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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새 책
《대일외교의 명분과 실리》 외교문서를 통해 살펴본 청구권협정의 실체와 의의
  • 조윤수 한일관계연구소 연구위원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둘러싼 논쟁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뜨겁다.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보상을 요구한 소송 판결이 청구권협정에 관한 해석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청구권협정에 관한 해석은 과거가 아닌 현재도 진행 중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청구권협정의 내용을 둘러싼 해석에서 무엇보다 우선하는 기준은 객관적 사료가 아니라 현재에 그것을 해석하는 의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대일외교의 명분과 실리》는 한・일 양국의 외교문서를 실증 분석하여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실체와 의미를 밝힌 의미 있는 연구서다.

저자 유의상(현 국제표기명칭대사)은 1981년 외무고시 15회로 외교부에 들어온 뒤 두 차례에 걸쳐 총 6년간 일본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했고, 본부에서도 일본을 담당하는 동북아1과장을 지낸 일본통이다. 저자가 한・일 청구권협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를 시작한 출발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2002년 9월 외교통상부(현 외교부)를 상대로 제기한 한일회담 외교문서를 공개하라는 소송이었다.

2005년 8월 한국 정부는 한일회담 외교문서 전체를 공개했다. 문서를 공개하면 한국 정부가 교섭 과정을 숨기고 있다는 오해가 풀리고, 현재적 의도나 추측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서 공개 후 오히려 협정에 관한 해석 차이와 논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심각해졌다. 외교문서를 통해 청구권 협상 과정을 재구성하고 그 의의와 문제점을 밝히고자 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현실에 근거한 것이었다.

한ᆞ일 청구권 교섭에 관한 실증 분석과 비판적 복원

이 책은 부제인 '대일청구권 교섭과정의 복원'에도 나타나 있듯이, 1951년 10월부터 1965년 6월까지 13년 8개월간 진행한 한・일 양국의 청구권 교섭과정을 한・일 외교문서를 실증 분석하여 당시 상황을 비판적으로 복원하면서, 협상의 의의와 한계를 분석했다. 지금까지 청구권협정을 주제로 한 많은 연구 성과가 있었지만, 이 책은 양국 정부가 공개한 외교문서를 분석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들과 차이가 있다. 양국이 문서를 공개함에 따라 기존 연구에서는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사료를 통해 증명이 가능해진 것이다.

저자는 선행 연구에서 소홀히 해왔던 한국이 처해 있던 당시 외교적 상황, 국제정세, 한국과 일본의 현격한 외교 전력(戰力) 차이 등을 종합적으로 통찰하면서 동시에 개별 사안을 정밀 분석하여 청구권협정을 한국 정부의 외교 성과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구권협정은 미흡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와 대표단이 최대치로 노력을 경주해서 도출해낸,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교섭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지금 현재시점이나 관점에서 특정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하여 규범적, 당위론적 시각만으로 청구권협정을 바라보고 비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에는 외교부에서 대일외교 실무를 담당했던 저자의 실천적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대일외교의 명분과 실리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연구서

그리고 이 책은 한일회담, 특히 청구권교섭과 관련하여 그간 우리가 잘 모르고 있거나 또는 잘못 알고 있는 내용에 관해서도 명확한 사료를 제시하여 그 역사적 실체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한국이 샌프란시스코 대일강화회의에 초청받지 못하고 미국 주선으로 일본과 양자회담을 시작한 배경, 한국이 일본과 협상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 요구가 아닌 청구권을 요구한 경위, 구보타 발언으로 결렬된 한일회담을 다시 재개하는데 4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실질적인 이유, '김종필-오히라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양국이 했던 교섭 내용 등이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독자들은 534쪽에 이르는 이 책을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보론에서 저자는 청구권 교섭과정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한・일 양국 사이 과거사 문제의 핵심인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는지 분석했다. 한국 정부는 그간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으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저자는 한국 정부가 취해온 정책을 외교문서를 분석한 것을 토대로 입증하고 있다.

이 책이 청구권협정을 통해 한국이 대일외교에서 명분과 실리를 어떻게 취했는지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성찰하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