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위기 때마다 첫번째로 떠오르는 인물이 충무공 이순신이다. 임진왜란 때 백전백승의 신화적인 전공을 이룬 위인이기 때문이다. 늘 위기 상황을 기회로 이끈 그의 시공을 초월하는 전략은 역대 문인들은 물론, 세인들의 주목을 많이 받아왔다. 21세기 미국과 러시아 중심 하에 중국과 일본의 견제를 받는 한반도 상황이 임진왜란 당시와도 유사하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그가 더욱 간절하게 와 닿는다.
2014년 7월에 상영된 영화 <명량>은 이순신에 대한 열풍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두 달 만에 1,700여 만 관객이 동원되었는데 한국영화 사상 최다 기록이다. 특히 전쟁 중 최고의 위기에 직면한 그가 명량이라는 좁고 험한 해협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면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세인들의 관심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란 본래 작가의 상상력과 창작성에 의해 흥미가 더해진다. 물론 <명량>에도 그 점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르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만약 역사적 사실만을 가지고 제작했다면 그만한 열풍이 있었을까.
역사적 사실과 영화 사이의 간극
영화 <명량>이 상영되던 때에는 작품 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을 찾아내는 게 언론의 몫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의 속성이 창작성에 바탕한 흥미 위주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역사사실을 찾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영화란 본래 사실성에 허구가 가미되는 것이므로, 반드시 이에 역사사실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영화란 작가의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과장이나 미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입장에서는 사실과 허구 어느 한 쪽만을 고집하지 않고 감안하여 볼 필요가 있다. 역사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물론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들이 너무 많다면 당연히 왜곡이 될 것이고, 사실 위주로만 되어 있다면 영화라기보다 교육용 다큐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다만 역사와 영화의 조화라는 입장에서 그것을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는 있다. 시대적 배경과 등장인물, 사건, 전개 등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크게 저해되지 않는 선에서 변형될 수 있는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도 학술적인 자문과 고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관객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에서는 그러한 토대 위에 반드시 흥미 있는 내용들이 더해져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영화 <명량>에도 역사적 사실에 흥미 있는 내용들이 더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의 몇 가지 장면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여 관객들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아 논란이 일었다.
역사적 논란이 된 부분과 감동을 준 명장면
논란이 되었던 대표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에서 등장한 거북선에 불을 질렀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명량해전에 거북선이 없었고 판옥선에 거북이 모양을 꾸민 “꾸며 만든 거북함[粧作龜艦]”만이 있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왜냐면 “꾸민 거북선”이 명량해전 때만 사용된 것이 아닌데다 일반적으로 거북선에 대한 지칭어로 사용된 예가 있고, 효종 10년(1659)에 승지 이경억(李慶億)이 “원균이 패배한 뒤 이순신이 귀선(龜船)으로 대적을 격파했다.”(《효종실록》)고 말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영화에 왜선 330척이 등장했다. 《난중일기》의 133척 기록에 근거하여 명량해협에 관선(關船) 130여 척이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후방 녹도 부근에 안택선 70여 척이 있었고, 어란진에 머문 전선을 포함하여 300여 척인 것으로 추정한다. 셋째, 배설이 이순신의 암살을 기도하고 화살에 맞아 죽었다. 실제는 10여 척의 잔선을 이순신에게 인계하고 정유년 9월 2일 도주하여 전쟁이 끝난 뒤 권율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넷째, 이순신의 배에서 백병전이 이루어졌다. 실제는 부하 안위(安衛)의 배에 기어오른 왜적들에게 창과 칼, 수마석 덩어리로 난격함으로써 백병전에 준하는 행위가 이루어졌다. 《행록》에는 “피난하는 선비들이 높은 산에 올라가 보니, 오직 안개 속에서 흰 칼날이 허공에 날고 포격소리가 바다에 진동했다.”고 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치열한 교전상황을 알게 해준다.
이러한 논란들이 있었던 반면, 명장면도 있었다. 실제 기록에는 전라 지역민들이 수군의 후방에서 배를 이용하여 성곽 모양으로 포진하여 위장전술로 기선을 제압하고, 식량과 이불, 옷 등을 공급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산에 오른 임준영의 아내가 치마를 펄럭이며 다른 민초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신호를 안위에게 알림으로써 대장선을 위협하는 화약선을 폭발하게 하는 장면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역사사실에 더해진 각본이지만, 관객에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통쾌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순신의 솔선하는 리더십에 감복한 부하들과 민초들의 노력으로 위기상황을 승리로 이끈 사례를 보여준 것이니, 이것이 영화 <명량>의 정수라 하겠다.
명량해전의 역사적 의미는 불가능한 전쟁도 살신성인의 노력을 기울이면 가능하게 됨을 시사해준다. 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설사 사실과 다른 흥행 위주의 작품이라는 논란은 있었지만, 이순신의 정신을 널리 전파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어려운 일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현대인들에게, 백절불굴의 정신을 다시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바라건대 관객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실 위에 영화의 창작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며 절장보단(絶長補短)하여 이해한다면, 어떠한 영화든 우리에게는 언제나 진실 위에 신선한 흥미로움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