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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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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k E. Vaillancourt

 

아시아 역사는 수천 년의 시간과 여러 문명, 기념비적인 순간들을 거치고 수 없이 많은 위업을 달성하며 오늘날 세계에서 현 위치에 섰다. 한·중·일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성공의 길을 걸어왔고, 점차 국제화되는 세계에서 주요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가 오늘날만큼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과거에는 아시아의 정치·경제 구도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각국이 다른 주권국가 정복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협력이라는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국제 사회’의 개념은 요원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종교적 영향력이 컸던 시대였고, 민족주의가 그 시대의 주요 패러다임이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삶의 많은 측면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던 한국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2대 강국 사이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힘에 있어서도 중간국가였던 한국의 논밭은 때때로 국내 당파 싸움을 비롯해 중국·일본·몽고와의 전쟁터로 이용되었다. 한국 국민들은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점뿐만 아니라 그 역사 동안 사상과 창의성, 혁신의 측면에서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에 전 세계의 존경을 살만하다.

조선 후기 한반도의 백성들에게는 일본 제국주의 정부가 조선을 손에 넣기 위해 접근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었다. 많은 조선인들의 눈에는 일본의 한반도 장악이 임박한 위협이었다. 독립운동의 시작과 독립군 창설은 이 같은 침략 의도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응이었다. 당시 한 독립투사의 행동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할 조선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이것은 그러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해 커다란 존경심을 갖고 하는 말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범아시아주의 사상가였던 안중근은 아시아 역사에 기여한 바 때문에 한국과 중국 일부 지역에서 영웅의 대접을 받고 있고, 또 그럴 만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은 고결한 삶 때문이 아니라 아시아의 협력에 대한 사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종교에 우선한다”고 말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증명했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로 인해 일본 정부가 한반도를 궁극적으로 차지하기 위한 과정을 앞당겼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이토 히로부미가 살해되고 불과 10개월 뒤에 병합조약이 발효되었다. 일각에서는 안중근 때문에 일본의 한국 병합이 가속화되었다고 성급히 비난하겠지만, 이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되기 전인 1907년에 이미 병합조약의 초안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되었든 아니든 일본은 한국을 완전히 장악하는 행보를 이미 하고 있었다. 안중근은 단순히 이 같은 현실에 반응했을 뿐이었고, 한국 내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던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안중근이 할 일을 한 것뿐이었는데도 이러한 사실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물론 누군가가 영웅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테러 행위로 생각할 수 있다. 안중근은 시대에 앞선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아시아 전체에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주는 기능적인 패러다임으로서 ‘아시아주의’를 열렬히 지지했다. 일본 지도자들도 아시아주의를 믿었지만, 당시 그들은 아시아 전체가 일본의 깃발 아래 놓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자신이 독차지하는 아시아를 추구한 반면, 안중근은 주권국가들 간의 협력의 시대를 주창했다.

안중근의 생애와 업적 중 상당 부분은 가장 정통한 역사학자들에게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역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도 아직 적절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현재 국제법에서는 저항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한국 국민들이 자유를 위해 투쟁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 한국이 사실상 주권을 되찾고 65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 영웅들이 여전히 칭송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영웅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은 평화·자유¡¤협력을 옹호하고, 이것이 실현되도록 암살을 준비했던 사람일 것이다.

그의 의거가 있고 100년이 지난 지금 안중근은 한국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필요한 일을 용감하게 해낸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죽고 한 세기가 지났지만, 후손들이 그의 생애와 신념에 관해 배우도록 격려함으로써 평화와 협력을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의 협력에 대한 안중근의 신념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현대 한국을 있게 한 영웅 안중근에 보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보다 아시아주의적인 접근법을 채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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