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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성 발굴이 들려주는 발해의 역사
연구소 소식 염주성 발굴이 들려주는 발해의 역사 한국고중세사연구소는 2018년 7월 17일부터 8월 17일까지 연해주 핫산 지구 크라스키노에 위치한 발해 염주성(鹽州城) 발굴을 성공리에 마쳤다. 필자가 총괄하고, 에브게니아 겔만(E.I.Gelman)이 이끄는 러시아 발해역사연구협회와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이에 금년 발굴의 성과와 염주성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살펴본다. 겔만 선생은 필자가 처음으로 염주성을 밟은 1992년 이후 돈독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러시아 내 대표적인 발해 고고학자다. 발굴장에 도착하면 겔만 박사를 비롯한 러시아 학자들은 30년의 우정을 나누며 과거와 현재와 앞날을 전망한다. 이번 발굴은 염주성의 중심 건물 군 지역53구역에서 진행된 것으로, 작년에 노출시킨 건물 기단부에 대한 세부 조사와 함께 북쪽으로의 확장이 주목적이었기에 시작부터 큰 기대를 가졌다. 도착 첫날 야영장에서 발굴 준비를 마치고 다음날 개토제를 올린 후 본격적인 발굴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발굴 시작 일주일 만에 우리 예상대로 건물지 3동이 연속적으로 배치된 중심 건물 군을 확인하였다. 또 사흘 후에는 개원통보 출토와 토층 노출이 이어졌다. 아울러 20년 만에 사원지 연결 도로와 안쪽 성벽 축조 방식을 확인할 수 있어 폭염 속 단비와 같이 만세를 부르게 해 주었다. 이에 이번 발굴 성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 소개한다.
김은국 (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 연구위원)
기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연구와 역사 정의의 과제 73주년을 맞이한 올해 광복절은, 우리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27년 전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8월 14일을 국가 기림일로 제정해 ‘주권' 회복에 더해진 ‘인권'이 주는 의미로 울림이 컸다. 더욱이 주권 침탈과 인권 침해의 역사적인 원인이자 출발인 8월 22일은 일본 제국주의의 불법적인 한국강제병합 108주년이 되던 날로, 재단 일본군‘위안부' 연구특별팀은 “일본군‘위안부' 자료 발굴의 현재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재단은 2006년 출범 이래 21세기 현 시점에서도 현재진행형인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2010년 한일강제병합 100년사'와 ‘2015년 한일협정 50년사'에서 일본이 주장해온 ‘1910년 식민지배 합법론'과 ‘1965년 한일협정 완결론'의 문제점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회의를 선도적으로 개최해 왔다. 이를 통해 동북아 역사 갈등의 본질로서 일제 식민지책임의 규명에서 나아가 그로부터 파생된 침략전쟁에 강제동원된 반인도적 범죄로서 오늘날 국제사회 최대 인권 현안인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학술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도시환 (재단 일본군'위안부'연구센터장)
조일 우호의 상징이 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조선통신사 이야기 조일 우호의 상징이 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조선 국왕의 명의로 일본의 최고 통치자에게 파견된 공식적인 외교 사절로 알려진 ‘조선통신사’. 통신사는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고, 양국 관계의 변화 속에서 통신사가 수행한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1429년 첫 번째 통신사로부터 590주년이 되는 2019년을 앞두고, <조선통신사 이야기> 코너를 통해 조선왕조 대일 외교의 역사이자 문화 사절이었던 조선통신사를 들여다 본다. 에도 시대 쓰시마의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일거에 높아진 계기는 1990년 5월의 일이다.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이 궁중 만찬회에서 “270년 전 조선과의 외교에 관여한 아메노모리 호슈는 ‘성신(誠信)와 신의(信義)의 교제’를 신조로 했다”라며,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 구축을 역설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 조·일 관계 연구자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하던 일본의 역사인물을 한국의 대통령이 언급했으니, 아마도 평범한 일본인들은 대부분 ‘호슈가 누구지?’하며 어리둥절했으리라. 국정 운영으로 다망했을 노태우 대통령이 한일 학계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어떻게 발굴해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호슈는 들여다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인물이다. 조일 통교 업무를 경험한 실무자이자 지식인으로서, 통교의 교본을 다수 저술하여 쓰시마의 조선 외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윤유숙 (재단 한국고중세사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