로 확정했다
(2) 낙랑군 남쪽의 대방군을 황해도와 서울 한강 북쪽으로 주장하고
낙랑군,대방군 남쪽인 백제 한성(漢城, 하남 위례성)을 서울 한강 남쪽에 있다고 주장했다
(3) 삼국사기 지리지의 '신라 한산주(漢山州)는 본래 백제의 한성(漢城)' 이니,
신라 한산주는 고려·조선의 광주(廣州)이므로, 백제 한성(漢城)은 '송파'나 '하남'에 있을 수 밖에 없다
(4) 1925년 대홍수로 인해 풍납토성에서 청동 초두(왕실 제기) 등 귀중한 유물이 발견되었으니
서울 송파구 풍남토성을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으로 결정했다
>>> 주장의 핵심 근거 >>> 서울 송파구 풍남토성을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 으로 결정한 핵심 근거
낙랑군은 북한 평양이고, 대방군은 항해도와 한강 북쪽이니
낙랑군/대방군 남쪽의 서울 송파구 풍남토성이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이 될 수 밖에 없다
[ 반론 ]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이 서울 송파구 풍남토성이 될 수 없는 내용
(1) 근초고왕이 AD 371년 하남 위례성에서 한성(漢成)으로 도성(서울)을 옮겼기에
하남위례성과 한성(漢城)은 같은 장소가 아니라 다른 지역이다( 삼국사기:近肖古王 二十六年 移都漢山.)
(2) 삼국사기에 낙랑군 서쪽에 백제 위례성이 있으니((溫祚王 十三年 夏五月, 王謂臣下曰, “國家東有樂浪".)
낙랑군은 한반도 북한 평양이 될 수 없다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라면 백제 위례성은 서해바다가 된다)
(3) 삼국사기의 '고구려 평양성은 본래 한나라 낙랑군(平壤城, 漢樂浪郡也)'내용 반박이다
해당 내용의 근거는 후한서 동옥저의 장회태자 주석 '동옥저 서부지역에 왕험성(王險城)이 있다'는 내용이다
위만조선의 도성(서울) 왕험성(王險城) 은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낙랑군이 되었다
고구려 평양성은 동옥저 서부 지역에 있기에 낙랑군은 북한 평양이 될 수 없다
(東沃沮 在高句驪 蓋馬大山之東. 其山在今平壤城西. 平壤卽王險城也.)
(4) 고고학 발굴 내용은 최신 상황이 반영되어야 한다
1990~92년에 평양 부근 3000여기의 고분을 발굴 조사 했는데, 한나라 낙랑군 유물이 하나도 출토되지 않았으니
유물 조작이 확인된 1920년대의 일제 식민사학자의 발굴 내용을 근거로 한 낙랑군 평양설은 폐기되어야 한다
(5) 낙랑군이 평양이라면 낙랑군 서쪽의 하북 위례성은 평양 인근의 서해 바다나 해안가가 된다
하북위레성 남쪽의 강건너에 하남위례성이 있으니(삼국사기 온조왕 내용)
하남 위례성 위치는 황해남도 북부 안악군(安岳郡)이 될 수 밖에 없으니
하남위례성인 백제 한성(韓城)은 송파구 풍납토성이 될 수 없다
(6) 백제 한성이 송파나 광주라는 삼국사기 지리지 내용은 삼국시대의 정확한 위치를 설명한 것이 아니다
삼국사기 지리지 내용은 김부식 등 고려 중기 학자들의 지리 인식 내용이기에
반드시 비판적으로 검토를 해서 지리를 비정해야 한다(무조건 확신은 논리학의 전제의 오류로 궤변이다)
한백겸 정약용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주장인 고려/조서 시대 건축된 기자사당과 온조사당을 근거로 한
'북한 평양 기자조선설'과 '천안시 직산 위례성설'은 즉시 폐기되어야 한다
■ 백제 초기 하북 위례성, 하남 위례성 위치
(낙랑군의 위치가 하북성 중부 형수시 지역이면,
낙랑군 서쪽에 있는 위례성과 요서군은 석가장시 부근이어야 한다)
(1)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서
한나라 산(한산) 부아악에 올라 도읍지를 물색했고,
강 남쪽에 북으로 한수가 띠 처럼 두러 쌓인 위례성에 십제를 건국했다
한나라 강(한수)이 북으로 띠(帶)처럼 둘러 쌓였으니
낙랑군 남쪽의 대수( 帶水)다 대수 남쪽에 하북 위례성이 있다(惟此河南之地, 北帶漢水)
(2)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서
온조왕이 마수산에 마수성을 쌓고, 부아악에 항아리 모양의 울타리 병산책을 만들었고
(溫祚王 八年 秋七月, 築馬首城, 竪瓶山柵.)
하북위례성 동쪽에 낙랑군이 있다고 했다(溫祚王 十三年 夏五月, 王謂臣下曰, “國家東有樂浪".)
하북 위례성은 낙랑군 서쪽에 있고, 한서지리지 요서군 유성현 서남쪽의 마수산 부근에 있다
(한서 지리지 遼西郡 栁城, 馬首山在西南. )
(3)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온조왕이 하북 위례성 남쪽의 한나라 강을 건너 하남 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溫祚王 十三年 夏五月, 王謂臣下曰, “予昨出巡, 觀漢水之南, 圡壤膏腴, 冝都於彼, 以圖久安之計.”)
※주) 하남 위례성 천도 2개월 후에 한성(漢城) 백성들을 나누어 하북 위례성으로 옮겼기에
한성(漢城)은 고유명사인 한성(漢城)이 아니라 '일반 명사인 한나라 영토의 성'으로 하남위례성이다
(4) 따라서
예=동예=예맥에 설치된 연나라(하북성)과 제나라(산동성) 사이의 창해군(창주시) 서쪽에 낙랑군이 있다
낙랑군 서쪽의 요서군 남부에 하북 위례성 있으니
하북 위례성의 위치는 석가장시 남쪽으로 말머리 모양의 마수산이 있는 형대시 융요현(隆堯縣) 부근이다
하북 위례성 남쪽의 큰강을 건너서 하남 위례성이 있으니
하남 위례성의 위치는 융요현 남동쪽의 춘추시대 황하인 부양하 남쪽으로 형대시 거록현(巨鹿縣) 부근이다
■ 마한 병합후 온조왕이 월지국으로 천도(도성 이동)
(1)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온조왕이 AD 8년에 마한을 병합하였지만 월지국으로 천도한 기록은 없다
마한 병합전에는 26년 동안 2년에 한번꼴로 말갈 또는 낙랑군이 등장했는데
(북쪽의 말갈이 7번 침입하였고, 동쪽의 낙랑군이 6번 기록되어 있다)
마한 병합후에는 20년 동안 낙랑군은 등장하지 않고, 말갈은 14년 후에 2번 침입했다
따라서
위례성 부근의 말갈과 낙랑이 마한 병합후에 거의 사라진 것은(20년 동안 말갈만 2번 등장)
마한 병합후에 마한의 도읍인 월지국(목지국)으로 온조왕이 도성을 옮겼기 때문이다
※주) [삼국지 위서 동이전] 대방군(형수시) 남쪽에 삼한이 있습니다(韓在帶方之南)
월지국(목지국)의 위치는 강소성 서북부의 서주시(徐州市) 고루구鼓樓區)로
하천(정만하丁萬河,서운신하徐雲新河,황하고도廢黃河)의 반달형(月支國의 月) 지형이 있다
(2) 서주시(徐州市)에 1~4세기 조성된 8개의 왕릉은 부여 계통의 아치형(궁륭식) 전축 고분
부여 계통의 아치형(궁륭식) 전축(벽돌) 고분에 대하여
-. 특징 : 용·봉황·연꽃 무늬 벽돌로 벽면을 장식한 독특한 '이중 아치'와 둥근 '돔형 천장' 구조
-. 부여계통 아치형 전축 고분 전파 경로 : (발생지는 북부여 왕릉) 역현(천자 금루옥의 북부여 해모수릉)
-> 졸본부여:정주시(천자 금루옥의 졸본부여릉,제후 은루옥의 주몽릉)
-> 소서노 여왕국:하간시(천자 금루옥의 소서노릉) -> 비류백제 미추홀:형수 기주시,천자 금루옥의 비류릉)
-> 온조백제 : 서주시(제후 은루옥의 온조릉) --> 온조백제 : 남경(근초고왕릉, 근구수왕릉)
-. 서주시(徐州市)의 1~4세기 아치형 전축 고분은 백제 왕릉(추정) :
토산(土山) 한묘군 총 3기(서주시 운룡구) 중에 1호분 (AD 28년경)은 온조왕 왕릉(제후급의 은루옥의 출토)
랍산(拉山) 한묘 1기(서주시 매왕구), 한왕(漢王) 전축대묘 1기(서주시 동산구 한왕진)
연화산 한묘 및 대묘 2~3기(서주시 경제기술개발구 대황산가도 일대)
■ 북부여 영토(장단경 아사달)에서 시작된 아치형(궁륭식) 전축(벽돌) 고분은 부여계통의 왕릉
(1)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은 한나라 방식 묘제가 아니라 부여 계통 왕릉 묘제
낙양에서 BC 1세기말에 '단층 아치' 묘제가 시작되었다고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이 한나라 묘제라고 하지만,
부여 지역(장단경 아사달)인 하북성 역현 지역에서
BC 3세기 후반에 완성형의 '이중 돔 아치' 왕릉이 조성되었기에 부여계통이다
장안에서 사용하는 화전옥이나 남전옥이 아닌
요령성의 수암옥으로 하북성과 서주시의 금루옥의/은루옥의를 만들었으니
한나라가 만든 것아 아니라 부여에서 만든 옥의이기에 아치형 전축고분은 부여계통의 왕릉이다
(2) 부여 계통의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의 특징
용·봉황·연꽃 무늬 벽돌로 벽면을 장식한 독특한 '이중 아치'와 둥근 '돔형 천장' 구조
(공주 무령왕릉 아치형 전축 고분 방식)
(3) 부여 계통의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의 전파경로
○ 아치형(궁륭식) 고분 전파 경로1 (비류백제를 통한 전파 경로)
역현(BC 3세기 후반, 전축아치)->정주시(BC 1세기 중반,전축 아치)->하간시(BC 1세기 말,전축 아치)
->기주시(AD 1세기 초,전축 아치)-> 무읍(AD 1세기 중반, 전축 아치)->황화시(AD 2세기 말,전축 아치)
->영산강(4세기,석축 아치)-> 큐슈(AD 5세기,석축 아치)->혼슈(AD 6세기,석축 아치)
○ 아치형(궁륭식) 고분 전파 경로2 (온조백제를 통한 전파 경로)
역현(BC 3세기 후반, 전축아치)->정주시(BC 1세기 중반,전축 아치)->하간시(BC 1세기 말,전축 아치)
->융요/거록(AD 1세기 초,전축 아치)-> 서주시(AD 1세기 중반, 전축 아치)->남경(AD 3세기,전축 아치)
-> 공주 곤지릉(6호분, 무령왕의 부친릉)/무릉왕릉(비류계, AD 6세기,전축 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