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 문제로 본국 소환되었던 주한 일본대사가 귀임하였다. 역대 최장 기간 대사 소환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최근 양국 간 외교 갈등과 국민 감정은 악화일로를 걷는 듯하다. 이런 시기에 오랜 기간 한.일 관계사를 연구해 온 국민대 이원덕 교수에게 한·일 역사갈등의 해법과 외교 방향에 대한 조언을 들어보았다.
대담 : 김관원 연구관리처장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일본 정치외교와 한·일 관계사를 연구하고 있다. 1998년부터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를 지냈고 현재 국민대 일본학과 주임교수, 일본학연구소장, 동아시아 현지화 미래개척 청년양성 사업단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일국교정상화 연구》(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전후 일본의 안보정책》, 《위기의 일본 정치》 등이 있다.
Q1. 먼저 근황을 여쭙고 싶습니다. 최근 관심을 갖고 계신 연구 주제나 참여 중이신 활동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원덕 요즘은 가능하면 외부 활동보다는 학교에서의 연구와 교육에 충실하려고 노력합니다. 간혹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너무 바쁘셔서 찾아가면 실례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거든요. 사실 제가 비슷한 연령대의 교수들에 비해 학교에서 맡은 역할이 많습니다. 이번 학기부터 학내 조직 개편에 따라 사회과학대학에서 글로벌대학으로 소속이 옮겨져 새롭게 생긴 일본학과 행정을 담당하는 전공주임을 맡게 되었고 일본학연구소 소장직은1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3년 전부터는 제가 단장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 현지화 사업단>이 교과부가 추진하는 대학특성화사업에 선정되어 특성화 사업 프로그램의 책임을 맡다 보니 학과 회의, 연구소 회의, 특성화사업단 회의 등 행정과 잡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외부 활동은 외교부, 통일부, 국정원, 동북아역사재단 등 주로 정부의 대일 외교와 관련 부서의 정책자문 활동, 관련 싱크탱크의 정책연구 활동에 관여하는 일이 많아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습니다.
Q2. 오랫동안 일본을 연구해 오신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은 이러이러한 나라다’라고 한 문장으로 정의하신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원덕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하지만 정치 외교적 행태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일본은 “얄미울 정도로 실사구시(實事求是) 문법과 실용주의 정신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이 이데올로기나 정의, 감성을 중시하는 파토스의 나라라면 일본은 냉철한 이성과 합리주의, 실익을 중시하는 로고스의 나라라고나 할까요. ‘다이나믹 코리아’와 ‘리더십’이 한국을 움직이는 요소라면 일본은 ‘쿨 제팬’과 ‘팔로어십(리더십을 따르는 협조정신)’의 힘으로 운영되는 나라가 아닐까 합니다.
Q3. 민감할 수도 있겠으나 2015년 12월 28일 한·일‘위안부’ 합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합의 자체에 부정적 시각이 많은데 교수님께서는 “위안부 합의가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 정도는 된다”(한국경제신문 2017년 2월 22일 인터뷰)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이원덕 국내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강하고 파기론, 재협상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은 잘 압니다. 박 전 대통령이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고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해결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던 것에 비하면
합의 내용이 미흡했고 피해자·지원단체와의 소통이 부족했던 점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합의문에 ‘소녀상 처리’,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 언급됨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가 뒤바뀐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제공한 점은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번 ‘위안부’ 합의의 본질은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총리 명의의 사죄 반성을 표명함과 더불어 그 징표로 정부 예산 조치를 통해 피해자에게 금전 지급을 약속한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있는 것이므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죄 그리고 법적인 배상이 해결 요소입니다. 이번 합의는 법적 책임과 배상을 분명하게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후 정부 예산으로 금전 출연을 약속하였으므로 최대한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지우는 데 근접한 것입니다.
역대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일본 정부의 철통같은 ‘전후처리 정책’에 가로막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아닌 외교협상을 통해 사안의 타결을 추구하는 한 일방적 승리란 있을 수 없고 상대와의 밀고 당기기는 불가피합니다. 역사 수정주의를 고수하던 아베 총리가 그나마 이번 합의에 응한 데는 미국 오바마 정권의 전방위적 압력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오바마 정권은 여성인권 존중이라는 보편적 규범에서 아베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압박해 왔고, 그가 추진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한·미·일 협력체제 구축이 중요했기에 한·일 양 정부에게 ‘역사전쟁’ 종결을 종용해 왔습니다.
Q4. ‘위안부’ 합의에 대해 대선주자들도 합의파기론 내지 재협상론을 주장하는 양상인데 교수님은 5월 수립될 새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이원덕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대일 외교의 선택지이나 현실적으로 일본이 재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난점입니다. 또한 우리가 일방적 파기를 선언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 합의보다 더 좋은 성과를 얻어낼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합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한 만큼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여 합의에 이르는 협상 과정과 합의 내용의 해석, 합의 이행 상황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재검토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결과 합의에 문제가 있고 보완·개선이 필요하다면 일본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합의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마치 이번 합의가 ‘소녀상 처리 합의’라고 보는 오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번 합의는 기본적으로 ‘사죄 합의’였다고 생각합니다. 합의의 최종성, 불가역성은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반성에 합의해 놓고도 그와 상반되는 망언 등을 행할 때 사실상 합의 정신을 훼손 내지 위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베 총리의 “사죄 편지를 쓸 생각이 털끝도 없다”는 발언이나 “10억 엔 출연으로 일본은 손을 털었다“는 식의 일본 우파 세력 언행은 ‘위안부’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단호히 일본의 책임을 추궁해야 합니다. 또한 최종적인 해결을 도모했다는 것은 정부 차원의 협상 의제에서 ‘위안부’ 문제를 더 이상 다루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뿐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학문적 연구 및 조사,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 기념사업은 물론이고 후세에 대한 역사 교육 등은 합의와 무관하게 지속되어야 합니다. 올해 이루어질 ‘위안부’ 역사의 유네스코 등재 사업 역시 합의에 하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5. ‘위안부’ 합의 이행 문제에 이어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와 철거 문제로 주한 일본 대사가 85일간이나 본국으로 장기소환 된 바 있습니다. 한.일 관계가 ‘위안부’-소녀상 문제로 점점 복잡해지는 모양새인데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이원덕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는 시민단체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 외교부나 부산 동구청은 이를 막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는 합의를 준수하는 차원에서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여 피해자에 대한 존엄과 명예 회복, 상처 치유를 위한 금전 지급 사업을 실시하는 등 합의를 착실하게 이행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10억 엔을 냈으니 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일본 우익들이 압박을 가하고 마치 “금전 지급으로 일본은 면죄부를 받았고 한국은 ‘위안부’ 문제에 재갈이 물렸다”는 식의 곡해와 오독이 펴져 나가면서 시민사회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부산 소녀상 건립은 시민들의 공분의 표현이자 돈을 주었으니 ‘위안부’ 문제는 종결되었다는 식의 일본 측 무성의에 대한 항의의 표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녀상 문제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라기보다 일본 측의 책임 인정과 더불어 진정성 있는 사죄, 그에 걸맞은 보상이 이뤄진다면 저절로 풀릴 수 있는 것으로 본질이 해결되면 저절로 풀리는 수반적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더불어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소녀상 건립 자체보다 소녀상의 설치 장소 즉 위치 문제입니다. 굳이 비엔나 협약 제22조를 들지 않더라도 재외공관의 위엄과 안녕을 해칠 수 있는 장소에 상징물을 설치하는 일은 국제 규범이나 국제 관행에 비추어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이는 근대 외교제도의 근간과 연관이 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소녀상은 대사관, 총영사관 등 외교시설보다 접근성이 좋고 공공성이 보장된 시민공원 혹은 역사기념관 등에 설립되는 것이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부산 소녀상 설치로 일본 내 지한파의 입지가 급격히 위축되고 국제 사회에서 우리의 입장도 다소 곤란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애국적인 동기로 시민들이 설치한 소녀상이 도리어 우리의 대일 외교 입지를 좁혀 놓은 아이러니가 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Q6. 한·일 간 역사 갈등은 해결이 가능한 문제일까요?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까요?
이원덕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은 정부가 취하는 정책적 묘수나 해법에 의해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이 정부 간 정책 조율이나 합의를 통해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을 꾀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역사 갈등은 양 국민의 역사 인식의 근본적 괴리에서 오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학계의 역사 연구 축적과 저변으로의 성과 확산, 더불어 시민사회의 다양한 교류 협력을 통해 장기적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일본 측에서 야스쿠니 참배나 ‘위안부’ 왜곡, 역사 교육의 퇴행 등 잘못된 역사 인식에 뿌리를 둔 역사 도발이 정치적 목적으로 자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로서도 단호하고 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역사 문제가 정치 외교적 차원의 대립과 마찰로 표면화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다루고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양국 관계에는 안보, 대북 공조, 경제, 사회문화 교류, 환경 생태, 에너지, 과학기술 등 협력해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과 글로벌한 차원에서 양국이 공조하고 협업을 꾀할 수 있는 영역은 의외로 많습니다. 역사 갈등 문제로 인해 이 모든 영역이 매몰되어 버린다면 당장의 국익 훼손은 물론이고 21세기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영의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Q7. 끝으로 한·일이 역사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 공존하기 위해 우리 재단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한 당부나 제언의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원덕 동북아역사재단은 점차 확산·심화되는 동북아 지역의 역사·영토 갈등을 넘어 역사 화해를 이룩하고 궁극적으로 동북아 평화와 공동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학문 연구와 네트워크 구축, 교육 홍보를 목적으로 설립된 대단히 유니크한 공공 싱크탱크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재단은 동아시아 역사 분야의 연구 축적은 물론 정책적으로도 한국의 역사 외교 추진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다만 감히 재단에 두 가지 제언을 드리자면 첫째, 재단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는 재단 자체의 연구 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적어도 독도를 포함한 동북아 영토 문제나 동아시아 역사 갈등과 연관된 이슈에 관해서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통용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이 양성되고 배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 인력이 행정과 사업 추진에 매몰되지 않고 학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정책적, 제도적 배려도 필요할 것입니다. 둘째, 재단이 매년 시행하는 연구지원 사업의 경우 예산 집행의 경직성 때문에 대부분 단년도 사업으로 진행되다 보니 제출 마감에 쫓겨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젝트 수행’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중장기적 연구 기획이 가능하도록 예산집행 제도가 다년도 방식으로 바뀌거나 탄력적으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