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어떤 나라였을까. 이들의 역사는 엄연한 한국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국 및 일본 학계와 역사교과서는 중국사, 일본의 속국, 조공국으로 기술하고 있다. 본서는 전근대와 근현대 시기에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어떻게 계승되고 인식되었는지와 함께,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검토하고 비판한 연구의 결과이다.
우리 역사 속 고조선, 고구려, 발해
역사에 대한 논쟁은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역사 계승 인식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그리하여 이 사업에 참여한 공동 연구자들은 각 시기별 주요 저술이나 인물을 통해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어떻게 기술하고 인식하였는지 살펴보았다. 중간 발표와 결과 발표를 통해 상호 연구 내용을 토론하고 조정하였으며, 특히 고조선, 고구려, 발해 역사 현장을 함께 답사하며 연구 대상으로 삼은 자료나 인물의 성격과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자 했다.
전근대 시기 계승 인식
《한국고대사 계승 인식》Ⅰ(전근대 편) 에서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멸망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의 주요 저술에 나타난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 인식과 그 계승 인식을 검토하였다. 한국고대사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을 시작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를 대상으로 한다. 이 가운데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에 존재한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는 그 나라가 처한 위치로 인하여 한국고대사의 공간적 범위를 설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은 시대순으로 고조선에 이어 고구려, 발해로 연결된다. 고조선 주민이 고구려 주민이 되었고, 고구려 주민이 발해의 주민이었다. 발해 멸망 후 그 유민은 거란 내에서 동화되지 않고 ‘발해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남쪽의 고려로 이주하였다. 고려는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고, 발해인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조선은 고조선을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인식하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정리하고, 18~19세기에는 발해를 신라와 함께 ‘남북국’이라며 적극적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근현대 시기 계승 인식
《한국고대사 계승 인식》Ⅱ(근현대 편) 에서는 한말, 일제, 그리고 해방 전후 시기 일제의 식민사관과 만선사관에 맞서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가 한국 역사의 일원이며, 이들이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검토하였다. 조선이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 내지 못하고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신세가 되면서 우리의 역사도 시련을 맞이하였다. 일제는 ‘한국은 자주적 발전이 없고 항상 외세에 좌우되어 왔으며, 사회는 정체되어 근대화의 움직임이 전혀 없고, 문화는 중국문화를 모방하여 한국 독자의 것이 없었다.’라는 식민사관을 만들어냈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한반도와 별개의 역사로 간주하는 인식도 확산됐다. 일본이 만주를 중국사에서 제외하자, 중국의 역사학계는 만주 지역이 중국의 일부임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고조선, 고구려, 발 해의 역사를 한국사가 아니라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 하였다.
이와 같이 일제가 식민사관과 만선사관을 통해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중국 연구자들도 만주 지역에서 펼쳤던 우리 민족의 활동을 부정하자 우리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들의 한국고대사 연구는 독립투쟁의 일환이었다. 일제와 중 국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 역사 왜곡을 논리적으로 비판하였고, 민족정신을 지키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였다.
연구의 결론과 미래의 역사인식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고려, 조선을 거쳐 한말, 일제, 그리고 오늘에 이르도록 한국사의 핵심 국가로 인식되었고, 한국사 그 자체였다. 반면, 중원(中原) 지역의 역대 중국 왕조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로 간주한 바 없었고, 장성(長城)을 경계 삼아 남쪽을 화(華), 바깥을 이(夷)로 구분하였다. 중국 학계가 발해들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한 것조차도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20세기 전반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한족(漢族) 중심의 역대 중국 왕조와 오늘날 중국의 정사인 25사(史)에 포함된 요·금·원·청나라는 고구려, 발해, 북방민족을 오랑캐라 간주하며 중국사에서 제외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원의 역대 왕조가 7세기 고구려, 10세기 발해 멸망 후 이들을 자신의 역사로 인정하였을 가능성은 더욱 낮다.
일제 시기 우리 역사 연구자들의 주된 연구 주제 중 하나는 ‘민족’ 문제였다. 가령, 박은식은 조선족·만주족 모두가 단군의 자손이며 이를 대동민족(大東民族)이라 하였고, 신채호는 선비족·부여족·지나족·말갈족·여진족·토족(土族)의 6종을 동국민족(東國民族)이라 하였으며, 4천 년의 동국 역사는 부여족의 흥망성쇠의 역사라 하였다. 안확은 만주와 한반도에 거주한 민족이 모두 조선민족이고, 숙신·옥저·맥인·진인(辰人), 선비·요·금·만주인이 이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지 1백여 년, 다시 광복을 맞이한 지 7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역사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 인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일제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구려와 발해를 한국사에서 제외하는 점에서 일치한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인식이 시간상으로 1백여 년의 차이가 있고, 인식의 주체가 제국주의 일본과 현대의 중국이라는 차이가 있음에도 한국사에서 외부 세계의 영향을 과장하고, 한국사의 범위를 한반도로 한정시키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사상과 학문이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시대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면, 우리 고대사도 여기에 부 합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학계는 중국과 일본의 자국사 합리화를 위한 한국고대사 왜곡과, 분단 상태에서의 남북 간 역사 해석 차이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울러 통일 이후 동아시아 및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취할 합당한 역사 인식도 고민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