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주고구려비 3D 스캐닝
첨단 기술을 적용한 충주고구려비 연구
충주고구려비(국보 205호)는 1979년 충청북도 중원군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 어귀에서 발견되었다. 이 비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 비석으로 ‘高麗大王’, 신라왕을 ‘東夷寐錦’ 그리고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如兄如弟’로 기술하는 등 4세기 이후 고구려사는 물론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비는 1,6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심하게 마모되어 탁본이나 육안으로는 정확한 자형을 읽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발견 당시부터 글자의 판독에 논란이 많았고, 지난 2000년에는 학자들이 현지에 모여 판독회를 진행하기도 하였으나 판독문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다. 이에 재단은 2019년 비 발견 40주년을 맞아 첨단 과학 기술을 적용한 ‘충주고구려비의 금석학적 연구’를 추진하였고, 최근에는 그 결과물로 『忠州高句麗碑』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忠州高句麗碑』의 주요 내용
자료집에는 충주고구려비를 현지에서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같은 초고해상 디지털 사진을 수록하였다. 각 비면의 실제 면적과 동일한 사진 파일을 확보하여 실물 크기로 프린트가 가능하고, 표면의 디테일을 실재에 가깝게 재현함으로써 인위적인 필획과 자연 크랙을 구분하는 등 비문의 판독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탁본은 문화재청이 불교중앙박물관 측에 의뢰하여 시행한 ‘2019년 금석문 탁본 조사 사업’에 함께 참여하여 최신본을 활용할 수 있었다. 탁본은 두 벌을 제작하였으며, 먹봉을 두드리는 작업을 완료한 후 탁지를 비면에 부착한 채 조명 처리하여 촬영한 사진에서 글자가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포토샵 프로그램에서 탁본의 사진 파일을 ‘흑백’, ‘반전’ 등으로 처리하여 최상의 효과를 추구하였고 배접한 탁본과 배접하지 않은 탁본을 함께 제시하였다.
이번 충주고구려비 연구에서는 첨단 기법의 반사율 변환 이미징(RTI: Reflectance Transformation Imaging) 기술을 처음 적용하였다. RTI는 다양한 각도에서 빛을 비추어 촬영함으로써 빛의 방향에 따라 글자를 읽어내도록 한 기법이다. 비의 4면 중 폭이 넓은 전면과 후면은 상·중·하 3개 영역으로 나누고, 좌측면과 우측면은 상·하 2개 영역으로 나누어 촬영하였다. 충주고구려비는 각자刻字 부분과 돌의 요철 구분이 쉽지 않고 오히려 컬러가 보일 때 자형에 대한 인식이 용이해지는 것을 확인하여, 자료집에는 렌더링 모드 중에서 Diffuse Gain을 사용해 시각화한 이미지를 수록하였다.
또한 다양한 제원의 스캐너를 사용하여 핸드헬드형 중정밀스캐닝, 핸드헬드형 고정밀스캐닝, 고정형 고정밀, 고정형 초고정밀스캐닝 등의 방식으로 비에 대한 3차원 모델링 작업을 진행하였다. 완성된 비의 디지털 모델은 전체적인 형상과 비문이 비교적 잘 표현되었고, 폴리곤메시와 RGB 텍스처 매핑 결과 모두 뛰어난 품질을 보였다. 이는 비의 정밀 실측, 비문의 디지털 판독 및 3차원 프린팅 복제품 제작 등에 활용되었다. 특히 각 글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렌더링함으로써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던 부분에서도 글자의 흔적이나 필획의 깊이 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자료집에는 재단과 한국고대사학회가 개최한 공동 판독회에서 확인한 약 500자 각각에 대해 사진, RTI, 탁본 3종, 3D 3종 등 상이한 방식의 이미지로 만들어 비교함으로써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도 자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판독회 녹취록과 공동 판독안을 비롯하여 1979년 발견 당시의 사진과 탁본, 2000년 고구려연구회가 제작한 탁본 등을 함께 수록하여 충주고구려비에 대한 종합 자료집 성격을 띠도록 하였다.
기획 연구의 성과와 의미
이번 기획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 중 하나는, 그간 논란이 된 제액과 간지에 대해 새로운 판독안이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글자의 구체적인 자형은 물론 존재 유무에 대해서도 설왕설래하였던 비의 전면 상단 부분에서 ‘永樂七年歲在丁酉’라고 하는 여덟 글자를 새로 읽었다. 또 전면 7행에서 기존 ‘十二月廿三(五)日甲寅’을 ‘十二月廿七日庚寅’으로 수정하였으며, 좌측면 3행에서 ‘辛酉年’으로 판독하여 비의 연대 추정의 주요 단서로 삼았던 글자를 ‘功二百六十’으로 새롭게 판독하였다.

이러한 판독에 의하면 그동안 충주고구려비 연구에서 논란이 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비문의 시작 면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면 상단 부분에서 ‘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연도가 확인되고 본문의 ‘五月中’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면을 1면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또한, 충주 고구려비의 건립 연대에 관해서는 5세기 이후 광개토태왕부터 6세기 문자왕대까지 다양하게 추정하였으나, ‘永樂七年’이라는 연대가 확인된 만큼 비는 397년 혹은 이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연구는 역사와 고고학 분야에 첨단 과학 기술을 적용하여 고대 금석문 연구에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연구자들이 산출된 결과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충주고구려비 전용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활용성이 더욱 증대되어 보다 객관적이고 진전된 판독문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현재 고구려 시기의 비석으로는 충주고구려비 외에도 중국 지역에 광개토태왕비, 집안고구려비가 존재하는 바, 이들에 대해서도 재단이 개발한 최신 방법을 적용하여 한·중 공동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고구려사의 인식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한·중 양측이 공유할 수 있는 자료의 공동 조사라는 측면에서 좋은 연구 과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