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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포커스
사도광산은 누구의 역사인가
  • 조건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사도광산 대응 민관합동 TF 1차 회의(연합뉴스, 2022.2.4.)


역사전쟁의 시작

 

127일 밤까지만 해도 상황은 크게 비관적이지 않았다. 전문가 일각에서 일본 정계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설마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주일 전 요미우리신문에 사도광산의 등재 추천서 제출이 보류될 것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복수의 정부관계자를 취재원으로 한 요미우리의 보도는 꽤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선택은 등재 강행이었다. 128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수상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천하겠다는 의사를 공표했다. 결국 21일 일본 정부는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추천서를 제출했다.


한일 양국 간 분위기는 급전직하,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 같았다. 이미 1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수상이 자신의 SNS역사전쟁을 걸어온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가만히 있는 일본에게 한국이 먼저 도전장을 던졌으니 응전은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식의 도발이었다. 많은 논객들이 아베 일파의 이러한 분위기가 기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틀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아베 전 수상 페이스북 문구 사진(한국일보, 2022.2.7.)

 

 

양국의 실전 부대: 태스크 포스(task force)

 

추천서를 제출한 당일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 등재를 위한 첫 번째 태스크 포스(TF) 회의를 열었다.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관방 부장관보()를 단장으로 한 TF 회의에는 외무성과 문부과학성, 문화청 등 관계 부처의 국장급 인사들이 참여했으며, 향후 등재 실현을 위해 정부 부처를 넘어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정부도 좌시하지 않았다. 24일 금요일, 이상화 외교부 공공외교대사를 단장으로 한 국장급 TF 회의가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교육부, 문화재청, 국가기록원, 동북아역사재단 등 관계 부처 및 기관 그리고 민간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미 2015군함도(하시마)’ 등 일본의 근대산업유산이 한국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세계유산에 등재된 전례가 있었던 터라 우리 정부의 대응은 더욱 비장감이 흘렀을 것이다. 구체적인 TF 회의 내용이 외부로 흘러나오진 않았지만, 일본 측의 주장과 논리에 대응하기 위한 방침이 다각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 TF와 궤를 같이해 재단에서도 일본 정부의 등재 강행에 맞서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비단 이번 등재 추천서 제출이라는 사안에 국한하지 않고 향후 사도광산을 포함한 강제동원 유적 일반을 대상으로 학술 연구와 정책 대응을 추진할 계획이다.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와 세계유산위원회 상징(유네스코 홈페이지)

 

 

그러나 이것이 싸울 일인가

 

본격적인 교전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과연 사도광산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이렇듯 다툼으로까지 번질 까닭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애당초 세계유산제도는 인류 전체의 세계유산의 일부로 보존될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어느 인민에 속하는지를 막론하고파괴 위협으로부터 보존 및 보호하는 것이 세계의 모든 인민을 위해 중요하다는 점에서 비롯됐다.(세계유산협약 전문, 1972.11.16.)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가치가 있다면 그 등재를 막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렇듯 가치 있는 유적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광산이라는 유적이 인류 전체의 세계유산으로 보존할 만큼 가치가 있지 않다면 세계유산 등재는 불가하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를 식민지배하고 침략전쟁에 식민지 민중을 강제동원해서 피해를 입혔던 곳이라면 절대로 인류 전체가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이웃국가의 국민을 포함해 전체 인류가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싸울 일이 아니다. 요컨대 일본은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의 취지에 맞는 유적이라는 점을 스스로 명명백백히 증명해야 한다.


 

사도광산은 누구의 역사인가

 

사도광산이 세계유산 잠정 후보로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2010년이었다. 이후 니가타현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사도광산을 일본 국내 후보로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번번이 다른 유적들에 밀려 탈락했다. 주목할 점은 이때까지 니가타현은 사도광산이 가진 전체 역사를 대상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사도광산을 후보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이 문제를 제기하는 특정 기간의 역사를 누락시킨 채 메이지기 이전만을 대상 시기로 하는 꼼수를 부렸다. 자국이 불편하고 부정적인 사실이 있는 기간을 고의로 제외시키려는 시도는 이미 세계유산위원회가 거듭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이 가진 세계유산으로서 가치가 메이지기 이전에 국한하더라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상 유적 일대에서 목격되는 대부분의 시설은 근대 이후의 것들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에 의한 피해의 역사가 함께 녹아 있다. 암흑 속 막장은 물론 사도섬에 남아 있는 조쇄장(粗碎場)과 부유선광장(浮遊選鑛場) 등 대규모 광산 유적 곳곳에서 식민지라는 이름으로 강제동원되었던 조선인들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외면하는 사도광산의 역사 속에는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 노동자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이며, 곧 우리의 근대사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가 등재를 강행하며 왜곡하는 것은 단순히 자국 유적의 역사만이 아니다. 한국사에 대한 왜곡이며 나아가 세계유산의 가치에 대한 기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