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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mad Nasikun
안중근은 평화와 평등이라는 지붕 아래 하나의 대가족으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집을 맨 처음 짓기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동아시아가 서방에 의해 식민지가 된 뒤 빠른 회복과 발전을 위해 동아시아가 평화를 되찾기를 열망했다.
아시아의 강국인 한·중·일 3국은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싸우지 말고 단합해야 한다. 한·중·일의 통합은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합에 대해 매우 강한 비전을 갖고 있었던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이라는 글에서 범아시아주의 사상을 나타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천황에게 사형 집행을 2주 늦춰달라고 부탁한 안중근의 요청이 거절되어 이 글은 미완의 원고로 남았다.
동아시아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안중근은 서방의 지배 아래 보낸 무참한 식민의 세월로부터 회복할 수 있도록 동아시아 지역의 협력을 제안했다.
범아시아주의에 대한 안중근의 관점
안중근은 서양의 식민 지배 정책에 맞서기 위해 동아시아가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통합은 어느 한 국가의 정복이 아니라 한·중·일 3국의 평등을 기초로 해야 한다.
한·중·일은 서로의 독립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서방 세력과의 오랜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조국과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협력을 향한 그의 열정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컸다. 이는 1909년 만주 하얼빈역 승강장에서 일본 제국의 초대 총리대신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로 결정했을 때 실제로 증명되었다. 암살을 감행한 이후 자신이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알고 있었지만 그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도였던 그는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것이 동양의 평화를 증진시키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굳게 믿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이유
총리대신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그의 행동은 크게 고통 받고 있던 조선인들의 감정의 표출이었다. 범아시아주의자였던 그는 이토 히로부미가 전 세계와 일본 천황이 ‘조선인들이 일본의 보호를 받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도록 속임수를 쓰고 있고, 조선이 평화로우며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약간의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믿었다.
안중근은 세계와 일본 천황이 조선을 바라보는 이러한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야 했고, 이를 증명해야 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면 한반도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만천하가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조선에는 평화가 없었으며, 조선은 메이지 천황의 보호국이 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안중근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무너뜨린 장본인은 이토 히로부미라고 비난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통감으로 있던 1905년과 1907년에 고종 황제에게 강제로 조약을 체결하게 한 뒤 1907년 그의 통치권을 뺏고 퇴위시킴으로써 조선의 주권을 침탈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을 없애려는 야심 때문에 조선의 독립을 가로막았다. 독립운동가들이 반격하려고 하자 이토 히로부미는 이들을 전멸시키라고 지시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그 시기에 수천 명의 조선인들이 목숨을 잃은 데 책임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당시 안중근은 동아시아가 서로를 정복하려 하지 말고 단결하여 식민지를 넓혀가는 서방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야심은 안중근의 시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고, 따라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통합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안중근에게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 조선의 비극과 끔직한 상황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수단이었다. 또한 이웃인 한·중·일 3국이 평등한 입장에서 화합하며 공존하는 범아시아를 향한 자신의 열망을 실현시키는 도구이기도 했다.
현 시대를 향한 안중근의 꿈
한·중·일과 아세안 국가들이 강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세안+3은 지역 발전 증진을 위해 아시아 국가들이 오늘날 만들어낸 지역 협력체이다.
안중근의 사상의 측면에서 볼 때 이 기구는 그가 이루지 못한 목표를 대변해 줄 수 있다. 현재 한·중·일 3국은 더 이상 서방에 (물리적으로) 맞서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급속한 발전을 위해 국가 간 상호 이익 증진을 목적으로 관계를 강화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
안중근이 아세안+3을 만드는 데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동아시아 평화와 협력을 향한 그의 사상은 분명히 아세안과 한중일 지도자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안중근은 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스스로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그의 투쟁만으로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데 충분치 않았을지 모른다. 또한 그의 주장이 당시에는 동아시아의 협력을 도모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인들과 많은 한국인들에게 그의 사상은 평등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서로 협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그의 <동양평화론>은 동아시아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각국의 협력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한마디로 말해, 안중근은 동아시아 공동체에게 가장 알맞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초석을 놓은 선구자였다. 그가 혼자서 이 집을 짓지는 않았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이 집은 시작도 못했거나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지어졌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