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
재단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단은 지난 4월 20~24일까지 울릉도에 현지조사를 다녀왔다. 이번 조사는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제와 관련한 유적‧유물을 종합적으로 살피기 위해 마련되었다.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학술조사는 1947년 한국산악회를 중심으로 한 민관 협력 조사 이후 1953년까지 3차례 이상 진행되었다. 그로부터 73년이 지난 2026년 3월, 재단은 울릉도와 독도를 역사·문화·지리·지질 등 여러 분야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종합학술조사단을 발족했다. 올해 조사의 핵심 대상은 조선시대 수토관들이 남긴 각석문과 이동 경로, 진상물, 해양 유적 등이었다.
수토관의 자취를 찾아 울릉도로
조사단은 재단 독도연구소를 중심으로 탁본 분야 최고 전문가인 흥선스님과 이재욱 서예가, 신빛 사진작가, 지질학자 추창오 교수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유승재 PD와 이준호 촬영감독이 조사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현지에서는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와 울릉도 주민, 지역 전문가들의 협조가 더해졌다. 특히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수토관 각석문의 탁본을 위해 울릉군청, 독도박물관, 경북도청과 사전 협의를 거쳤고, 조사에 앞서 문헌자료와 기존 연구도 정리했다.
4월 20일 서울에서 출발한 조사단은 포항을 거쳐 울릉도에 도착했다. 선상 간담회에서는 조사 일정과 역할을 정리했다. 조사 대상은 수토관 각석문, 해양 유적, 수토관 이동 경로, 울릉도 토산물 등으로 다양했다. 울릉도의 험한 지형과 변덕스러운 날씨, 탁본 작업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 조사단은 현지에서 조사팀과 탁본팀으로 나누어 활동했다.
울릉도 도착 후 가장 먼저 확인한 곳은 울릉읍 저동 내수전 일대의 미확인 각석문 제보지였다. 현지 주민의 구술을 바탕으로 내수전 뒷산에 오르자 약 2m 크기의 조면암이 나타났다. 흥선스님과 이재욱 서예가, 고광의 연구위원은 이를 살펴보고 글자의 흔적이 분명하다고 판단하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발견의 순간이었다. 추창오 교수는 대부분 자연 흔적으로 보이지만, 우상단 일부에서 인공 흔적이 보인다고 했다. 내수전 각석문의 탁본은 일정에 따라 후순위로 남겨두었다. 이어 조사단은 태하리 일대의 광서명 각석문, 신묘명 각석문[수토역사전시관 2층 상설전시관], 수토사 각석문, 임오명 각석문을 차례로 확인했다.
이후 조사단은 산왕각에 올라 간단한 고유제(告由祭)를 지냈다. 이곳은 1882년 검찰사 이규원이 방문한 것으로 전해지는 장소다. 과거 수토관들은 산신과 해왕을 모신 이 공간에서 성공적인 조사와 무사 귀환을 염원하지 않았을까. 또한 조사단은 대풍감 도치 바위의 돌고리, 황토굴 등에 대한 현지 구술을 듣고 본격적인 조사 일정을 정리했다.
각석문을 탁본하고, 미확인 흔적을 살피다
21일 수토사 각석문 탁본을 마무리한 탁본팀은 곧바로 광서명 각석문 탁본을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이날 저녁에는 광서명 각석문의 탁본 방식을 두고 논의가 이어졌다. 광서명 각석문은 크기가 2m를 넘는 대형 각석문이어서 하나의 탁본으로 제작할지, 나누어 제작할지를 신중히 검토해야 했다. 조사단은 여러 의견을 검토한 끝에 두 장의 한지를 이어 하나의 대형 탁본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각석문의 전체 모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 이튿날 탁본팀은 종일 광서명 각석문 탁본 작업을 진행했다.
한편 조사팀은 학포 갈미봉 정상부에 있다는 또 하나의 미확인 각석문을 찾아 나섰다. 일반인이 쉽게 찾지 않는 곳이었기에 좁은 길을 헤치며 올라야 했다. 정상에 오른 조사팀은 암석들을 하나하나 확인했고, 촬영팀은 드론을 띄워 조사 장면을 기록했다. 조사 중 한 암석에서 세 글자 정도의 한자가 확인되었으나, 수토관 각석문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학포 갈미봉 미확인 각석문 조사(4월 22일)
갈미봉에서 내려온 조사팀은 곧장 나리분지로 향했다. 나리분지에서는 울릉도의 지질학적 특징과 과거 거주 가능성에 주목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로, 조선시대 수토관들과 검찰사 이규원이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으로 인식했던 곳이다. 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 저수지도 확인했다. 이는 이규원의 「울릉도내도」에 나타난 ‘큰 못[大澤]’과 유사해 보였다. 다만 조사팀이 방문했을 때는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울릉도내도」의 큰 못과 현재의 저수지 모습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및 추창오(2019)
대풍감 도치 바위에 남은 수토의 흔적
해양 조사도 중요한 일정이었다. 조사단은 대풍감 앞 도치 바위의 돌고리를 확인했다. 대풍감은 말 그대로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다. 조선시대 수토관들은 울릉도 조사를 마친 뒤 적절한 해풍을 기다렸다가 배를 띄웠을 것이다. 도치 바위에 남아 있는 10여 개의 구멍은 수토관들이 배를 묶어두었던 흔적으로 추정되어 왔다.
조사팀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협조를 받아 독도누리호와 소형 보트에 나누어 탑승했다. 독도누리호는 도치 바위에 근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소형 보트를 이용해 바위에 접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바람과 파도가 거세 조사단이 직접 바위에 오르기는 어려웠다. 대신 현지 전문가들이 도치 바위에 올라 돌고리에 밧줄을 연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지질 전문가의 현장 판단에 따르면 대부분은 자연 흔적으로 보이나, 원형이 뚜렷한 일부 구멍은 인공 흔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향후 추가 조사가 필요하지만, 도치 바위의 돌고리는 수토관 또는 검찰사 일행의 정박 활동과 관련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조사단은 이어 독도누리호를 타고 울릉도 서면 해안을 살폈다. 조선시대 수토관들이 울릉도에 도착한 뒤 섬의 둘레를 살폈다는 기록을 현장에서 되짚어 본 것이다. 해안 곳곳에 있는 ‘석간주(石間朱)’, 곧 황토굴도 확인했다. 조선시대 수토관들은 바위 사이에서 발견되는 황토를 채취해 진상품으로 올렸다.
해양 조사를 마친 조사팀은 현포로 돌아와 태하의 광서명 각석문으로 이동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탁본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커다란 한지 위에 드러난 글자의 흔적은 흡사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흥선스님은 현장에서 탁본 제작 과정과 방법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이날 탁본팀의 또 다른 작업은 수토역사전시관에 전시 중인 신묘명 각석문의 정밀 촬영이었다. 전시장 구조상 신묘명 각석문의 탁본이 어려워 정밀 사진 촬영으로 대체한 것이다. 정밀 사진 촬영은 신빛 작가가 맡았다. 관람 시간이 끝난 뒤 조명을 설치하고 전시장을 정비한 후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탁본이 어려운 유물도 향후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고해상도 자료로 남길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진 고된 일정이었지만, 조사 성과는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성인봉에서 관음도까지, 수토의 길을 되짚다
이튿날 탁본팀은 임오명 각석문 탁본을 시작했고, 전날 마치지 못한 수토사 각석문 탁본도 이어갔다. 또 첫날 확인했던 내수전 조면암의 일부도 탁본했다. 새로운 각석문일 가능성에 기대가 있었지만, 탁본 결과 1970년대에 새겨진 것으로 판단되어 수토제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비록 기대했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제보지를 직접 확인하고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조사였다.
탁본팀의 임오명 탁본 채취 장면(4월 23일)
조사팀은 울릉읍 도동에서 성인봉을 등반했다. 조선시대에는 성인봉을 중봉(中峯)이라 불렀으며, 많은 수토관들이 이곳에 올랐었다. 특히 1694년 울릉도를 조사한 삼척영장 장한상의 「울릉도사적」에는 성인봉에서 독도를 보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사팀도 성인봉 정상에서 독도를 확인하고자 했으나, 이날은 해무가 짙어 볼 수 없었다.
비록 독도 조망에는 실패했지만, 성인봉 등반을 통해 수토관의 이동 경로와 당시 울릉도 인식의 중요한 지점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수토관의 이동 경로 전체를 답사하는 데는 일정상 한계가 있었다. 향후 조선시대 수토관의 기록을 현재의 지명과 체계적으로 대조하고, 이를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오후에는 버스로 북면 해안을 따라 이동하며 수토관의 행적을 유추하고, 각 지역의 옛 지명과 현재 지명을 비교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관음도였다. 관음도에서는 ‘죽도’ 또는 ‘대섬’으로 불리는 섬이 보인다. 이곳에서 우산도와 석도에 관한 자료 해석, 한국과 일본 측 견해 차이 등을 다룬 즉석 간담회가 열렸다. 대섬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문헌 속 지명과 실제 지형을 함께 놓고 의견을 나눈 간담회는 이번 조사의 성격을 잘 보여주었다.
이날도 탁본팀의 작업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탁본 과정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발견도 있었다. 수토사 각석문에서 기존에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았던 인명 2개 이상이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수토사 각석문은 1802~1805년 사이 울릉도를 방문한 수토관과 수행원의 이름이 새겨진 자료로, 수토제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각석문은 아니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그 역사적 가치와 전면 재검토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했다.
돌아오는 날, 눈으로 본 독도
조사의 마지막 일정은 석포리 안용복기념관 방문이었다. 수토제 성립의 배경이 된 ‘울릉도쟁계’에서 안용복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조사단은 기념관과 충혼비를 둘러보며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조선의 해양 인식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날은 유독 날이 좋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독도 방향을 바라보던 중, 멀리 해무 사이로 섬의 형상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독도였다. 망원경 없이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분명했다. 조사단 구성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함께 그 모습을 확인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두 섬의 거리가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구절은 독도 영유권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중요한 근거다. 앞서 성인봉에서는 해무 때문에 독도를 보지 못했지만, 청명했던 이날, 석포에서 맑은 날 울릉도에서 독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날씨와 관계없이 비교적 뚜렷하게 보이는 대섬과 달리, 독도는 맑은 날 비로소 시야에 들어왔다.
이번 2026년 울릉도·독도 종합학술조사는 조선시대 수토제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독도 방문 일정은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 마지막 날 울릉도에서 독도를 눈에 담은 경험은 조사단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았다. 수토관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울릉도의 산과 바다를 살피고, 마지막에 독도를 마주한 것이다.
추창오 교수가 촬영한 독도의 모습(4월 24일)
현지조사는 끝났지만, 학술조사단의 작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탁본 자료의 판독, 사진과 영상 기록의 정리, 문헌과 현장 조사 결과의 대조 등 후속 연구 과제가 남아 있다. 이번 조사가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조선시대 수토제 연구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