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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커우(大汶口) 동이족의 원시 성형수술
역사포커스 다원커우(大汶口) 동이족의 원시 성형수술 이 낯선 이름의 주인공은 언제, 어디에 살았던 것일까? 이들은 기원전 4,300년에서 기원전 2,600년 사이에 중국 산둥성(山東省)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다. 이 시기 산둥성은 지금보다 기온이 2~3℃ 높았기 때문에 현재 창강(長江) 이남에서 보이는 양자악어, 코끼리, 사불상 등도 살았다. 다원커우인들은 온난한 기온과 충분한 수원,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찬란한 농경문화를 꽃피웠다. 기원전 3,500년경 부터는 일부 분야에서 양사오문화(仰韶文化)를 초월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도기 제작기술은 당시 중국에서 가장 선진적이었다. 이 시기부터 물레를 이용해 도기를 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말발굽 모양의 가마에서 도기를 구워냈다. 다원커우 도기는 기술이 뛰어난 데다 모양도 독특하였다. 삼족규(三足鬹)는 다원커우 문화의 대표적 도기로 3개의 발을 가진 새의 모양을 하고 있다. 다원커우 문화 말기에는 계란껍질보다 얇은 단각배(蛋殼杯)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도기는 현재의 기술로도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원커우인들은 무덤에 많은 도기를 수장하였는데 특히 술잔이 많은 수를 차지하였다. 이후 다원커우 도기는 허난성(河南省) 뤄양시(洛陽市) 언스(偃師)에서 발견된 얼리터우 문화(二里頭文化, 기원전 1,900년∼기원전 1,500년)에 영향을 주었으며 상주시기 청동예기 제작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김인희 (한중관계연구소 연구위원)
일본의 ‘동양사’ 산책
기고 일본의 ‘동양사’ 산책 ‘Oriental History’의 번역어인 ‘동양사’는 글자 그대로 ‘동양’의 역사를 말한다. 동양사학이라고도 하는데, 근대역사학의 한 분야다. 그런데 ‘동양’ 즉 ‘Orient’의 개념이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달라 동양사의 개념을 특정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역사학에서 동양사를 (한)국사와 서양사로 구분해 사용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해방 후 상당기간 동양사는 중국의 역사를 가리켰다. 중국에서는 동양이 일본을 칭하는 것이어서, 동양사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중국사와 세계사로 나누고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동양사를 인식하는 방법은 매우 유사하면서도 상이하다. (경성제대 동양사학과가 근원인) 서울대의 경우 인문대학 내에 동양사학과가 있는데, 중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 몽골, 동남아시아 등지의 역사를 학문의 범위로 삼고 있다. 반면 동경대의 경우 (문학부와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의 통합 형태로) ‘동양사학연구실’을 두었는데, ‘동양사’와 ‘아시아사’를 엄연히 분리해 놓고 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동일한 의미로도 사용하기에 동양사의 ‘모습’은 적잖이 혼란스럽다.
김민규 (동북아역사독도교육연수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