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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포커스 2
신유라시아주의와 러시아 제국의 부활
  • 신범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끌고 있는 푸틴과 젤렌스키 대통령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시작한 지 곧 열 달이다. 이 전쟁은 러시아 - 우크라이나의 충돌일 뿐 아니라 러시아 - 서방 간 대결 그리고 우크라이나 내전이라는 세 층위의 갈등이 대리전으로 엮어진 복합적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을 끝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전쟁의 다층적 구조 못지않게 전쟁의 주요 원인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우파 민족주의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전쟁의 복잡한 원인과 계기가 전쟁 지속의 동력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이 전쟁에 러시아 민족의 정체성, 인근 민족들과의 관계, 그리고 지구 정치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위 상 등과 관련하여 주요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운을 걸고 임하고 있는 모양새다. 푸틴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런 생각에 지지를 보이고 있는 현실은 이 전쟁이 충동적인 영토욕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 억눌려온 대러시아 민족주의의 새로운 발현이라는 해석에 힘을 더 보태준다. 따라서 이 전쟁의 이면을 좀 더 들여다보기 위해서 대러시아 민족주의의 핵심 이념과 그 현 재적 발현 기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 이념과 유라시아주의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러시아가 제정(帝政) 시기 국력 신 장과 함께 동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다양한 아시아의 민 족들을 품는 거대한 다민족 정치체가 되면서 마주하게 된 중 심 질문은 러시아가 유럽 및 아시아에 대한 관계를 어떻게 관념하고 정리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연관되어 있다. 이른바 러시아 이념이라 불릴 정도로 러시아 지성사의 중요한 주제인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 역사를 관통해 왔는데, 그 이유는 민족의 정체성과 사명 을 규정하는 이념 체계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러시아 내에 두 사조가 나타났다. 러시아가 유럽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서구주의(Westernism)’가 러시아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시기는 러시아사 속에서 그리 길지 않다. 제정 러시아를 유럽 열강의 반열로 올려놓은 표트르 대제 시기야말로 러시아에서 유럽 지향 벡터가 압도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표트르의 서구화 정책은 서구를 지향하는 상층 엘리트와 전통에 서 벗어나기를 거부하는 기층민 사이의 거대한 사회적 분열(raskol)을 가져오기도 했다. 아무튼 서구주의는 러시아의 후진성 인식을 바탕으로 서구의 발전된 모습을 따라잡으려는 추격형 발전 모델의 원형이 되었다.

한편 근대화 시기 기독교 이념으로부터 이탈한 타락한 서구와 달리 전통적 기독교 가치를 보존하고 전통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러시아성을 지켜야 한다는 문화적 지향을 가진 슬라브주 의(Slavophile)’는 서구주의를 반대하고 러시아 고유의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후에 러시아 민족주의의 발전과 연결된다. 러시아 독자성을 강조하는 슬라브주의적 사고는 러시아가 공간적으로 유럽이나 아시아의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유라시아라는 독특한 역사·문화적 공간을 형성해 왔다는 유라시아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고전 유라시아주의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1920년 초 프라하와 파리 등지로 망명한 일단의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진로에 대한 논쟁의 출판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경제 학자 사비츠키(П.Н. Савицкий), 예술학자 숩친스키(П.П. Сувчинский), 철학자 플로롭스키(Г.В. Флоровский), 언어학자 트루베츠코이(Н.С. Трубецкой) 등이 주도해 출간한 동방으로의 출발(Исход к Востоку)(1921)로부터 시작하여 역사학자 카르사빈(Л.П. Карсавин), 법학자·역사철학자 알렉세예프(Н.Н. Алексееву) 등이 가세하여 발행한 일련의 간행물들을 통해 이들은 러시아의 고유한 특성에 기초 한 이념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볼셰비키 혁명의 한계와 가능성을 논했다. 망명 지식인들 이외에도 소련 내에서 유 라시아주의를 탐구한 구밀료프(Л. Н. Гумилев) 같은 학자 도 존재했다. 그는 유럽이나 아시아에 속하지 않으면서 이 양 쪽의 문명을 소화하는 제3의 역사·문화적 권역으로서의 러시아 - 유라시아 공간의 독자적 리듬과 생명력을 강조하였다.

망명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러시아 이념의 추구는 당시 새로 탄생한 볼셰비키 정권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내부로부터 분열하게 되었고, 이후 소련 시기에 유라시아주의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유라시아주의의 영향력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은 도리어 소련이 해체된 이후 신생 러시아에서 러시아의 정체성과 진로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일어난 1990년대 이후다. 신생 러시아가 경험한 체제전환의 혼돈과 사회적 아노미는 이념적·체제적 위기로 심화되었고, 추락하는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조소와 무시는 러시아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굴욕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 상황에서 유라시아주의는 미완의 러시아의 이념으로 주목받게 되었으며, 다양한 정치 그룹들이 이를 새로운 러시아의 이념적 기초로 적극 수용하기 시작했다.



비잔티움과 몽골 양식이 복합된 복식을 입은 초기 제정 러시아 최고 통치자 차르


신유라시아주의와 푸틴 정권의 이념적 여정

 

()과 서(西)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온 러시아 지성사에서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 이념의 최종적 버전이라는 성격을 띠지만, 그것이 발현된 정치적 기재는 시기별로 달랐다.

소련 해체 이후 신생 러시아에서 서구주의적 발전벡터를 수용한 친서방적 자유주의자들이 충격 요법에 의한 급진적 경제개혁을 시도했지만 그 여파로 민생은 급속히 어려워지고 중층적 체제전환 과정은 러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혼돈을 가속화시켰다. 소위 러시아의 잃어버린 10년으로 알려진 1990년대 옐친 시대를 보내며 러시아 사회는 점차 보수화되면서 전통적 러시아의 가치를 지향하는 유라시아주의에 대한 수용성을 높여갔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등장한 푸틴 대통령은 보수적 러시아 이념의 기획으로서 유라시아주의적 모티브를 러시아 정체성·사명을 규정하는 주요 원칙으로 수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나토 가입까지 추진했던 실용주의적 국제주의자로 첫 임기를 시작한 푸틴 대통령은 서구의 러시아를 경원시하는 태도에 직면하며 힘에 근거한 강대국 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2007년 뮌헨 국제안보회에서 행한 그의 연설은 보수적 강대국주의자 푸틴의 등장을 국제무대에 알린 계기였으며, 그렇게 2008년 조지아 전쟁으로 그의 두 번째 임기가 마무리된다.

이후 2010년대 세 번째 임기를 다시 시작한 푸틴 대통령은 유라시아주의에 기초한 러시아 제국의 회복을 꿈꾸며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등 지역통합 기재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였다. 기존 러 - 중 전략협력에 기초하여 발족시킨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확대하여 포괄적 범()유라시아 안보협력기구로 발전시켰고, OPEC+, 가스수출국포럼, 브릭스 등과 같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지구적 영향력의 기재를 강화해갔다.

이같은 푸틴의 정책으로 구현된 러시아 국가전략은 유라시아 정체성을 강화한 대유라시아(Greater Eurasia) 구상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구상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이념은 전술한 고전 유라시아주의가 아니라 러시아가 체제전환 과정에서 겪은 혼란과 민족적 수모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제국의 이념으로서 신유라시아주의. 신유라시아주의는 혼돈의 1990년대 이후 많은 이데올로그들 간의 논쟁을 통해 발전해 왔는데, 파나린(A. Panarin)이나 침부르스키(A. Tsymburskiy) 등의 학자들을 비롯하여, 두긴(Alexander Dugin)이나 일린(Ivan Ilyin) 그리고 프로하노프(A. Prokhanov) 등과 같은 사상가·운동가 등이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신유라시아주의는 양반구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서구 중심의 대서양 연대와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등의 유라시아 세력의 연대 사이의 경합과 투쟁이 지구정치의 핵심적 갈등 구조로 본다. 이 투쟁 과정에서 유라시아 주요국들은 연대하여 미국 중심의 단극 패권질서를 극복하고 다극화되고 다지역적인(multi-regional)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유라시아 연대에 기초한 대륙 지정학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잡고 미국 주도의 대서양 연대에 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같은 지구정치의 모순을 극복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문화적으로 정교회를 기초로 한 반근대주의 및 반서방주의에 입각하여 동성애나 낙태에 반대하며 가족을 중시하는 등 전통가치의 보존이라는 보수적 문화 이념을 강조한다. 따라서 신유라시아주의는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강력히 반대하며 대안적 세계화를 지향하는 정치·사회적 운동의 특성도 지닌다.

서구 대 비서구의 충돌이라는 신냉전 체제의 도래에 주목하는 카라가노프(S. Karaganov)는 대유라시아야말로 약화된 서구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질서를 추동할 수 있는 전략적 연대임을 강조한다. 러시아 내 전문가들은 대유라시아 구상을 유라시아 대륙의 주요 세력들이 경제통합을 통해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결국 이 기획은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를 약화시키고 다극체제를 지향하는 전략이며, 그 중심에는 유라시아 주요 강대국인 중국 - 러시아 - 인도 간 전략적 협력의 3각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신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의 유라시아 중심성을 강조하면서 유라시아에 지정학적인 제국을 구축함으로써 대러시아 민족주의와 친화적으로 결합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 3기 및 4기의 러시아 대외적 및 대내적 정책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용주의적 국제주의자 푸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토의 동방으로의 확장에 대해 더 이상은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 정도로 읽혔던 2008년 조지아 전쟁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에 대한 합병과 동부 지방의 돈바스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대러시아 민족주의에 기초한 제국적 지향은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 내에서 발흥한 우크라이나 극우민족주의와 충돌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였다. 대러시아 민족주의는 러시아 국내정치에도 영향을 미쳐 개헌을 통해 무제한에 가까운 대통령 임기 연장의 길을 열었다. 특히 최근 푸틴 대통령 4기에는 우크라이나는 대러시아의 일부이며 러시아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두긴 등 일부 신유라시아주의자들의 주장이 공식적 대통령 연설에 수용됨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제국적 침략전쟁이 정당화되는 과정에서도 드러나고 있으며, 유라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보수화된 러시아는 세계질서의 중요한 도전자로 부각되고 있다.

 

   

신유라시아주의를 이끌고 있는 두긴


러시아 - 유라시아와 한국

 

신유라시아주의적 이념에 근거한 대유라시아 기획은 고전적 제국 건설 노력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스피크먼(Nicholas Spykman)이나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에 의해 설파된 해양지정학의 명제, 즉 유라시아 대륙에 패권국 내지 패권적 연대가 출현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는 원리에 정면 도전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국제질서 변동을 추구한다. 러시아가 공들여 발전시켜 온 중국과 인도, 나아가 이란과 투르키예 등과의 대유라시아 연대가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넘어 다극화·다지역 질서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변화하는 국제정세는 단극 패권질서의 유지가 쉽지 않음을 여러모로 보여준다.

격동하는 복합대전환의 시기에 한국은 중요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도발은 탈냉전기 어떤 시기에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다. 해양세력과의 연대를 통하여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발전 및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성공신화는 이제 분열되는 세계정치의 충격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진정한 반도국가로서의 역사적 정체성을 발현해가기 위해서 대륙의 변화와 절연된 진로를 선택하기에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성은 너무 양가적이다. 따라서 한국은 기존 해양적 발전벡터와 한 세기여 만에 새롭게 회복되고 있는 대륙적 발전벡터를 아우르는 복합전환의 대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더불어 유라시아 림랜드(Rimland)에서 한국과 유사한 지정학적 중간국의 딜레마를 겪고 있는 많은 유사 입장국들과의 중간국 연대를 다면적으로 강화하여 전략적 자율성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확대해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격동의 파도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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