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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코리안 디아스포라
한국인 조상을 찾는 중국 좡족 김씨
  • 김인희, 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 소장


한국인 조상을 찾고 있는 중국 좡족 루진짜이 선생님

 


2005년 봄 어느 날, 당시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이었던 위안리(苑利) 선생은 나에게 뜬금없는 소릴 했다. “런시, 광시성(廣西省) 더바오현(德寶縣)에 사는 좡족(壯族)이 한국인 조상을 찾고 있어. 한국 대사관에도 가보고, 북한 대사관에도 가봤는데, 아직 못 찾았다고 하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좡족이라 하면 중국 최남단 광시성 일대에 거주하는 남방계 민족이 아니던가? 더바오현은 작은 미니말로 유명한 곳이다. 후한서에 예()에는 과하마가 있는데(有果下馬), 키는 3척이며 말을 타고 과일나무 아래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高三尺, 乘之可於果樹下行) 작다는 기록이 있다. 나는 더바오의 미니말이 과하마가 아닐까 하여 일찍이 더바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해 8월 광시성 난단현(南丹縣)의 흰바지야오족(白褲瑤族) 답사를 마치고, 좡족 김씨를 찾아 더바오로 향했다. 흰바지야오족은 광시성과 구이저우성(貴州省) 경계의 산악 지대에 3만 명 정도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삼각형 모양의 특이한 흰색 바지를 입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흰바지야오족이라 부르고 있다. 남방의 한여름은 뜨거웠고, 두 명의 웃통 벗은 남자가 고물 버스를 번갈아 가며 운전해 8시간 만에 톈양(田陽)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나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좡족 김씨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루진짜이(陸金在) 선생께 연락했다.

호텔 로비로 루 선생이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쌍꺼풀 없는 눈매에 둥글넓적한 얼굴.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퉁구스 계통의 얼굴이다. 웃으면 그대로 하회탈이 된다. 남방계 민족들은 일반적으로 짙은 쌍꺼풀이 있다. 고향마을에서 루 선생 형제들만 쌍꺼풀이 없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루 선생 일가가 외모도 다르고 한국에서 온 김씨의 후손이기 때문에 김가(金家)’네라고 부른다고 한다.

루 선생이 베이징 정파학원(政法學院)에서 공부할 때 한국인의 후손인 것이 알려져 정부 외사반(外事班)에서 찾아온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외사반 사람들은 김씨 조상이 위안부가 낳은 아이냐고 물었는데, 루 선생은 화가 나서 우리 조상은 남자지 여자가 아니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더바오 특산 미니말

 


필자와 흰바지야오족 중학교 선생님

 

 

다음 날 아침 나는 루 선생 부부와 함께 더바오현 장솽진(降雙鎭)으로 출발하였다.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루 선생 동생 두 분이 와계셨다. 루 선생 형제분들께서 준비해주신 음식을 먹으며 김씨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조상님은 1886년 이곳에 도착하셨습니다. 고향은 휴전선에서 37킬로미터 떨어진 곳인데 남쪽인지 북쪽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섬 이름은 두 글자로 ‘~라 부르며, 높은 산이 없고 평지가 많다고 합니다. 형제 두 분이 배를 타고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大連)으로 갔다가 표류해서 해남(海南)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 해남은 광둥성(廣東省) 남쪽의 베트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곳에서 동생은 죽고 조상님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조건 북쪽으로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향을 잘못 잡아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은 원시 산림으로, 일본과 8년 전쟁 중에도 폭탄 한 번 떨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습니다.

조상님은 한국에서 올 때 구리로 만든 세숫대야와 옥을 가지고 왔습니다. 구리 세숫대야는 배에서 빗물을 받아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구리를 처음 보았기 때문에 황금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옥은 조상님의 어머니가 아들을 보호해 달라고 준 것이라고 합니다.

조상님의 함자는 김철찬(金哲燦) 혹은 김철황(金哲煌)입니다. 조상님은 말도 통하지 않는 열대의 낯선 마을에서 진정으로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름을 김진장(金眞壯)으로 바꾸었습니다. 좡족 집안의 데릴사위가 된 후 다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데릴사위는 장인집의 아들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장인의 성을 따라 루()라 하고, 이름도 장인집 항렬자인 ()’을 넣어 루룽지(陸榮基)라 하였습니다.

조상님은 머리가 좋으신 분으로 한글로 많은 글을 쓰셨는데, 몇 상자는 되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보았는데 모두 한글이라 읽을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조상님이 쓰신 글들은 문화대혁명 때 불태워졌습니다. 당시에는 오래된 물건을 모두 미신이라고 하여 불태웠습니다. 족보도 불태우고, 세수대야도 없어졌습니다. 옥은 누가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조상님의 무덤은 마을 뒤쪽 관인산(觀音山) 중턱에 있습니다. 묘비에는 조상님의 원래 이름대로 김진장의 묘라고 썼습니다. 음력 33일에는 모든 후손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필자를 만나기 위해 오신 루 선생님의 형제들

 

✽✽✽

 

루 선생은 김씨 조상의 5대손이다. 루 선생이 손자가 있으니 이미 7대손까지 있는 셈이다. 마을에는 김씨 조상의 후손이 20호 정도 살고 있으며 전체 후손은 120명이라고 한다. 루 선생님은 한국의 본가를 꼭 찾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루 선생이 한국 본가를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

왜 한국의 본가를 찾으려 하시는 거죠? 김씨 조상님은 돌아가셨고, 이미 7대가 흘러 김씨 조상님이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하는 후손도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김씨 조상의 무덤이 있는 관인산

 

 

루 선생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

조상님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조상님은 데릴사위였기 때문에 무시를 많이 당하셨습니다. 우리 후손들도 결혼할 때 마을에서 아내를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제 형님의 경우에도 형수님을 이웃 마을에서 데려왔습니다.

감실에 모신 조상님 위패에는 ~~’라는 함자를 썼는데, 원래는 陸金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성씨에 자를 넣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고, 5대에 이르러서야 이름에 넣고 있습니다. 저는 이름이 金在이고 형제들 이름은 金萬’, ‘金泰’, ‘金昌입니다.

조상님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고 합니다. 자손들에게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국의 본가를 찾으면 꼭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족보가 없어 근원을 알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만약 제가 찾지 못한다면 후손들이라도 반드시 찾았으면 합니다.”

 


좡족 김씨의 표류 노선과 도착지

 

 

✽✽✽

 

루 선생의 형제분들은 나를 가족으로 대했고, ‘메이메이(妹妹)’라고 불렀다. ‘메이메이는 중국말로 여동생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도수 18도 정도의 쌀로 빚은 술을 마셨는데, 아주 맛있는 술이라며 한국에 이 술맛을 전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형제분들은 나에게 한국말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 , , 사랑해등을 알려주었다. 루 선생 형제들은 서투른 발음으로 조상의 말을 따라 했다. 그리고 한국은 정말 잘 사는지, 날씨가 더운지 등 이것저것을 물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귀국하기 위해 난닝(南寧)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루 선생은 버스표를 사주셨고, 열대과일도 한 바구니 주셨다. 빡빡한 일정으로 지친 나는 버스에 타자마자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농익은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옆에 둔 과일 바구니에서 나는 냄새였다.

루 선생과 그의 형제들이 떠올랐다. 루 선생은 왜 그토록 한국의 본가를 찾으려 하는 걸까? 물론 조상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것는 것은 아닐까? 김씨 조상 이전의 역사는 텅 비어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서글서글한 눈매에 사람 좋은 루 선생, 아니 좡족 김씨 아저씨를 떠올리며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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