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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공동주최 광복 8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개최(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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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공동주최 <광복 8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개최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시각탈식민군정민주주의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박지향)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원장 정긍식),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원장 안도경)과 함께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이번 학술회의는 학문이 현실과의 괴리를 넘어 사회와 세계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정책 중심 연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서울대학교의 학술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탈식민군정민주주의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주제를 통해 광복 이후 한국 현대사의 구조적 전환을 복합적으로 살펴보고이 분야의 연구가 국제적인 차원에서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한국미국유럽일본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46명의 국내외 연구자가 참여하여 이틀 동안 발표와 토론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학술회의가 갖는 의의에 대해 서울대학교 유홍림 총장은 축사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정치적 양극화경제적 불평등지정학적 긴장민주주의의 후퇴 등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이번 학술회의가 과거를 되짚고 그 과정에서 얻은 성찰을 통해 오늘의 위기를 진단하고내일의 길을 찾는데 이바지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역사는 오랜 시간 동안 분열과 대립의 근거가 되어왔다며역사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 위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데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술회의가 역사를 통한 화합의 장을 여는 첫걸음이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향 이사장은 광복 이후 한반도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하지 않았다며앞을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을 안고서도 새로운 민주 국가의 미래를 개척하고자 노력했던 그 시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복합적 시각에서 고찰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나아가 단순한 학술 발표의 장을 넘어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이 교류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기조강연은 스탠포드대 스티븐 코트킨(Stephen Kotkin) 교수가스탈린과 한국계산과 계산 착오그리고 그 결과를 주제로 스탈린의 결정이 광복 후 한국 정세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코트킨 교수는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와 프리먼스폴리 국제문제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프린스턴대학교 명예교수이다주요 연구 주제는 지정학과 권위주의 체제인데스탈린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대표 저서로는스탈린권력의 역설, 1878~1928(펭귄랜덤하우스, 2014) 스탈린히틀러를 기다리며, 1929~1941(펭귄랜덤하우스, 2017)이 있으며스탈린 시리즈 제3권도 출간될 예정이다또한 거리의 시각에서 스탈린 체제를 분석한마그네틱 마운틴문명으로서의 스탈린니즘(캘리포니아대학교 출판부, 1995), 공산주의 몰락을 분석한아마겟돈을 면하다소련의 붕괴 1970-2000(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 2001),비문명적 사회: 1989년과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 (모던 라이브러리, 2009)를 집필했다코트킨 교수의 활동은 학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지정학적 위협과 관련해서 미국 국가정보위원회에 수차례 참석했으며뉴욕타임스포린 어페어스월스트리트 저널》 등 주요 언론에 기고하고 있다코트킨 교수가 스탈린 연구를 바탕으로 광복의 기쁨이 분단의 비극으로 바뀌는 광복 후의 굴곡진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재단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패널 1과 7에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흥미로운 발표도 이어진다최덕효 교수(메릴랜드대)는 <‘사건으로서의 탈식민한국 독립과 일본에의 영향>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해 즉각적으로 식민지를 상실했기 때문에 프랑스 알제리를 장기간의 식민지 전쟁 끝에 포기했던 프랑스와는 달리 제국주의 유산이 즉시 잊혔다는 통설을 패전 후 해외에서 귀환한 일본인들의 증언을 소재로 반박한다최 교수는 식민지 경험이 피해자 의식을 흔들고 제국주의적 기억상실을 깨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고 이야기될 가능성과 귀환자 기억이 포스트 식민지 화해의 새로운 대화를 열 가능성을 검토한다그 사례로 아래 귀환자 증언을 제시한다.

 

한국에서 8년간 살며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나를 설득한 것은 식민지 통치가 국가적 굴욕과 억압의 가장 참을 수 없는 형태라는 사실입니다우리는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일본인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었고일본의 패배 이후 표현한 해방의 무한한 기쁨을 [일본인들이과도한 것으로 여겼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나 셰퍼드(Hannah Shepherd) 교수(예일대)는 <항구에서의 탈식민: 1945-1947년 부산과 하카다의 관점에서>라는 주제로 부산과 후쿠오카라는 도시를 통해 제국과 그 붕괴냉전의 시작이라는 20세기 동아시아사의 복잡한 흐름을 지역사적 차원에서 살펴본다동시에 탈식민의 개념을 공간적 구조와 일상적 삶의 층위에서 재해석하며제국의 흔적이 여전히 현재를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셰퍼드 교수는 탈식민을 식민지 지배가 끝났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제국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광복과 패전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떻게 삶을 변화시켰고 그 유산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다룬다.

 

바락 쿠슈너(Barak Kushner) 교수(캠브리지대)는 <승리의 피해자들전후 동아시아의 권력과 전략>이라는 주제로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복무했던 한국인들이 광복 후에는 어떤 위치에 놓였는지를 조명한다이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일본 패전 후 연합군과 중화권한국 등지에서 전범으로 재판을 받거나 새로운 국가의 기관에 흡수되기도 했다쿠슈너는 이들을 통해 단순한 피해자-가해자 구도를 넘어서 제국의 잔재와 탈식민의 모순복잡한 현실을 드러낸다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물질적·제도적 유산이 광복 직후 한국 군대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 당시 정부의 잔혹한 진압은 식민지 시기의 폭력적 군사 관행과 소속감이 광복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진압을 주도한 일부 장교들은 일본 군복을 입었거나 일본 군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노무라 마사루(外村大도쿄대 교수는 역사 인식의 차이는 왜 생기는가약한 제국의 강한 동원의 영향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한일 양국이 공동 역사 인식 확립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여전히 대립적 견해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그는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식민지 지배의 실태가 어떻게 인식되고 기억되며어떤 방식으로 역사로 서술되는지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어떤 인식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국과 일본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일본 제국의 식민지 지배가 매우 강력했다는 공통된 인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민중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할 정도로 강력하지 못했으며오히려 전시 동원이 강권적이었다는 것이다당시 조선의 행정당국은 주민 관리가 불완전했고노무 동원을 위한 노동력 조사나 등록도 이루어지지 않아 징용을 위한 행정 절차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결국 조선의 행정당국은 강권적으로 사람을 모을 수밖에 없었고이 과정에서 유괴나 사기적 모집 등 법적 일탈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