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역사문서관(RGIA)
내가 러시아문서관에 다닌 이유
나는 논문이나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각주와 참고문헌이다. 과자나 가공식품을 살 때 그 재료가 무엇인지 봉지 뒷면을 보는 것과 같은 이유다. 논문이 요리라면, 그 주재료로 무엇을 썼는지 알고자 함은 인지상정이다. 갓 수확한 신선한 재료를 쓴 요리가 이미 밥상에 나갔던 재료들을 다시 버무린 음식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다.
나에게 이러한 상식과도 같은 진리를 몸에 익도록 훈련시키신 분은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었던 아난이치(B. V. Ananich) 선생이다. 선생님은 역사이론에 특화된 관변역사학 보다는 아카이브에 충실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실증사학의 계보를 잇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구소련의 붕괴 이후 혼란했던 시기를 사료의 향기에 취해 꿈같은 시간을 보낼 수있었다.
학위를 마친 후 다시 찾은 러시아에 아난이치 교수님은 없었다. 2015년에 작고하셨다. 하지만 2022년 1년 간의 러시아 파견기간 동안 교수님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봉쇄의 혼돈 속에서도 아카이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셨다. 전쟁으로 인해 아카이브 자리를 잡기 위해 아침 일찍 줄서야 하는 수고스러움도, 관광객으로 인한 소란스러움도 없었다. 나는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서 학교 다니듯이 매일 문서보관소를 다녔다.
러시아문서관의 개요
러시아의 면적은 한국의 170배인 약 1,700만㎢이고 160여개 민족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이러한 방대한 영토와 다양한 인종을 거느린 제국을 지탱하는 생명력은 투명한 문서관리다. 러시아는 제국의 경험을 통해 거대한 다민족 국가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힘이 정확한 기록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말 바꾸기와 가짜뉴스를 제압할 엑스칼리버가 바로 신뢰할 수 있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해군함대문서관(RGAVMF)의 경우, 러시아제국의 해군이 창설되었던 1696년 자료부터 오롯이 보존되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현재 러시아에는 연방과 지방문서관을 합쳐 약2,600여 곳이 존재한다.
러시아 사료(Archives)들은 러시아를 깊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다. 다른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이용하는지 아는 것은 필수다. 지방문서관들이 러시아 전역에 산재해 있지만 대부분의 주요 문서관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 문서관에는 소장 자료에 대한 가이드북이 비치되어 있어 사전에 자료조사를 할 수 있으며, 홈페이지에서 키워드 검색이 가능하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놓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러시아역사문서관(RGIA)의 경우, 소비에트 시기에 제작된 가이드북을 피디에프(PDF) 파일로 탑재해 놓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자료의 특징이나 분량 등을 파악하는 데 편리하다.
러시아연방문서관(ГАРФ)열람실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이길 수 없다
스마트폰 알람으로 시작되는 우리들의 일상은 인터넷 검색 기록과 감시카메라(CCTV)의 영상으로 실시간으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록은 편리하지만 아날로그를 이길 수 없다. 먼 훗날 내가 원본을 스캔해 디지털 자료로 수집해 놓은 기록물을 후속 세대 역사학자가 검색하면서 나에게 물을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외국인들이 철수한 러시아 땅에서 왜 매일 아카이브에 다녔냐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사람의 냄새가 추억만큼 오래가듯이, 특히 사랑했던 이들의 체취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아카이브에는 100여 년 전의 내러티브만 있는 게 아니다. 잉크로 새겨진 필체에는 기록 당시의 감정의 떨림과 생산자의 고민도 함께 읽힌다. 육필 원고를 담고 있는 문서꾸러미를 열면 보고서와 편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종이에서 나는 향취는 행간에 숨어 있는 감정들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러시아문서관으로 여러분들을 안내할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두만강 지도(1861), 러시아해군함대문서관(РГАВМ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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