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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라시아주의와 러시아 제국의 부활
동북아포커스 2 신유라시아주의와 러시아 제국의 부활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시작한 지 곧 열 달이다. 이 전쟁은 러시아 - 우크라이나의 충돌일 뿐 아니라 러시아 - 서방 간 대결 그리고 우크라이나 내전이라는 세 층위의 갈등이 대리전으로 엮어진 복합적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을 끝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전쟁의 다층적 구조 못지않게 전쟁의 주요 원인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우파 민족주의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전쟁의 복잡한 원인과 계기가 전쟁 지속의 동력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이 전쟁에 러시아 민족의 정체성, 인근 민족들과의 관계, 그리고 지구 정치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위 상 등과 관련하여 주요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운을 걸고 임하고 있는 모양새다. 푸틴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런 생각에 지지를 보이고 있는 현실은 이 전쟁이 충동적인 영토욕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 억눌려온 대러시아 민족주의의 새로운 발현이라는 해석에 힘을 더 보태준다. 따라서 이 전쟁의 이면을 좀 더 들여다보기 위해서 ‘대러시아 민족주의’의 핵심 이념과 그 현 재적 발현 기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신범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러시아 한국학의 선구자,  뒤바보 계봉우
근현대 코리안 디아스포라 러시아 한국학의 선구자, 뒤바보 계봉우 한미한 집안 출신에서 한말 계몽운동가로 계봉우는 1880년 8월 1일(음력) 함경남도 영흥의 관노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가계나 부친의 이름도 알 수 없고 모친이 장 씨라는 것 외에 알려진 바 없다. 유년 시절의 계봉우는 그야말로 독학을 통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7살부터 서당에 나가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14세까지 사서삼경과 사기를 읽었다. 과거에 급제하기 위하여 구학을 공부한 것인데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면서 공부를 중단했다. 이후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15세부터 24세까지 동학에 입교하기도 하고, 정감록, 점술, 사주, 관상법 등을 공부하고 병서도 섭렵하였다. 도인이라 알려진 최통 선생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정감록의 정도령을 찾아 백두산 일대를 뒤지는 등 방황의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1905년 일제에 의한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읽고 마음을 바로 잡았다. 1906년 10월 김정규, 권영호 등과 함께 영흥에 홍명학교를 설립하고 조선의 역사, 지리와 한문을 가르쳤다. 1907년 이후 이동휘의 권유로 대한자강회와 서북학회의 영흥지회에 가입하였고, 민족적 비밀단체 신민회에도 가입하여 구국운동에 참여하였다. 1908년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1910년에는 함흥의 기독교계 영생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