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시내에 전시된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 심벌(202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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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성립 100년과 중국의 ‘대국화’
한국과 중국은 정치체제가 다르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나, 공산당이 곧 국가이다. 중국공산당은 중국 대륙의 집권 정당이고 법률적으로는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국가의 최고 권력 기관이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공산당에 집중돼 있다. 「인민일보人民日报(2021.6.30)」에 의하면, 공산당원은 창당 당시(1921년) 50명에서 현재(2021년 6월 5일 기준) 9,514만 8,000명까지 증가하였고, 당의 기층조직은 총 486만 4,000개이다. 중국공산당은 성립 이후 1, 2차 국공내전國共內戰(1927~1936년, 1946~1949년)을 겪었지만 세계 정당사에 흔치 않은 장장 100년 동안 집권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신중국은 마오쩌둥 시기 1971년 대만을 대신하여 UN 안보리의 상임이사국 회원국이 되면서 국제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1980년대 덩샤오핑 시기의 개혁개방정책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의 밑거름이 되었다. 1990년대 장쩌민 시기의 중국은 구소련의 붕괴에 경각심을 가지면서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하였다. 2000년대 후진타오 시기의 중국은 강대국 반열에 오르며 애국주의, 중화민족주의,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건설 이념을 토대로 대외 확장을 도모했다. 그리고 2010년대 시진핑 시기, 중국의 ‘대국화’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國夢, ‘일대일로’, ‘신형국제관계’와 ‘인류운명공동체’ 건설 등의 대외전략을 통해 동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팽창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도 동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대만, 남중국해,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시진핑 정부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오히려 시진핑 정부는 2013년 공식 출범 이래 미국과의 관계를 신형대국관계(이후 신형국제관계)로 설정하였고, 특히 제19차 당대회(2017년)에서는 국가 주석의 임기 관련 ‘헌법 수정’을 통하여 시 주석의 3연임(2022~)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정비를 마쳤다. 향후 상당 기간 ‘시진핑·신시대’ 이념과 정책을 핵심으로 한 중국의 대외 전략이 미·중 관계와 동아시아는 물론,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재단은 이와 같은 중국의 정치 일정을 감안하여, 지난 10월 15일 ‘중국 공산당 성립 100년 계기, 중국의 대국화와 한중관계’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가졌다. 중국의 ‘대국화’ 과정에서 한반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한반도에 관한 지정학적 인식의 ‘일관성’과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른 ‘일탈성’의 맥을 주로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과 흡사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대만 및 베트남 현지 전문가의 중국 연구 사례를 통해 대중 정책의 교훈을 탐색해 보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미·중 화상 정상회담(2021.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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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국화’와 한반도 (역사)인식
중국 지도자의 집권 시기별 ‘대국화’에 수반된 한반도 인식과 한중관계를 요약하면 시기별 특징을 알 수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마오쩌둥 집권기(1949~1971) 중국이 가진 한반도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례로 한국전쟁 발발 이후 중공의 ‘항미원조’ 전쟁 결정과 참전 사례를 짚었다. 그는 한반도는 전통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냉전 시기 동북아 지역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의 충돌이 나타나는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어서 이문기 세종대 교수는 1970년대 초 미-중 데탕트 시기부터 1992년 한중수교까지 약 20년간 중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 과정을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의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그는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을 위한 조건이 가장 성숙했던 1990년대 초, 북한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성급하게 추진된 한중수교는 오히려 한반도를 ‘냉전의 섬’으로 남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평화체제 형성의 가장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중수교가 다시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는 중국이 대외적으로 큰 변곡점을 맞은 장쩌민-후진타오 집권기 중국의 ‘강대국화’에 뒤따른 한반도 인식을 재조명했다. 그는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선린외교의 대상인 동시에 강대국화 전략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하며, 중국의 국력 팽창이 한반도에 미친 ‘동북공정’을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또한, 당시에 양국이 동북공정의 갈등 요인을 단지 봉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힘든 협상을 거쳐서라도 근원적 해결에 집중했더라면, 오히려 갈등 해소 경험을 통해 오늘날 양국 관계의 기초를 다지고 내실을 도모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중 전략 경쟁과 대만, 베트남, 그리고 한반도
민병원 이화여대 교수는 ‘시진핑 시기, 미국의 대중국 이미지’를 국제정치이론의 시각에서 다루었다. 그는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역량이 미국을 넘어서기에는 미흡하지만, 적어도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흔들어놓을 수 있는 ‘훼방꾼spoiler’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질서에 적응하면서 중국이 적절한 책임을 질 것이라는 ‘지지자supporter’의 이미지와 더불어, 반대로 이를 활용하여 국력을 극대화하면서도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하지 않으려는 ‘기피자shirker’의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중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우쟈천周嘉辰 대만국립대 교수는 현재 미·중 갈등의 최전선인 양안 관계兩岸關係의 역사와 현실을 대만의 입장에서 분석하여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을 추려냈다. 그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미국의 대중 정책(One China Policy)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고, 대만 문제는 미국의 대중 정책의 지렛대이자 그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고 정의했다. 다만, 미국 내 싱크탱크가 미국의 대만 문제 개입에 ‘유보적’ 입장을 건의하는 이유는, 대만 수복에 대한 중국 지도자의 강한 의지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1950년 한반도 위기 당시 맥아더 장군과 트루먼 정부 사이의 논쟁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며, 바이든 정부가 대만을 방어하고 지지한다고 하지만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 외, 민족주의와 정권 유지를 위한 중국 내 정치 요인도 양안 관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우쟈천 교수의 발표에 지정토론자로 나선 장홍유엔張弘遠 대만치리과기대 교수는 ‘민족주의’는 시진핑 정부에서도 주요 이데올로기이고 시 주석의 3연임 가능 및 권력 체제 공고화 역할을 하지만, 시 주석이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 이유로 시 주석은 ‘빈곤 퇴치’와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을 통해 당내 지위를 이미 확립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천스수이TRAN THI THUY 베트남사회과학원 교수는 동남아의 관문 역할을 하는 베트남은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중·미의 전략이 교차하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면서, 베트남을 둘러싼 중·미의 전략 경쟁과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다루었다. 그는 베트남은 중·미 양국의 군사 집단이나 연맹에 참가하지 않고, 어느 나라도 베트남에 군사 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특정 국가에 의지하지 않고 특정 국가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어느 한쪽에 편승하기보다는 자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외교 정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베트남이 미국과 과거의 역사적 원한을 풀어 여러 분야에서 전면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협력하며 투쟁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반도의 경우에도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정토론자 응이엔 빈 꽝Nguyen Vinh Quang 베트남-중국우호협회 부주석은, 한반도는 분단 상황이므로 (통일된) 베트남의 외교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고, 다만 2018년의 ‘판문점 선언’은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 지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연구과제
회의 말미에 토론자로 나선 정지융郑继永 복단대 교수, 왕준셩王俊生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청샤오허成晓河 중국인민대 교수는 저우쟈천 교수가 언급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에 관한 중국 측 입장을 밝혔다. 3인의 중국 학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미국은 실제로 전략적 선線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은 끊임없이 선을 긋는 미국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으며, 미국이 행동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대만은 현재 상황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중에서 정지융 교수는 중국이 직면한 중·미 갈등, 대만 문제, 중국의 한반도 인식에는 지도자 개인의 생각, 태도, 정책보다, 그들이 처한 역사적 환경과 정치적 조건에 따라 ‘민의民意’가 더 크게 좌우한다고 밝혔다.
영상으로 진행된 줌 회의를 마치니, 회의 말미에 정 교수가 던진 ‘현재 중국 지도자가 처한 역사적 환경과 정치적 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생각건대 전자는 ‘시진핑·신시대’, 후자는 ‘중화민족의 부흥’으로 응축된다. 그렇다면 제19차 공산당대회(2017)에서 채택하고 당장黨章에도 수록한 ‘시진핑·신시대’는 언제까지인지 더 궁금해졌다. 취칭산曲青山 중국공산당중앙당사 문헌연구원장에 의하면, ‘시진핑·신시대’의 시간적 구간은 2012년부터 2050년까지이다. 취 원장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과 신중국 건국 100년, 소위 중국이 말하는 ‘두 개의 100년’의 역사를 ‘혁명→건설→개혁→부흥’으로 구분하고 그 구간의 분투 목표를 ‘구국→흥국→부국→강국’의 4단계로 정의하면서 ‘시진핑·신시대’는 ‘강국’을 위해 분투 중이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단계라고 했다.
| 시기 | 핵심어 | 분투 목표 |
| 1921~1949 (28년) 공산당 창당~신중국 | 혁명 | 구국(救國) |
| 1949~1978 (29년) 신중국~개혁개방 | 건설 | 흥국(興國) |
| 1978~2012 (34년) 개혁개방~후진타오 정부 | 개혁 | 부국(富國) |
| 2012~2050(38년) 시진핑 정부~ | 부흥 | 강국(强國) |
그렇다면 취칭산이 정리한 시진핑·신시대가 분투 중인 ‘강국’과 ‘중국몽’ 실현을 충족하기 위한 ‘민의’는 무엇일까. 중국은 개혁개방 이래 ‘대국화’의 과도기에서 민의가 드러난 적이 있었다. 덩샤오핑 시기 개혁개방과 민주화의 정점이었던 ‘천안문 사건(1989.6.4)’을 계기로 중국 공산당은 통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장쩌민 주석은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의 인민들에게 국가의 역사와 운명을 가르침으로써 애국자 세대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장 주석이 가르치는 내용은 단순했다. 『중국의 조용한 침공』(2021, 세종)의 저자 클라이브 해밀턴에 의하면,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한 세기 동안 중국은 외국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수모를 겪었다. 당시 봉건 통치자들은 부패했지만 수많은 중국인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목숨을 내놓았다.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을 이끌고, 1949년에 나라를 해방하며 중국인은 괴롭힘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리고 1949년 공산당이 중국을 위대한 나라, 실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국이라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줄거리다. 이처럼, 시 주석도 장 주석의 애국주의 유지를 그대로 받들고 있다. 현재 중국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공산당의 통치를 정당화 하는 기층 이데올로기는 애국주의이고, 그 위에 시 주석은 위대한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민족주의 논조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6편의 한국 논문과 2편의 해외 논문이 발표되었고, 5명의 해외 학자가 토론자로 참여하여 열띤 토론을 펼쳤다. 향후 연구 과제로 남은 부분은 “중국의 대국화와 한반도에 대한 인식에는 최고 지도자의 이념과 정책보다 중국인의 민의가 중요하다.”는 중국 학자의 논리였다. 2049년까지라는 ‘시진핑·신시대’의 구간에 ‘중화민족의 부흥’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14억 중국인의 ‘민의’가 어떻게 드러날지, 그리고 한중관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아시아 주도권을 둘러싼 미·중의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면에서 베트남 학자가 한반도에 제안한 베트남의 외교 원칙 역시 새로운 연구 과제가 되었다. ‛특정 국가에 의지하지 않고 특정 국가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베트남의 외교 원칙은 언제쯤 한반도에서 실현 가능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