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냉각기를 맞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한일의 극명한 시각차가 만들어 낸 현실이다. 일본은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개인 배상 의무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월 4일, NHK에 출연한 일본 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국제법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의 시선 차가 이렇게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기 강제징용을 ‘국제법 상식’에 대입해 보기 위해 국제법 전문가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승환 교수를 만났다.
최승환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 법학석사와 미국 뉴욕대학교 로스쿨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WTO 보조금 상계조치위원회 중재전문가 및 세계국제법협회 한국본부, 대한국제법학회, 국제경제법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중법학회 회장 및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논문으로 「국제법상 중국의 대한 사드 경제보복조치의 주요 쟁점과 평가」, 「유엔 대북 비확산결의 이후 지속가능한 동북아 지역개발 프로젝트의 주요 유형과 과제」 “Human Dignity as an Indispensable Requirement for Sustainable Regional Economic Integration”, “The Applicability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 to the Regulation of International Trade of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A New Haven Perspective”등 국제법, 국제인권법, 국제경제법과 관련해 썼으며, 저서로 『국제경제법』, 『국제법』, 『WTO 농산물 무역분쟁 사례연구』, 등이 있다.
Q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가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이라 보고 있는데요. 한국에서 강제징용을 떠나야 했던 이들은 얼마나 되나요?
A
일본은 태평양 전쟁 시 군수물자 확보를 위해 남북한 전체 인구의 약 30%에 달하는 780만 명을 국내외로 강제징용 했습니다. 여기에는 위안부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이들 중 노무자로 동원된 한국인은 광산과 집단농장 등 11,523개소 이상의 작업장에서 강제노동을 합니다. 열악한 노동환경도 문제지만 인신구속, 과도한 폭력, 집단 학살, 임금 미지급 등의 부조리한 처우로 인해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Q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배상 청구를 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지만,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일본과 한국의 입장차가 이토록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우선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청구권협정’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입니다. 이 협정에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조선에 투자한 자본과 일본인의 개별 재산 모두를 포기하고, 3억 달러의 무상 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한일 양국은 타방국가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에 합의했고요. 이렇게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입장차가 생기는 이유는 조약 문언이 모호해 두 나라가 다른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식민지배에 관련된 모든 민사청구권을 양국이 상호 포기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한국 대법원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관련 피해자의 개인 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서 포기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Q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기각됐습니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은 일본과는 완전 다른 판결을 내렸죠. 전범기업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법리적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요?
A
일본 아베정권은 우리와 강제징용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일본이 강제징용 재판에서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과거 한반도 식민지배는 합법적이었다는 거죠. 1910년 한국병합조약에 따라 한국 정부가 요구해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해준 것이고, 따라서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자국민 전시동원은 적법하다는 겁니다. 이런 논리를 가지고 한일청구권협정에 사인했으니 개인 청구권은 65년 한일협정으로 소멸했다는 게 아베 정부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일본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러한 판결을 내린 이유는 첫 번째,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의 청구권을 부인한 일본법원의 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고 있는 한국 헌법의 핵심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할 뿐 아니라 한국의 공공질서에도 반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한일청구권협정에는 일본의 국가기관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청구권은 조약과 같은 국가 간 합의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이죠.
Q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일본은 ‘국제법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배상책임이 없다는 일본의 주장을 국내 법조인들은 대법원판결의 진의를 왜곡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고요.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A
저는 아베 총리와 일본이 하는 이야기도 이해가 됩니다. 양 정부의 수반이 합의해서 불가역적으로 다 해결된 것으로 했는데 이제 와서 뒤집으니까 상식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는 국제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왜곡한 것입니다. 삼권분리체제 하에서는 조약이든 법률이든 최종적인 해석은 법원에서 하는 겁니다. 2001년 식민주의에 대한 청산을 역사적 과제로 선언한 더반선언, 2005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 등을 보면 반인도적인 인권유린 행위는 국제법상 강행규범에 위반되는 것으로 원인무효입니다. 일본의 시민단체, 양심 있는 일본의 국제법 학자들도 개인의 청구권을 국가가 포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을 정확히 해석·적용한 것입니다. 법학자로서 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강제징용 동원을 위해 일본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관여를 했고, 강제징용 노무자에 대해 노예에 준하는 가혹행위와 반인도적인 인권유린행위를 한 것은 국제법상 강행규범(jus cogens)에 위반되는 국제범죄행위라는 점에서 국가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피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국 대법원 판결 집행에 대한 일본정부의 강압적인 내정간섭 행위는 국제법의 기본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것, 강제징용 노무자의 모집과 관리에 있어 일본정부가 조직적·강제적으로 관여한 사실 자체를 은폐, 부인, 왜곡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2005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피해자권리 기본원칙’과 같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인류 보편적인 인권가치를 우선시하는 현대국제법의 기본체제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법적으로 용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
Q
일본은 한국 정부에 중재위원회를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은 국제법과 협정 위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A
중재 회부는 당사국의 자발적인 합의를 전제로 합니다. 다시 말해 중재를 통한 분쟁해결은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라는 거죠. 한국정부는 일본 정부에 외교적 협의를 통한 분쟁해결을 계속 제안해 왔고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쟁해결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은 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중재위원회 구성에 반대하는 것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한다면, 2011년 한국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요청을 했고 이를 일본정부가 먼저 거부했으니 일본정부가 먼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봐야죠. 개인적으로 저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와 중재위원회의 구성상 정치적 타협에 의한 해결책이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중재절차를 통한 분쟁해결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Q
일본 정부가 한국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강제징용사건이 국제사법재판소로 넘어가면 우리가 불리하다는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명 ‘페리니 판결1)’ 때문인데요. 이에 대해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각주 1) 지난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이탈리아 전쟁포로였던 루이지 페리니Luigi Ferini가 독일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배상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그러자 독일 정부는 이에 불복해 주권국가의 행위는 다른 주권국가의 사법적 심사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가면제’원칙을 내세워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고, 2012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 15명의 판사 중 12명이 국제면제 원칙에 따라 독일의 편을 들어주는 판결을 했다.
A
페리니 사건과 강제징용 사건은 매우 다릅니다. 페리니 사건은 국가면제가 적용되지만 일제하 강제징용 사건은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죠. 국제법상 국가면제란 외국 국가기관의 주권적 행위와 국가자산에 대해 국내법원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원칙입니다. 페리니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국가소속 군인이었지만 일제하 강제징용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민간인입니다. 또한, 독일정부를 상대로 제소한 페리니 사건과 달리 일제하 강제징용 사건은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국인 피해자’가 제소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국가기관독일정부을 상대로 제소한 페리니 사건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될 수 있겠지만 일본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내소송에서는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될 수 없습니다.
Q
한일갈등이 연일 고조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생각으로 지켜볼 수만은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풀어가는 게 가장 현명한 대처일까요?
A
감정적 대립의 소모적 갈등은 하루빨리 끝내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규범에 입각한 평화적인 분쟁해결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에 대한 한일 간의 입장이 전혀 다르다는 거죠. 그러나 이는 국제법으로 해결이 가능합니다. 조약의 해석에 관한 분쟁은 국제법상의 분쟁으로 국제법이 적용되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한국과 일본이 가입한 ‘비엔나조약법협약’(전문)에 의하면, 조약에 관한 분쟁은 다른 국제분쟁과 같이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준수”를 포함하여 “정의와 국제법 원칙”에 따라 해결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강제징용 피해배상에 관한 분쟁 역시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적용과 준수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WTO 분쟁해결기구(DSB)를 통한 해결이든,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한 해결이든 결론이 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그러나 강대국과의 분쟁에는 양자 간 협상보다 다자간 분쟁해결절차가 약소국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그 유용성과 실효성 및 승소 가능성을 고려해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바람직하고, 더 짧은 시간에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 군사행동과 불법행위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고 피해를 본 것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와 정당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독일 정부처럼 일본도 식민 지배에 관련된 일본의 모든 불법행위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피해배상을 하는 겁니다. 일본의 사과로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된다면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고, 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선진국으로서 거듭날 것이라 확신합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일본과 한국의 깨어있는 지식인들과 시민사회가 연대해서 자국 정부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정부가 될 수 있도록 감시활동을 지속해서 전개해야 한다 봅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은 ‘명분’ 못지않게 ‘실리’도 중요합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에 대한 실리적인 방안으로 주요 자재 및 부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국내 중소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기를 바랍니다.
Q
대한국제법학회, 한국국제경제법학회,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 회장을 역임하시는 등 국제법 전문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법 전문가로서의 연구계획과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한국 관련 국제현안에 대한 한국의 입장과 국가 관행을 국제사회에 영문으로 소개하는 국제법 영문 전문학술지 『KYIL (한국국제법연감)』을 2015년 10월에 창간했습니다. 올해 9월경에는 현재 KYIL 한국본부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성재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의해 제6권이 발간될 예정입니다. 저는 2019년 3월부터 KYIL 편집위원장직을 맡고 있는데, 향후에는 일제하 강제징용 피해배상 등 한국관련 국제현안에 대한 외국학자들의 논문들을 게재하여 명실상부한 국제학술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또한 2018년 3월부터 공익법인 이사장 직무를 맡고 있는 한중법학회 회장으로서, 한국과 중국 법학자 및 법조인들 간에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국제학술회의와 학술교류활동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과 미국, 중국의 국제법률전쟁 수행방식의 비교연구에 많은 관심이 있어 조만간 ‘일본의 국제법률전쟁 수행방식’에 관한 논문을 국제법 전문학술지에 발표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