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3월 『압록강은 흐른다』의 초고를 완성한 이미륵은 독일의 유명 출판사인 피퍼출판사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던 동양 사람들의 영혼을 순수한 형상들로 나타내고자 했을 뿐”이라고 작가의 집필의도를 분명히 피력했다. 2년 후인 1946년 5월 이미륵의 자전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출판되며 그해 ‘독일어로된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독일에서 발표된 그의 수많은 작품은 동서양 문화를 중개하는 역할을 했고, 그의 사후(死後)에도 오랫동안 독일인들에게 이미륵은 ‘완전한 인간의 한 초상’으로 회고되고 있다.
의학도에서 독립운동가로
이미륵(본명: 이의경)은 1899년 3월 8일(음력) 황해도 해주군 해주면 서영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상인으로 크게 성공한 이동빈과 청주 이씨 사이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천자문과 소학, 사서삼경을 비롯한 통감 전권(全卷)과 당시(唐詩)를 익혔고, 해주 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강의록을 독학해 1917년 경성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경성의전 3학년 재학 시절이던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 운동에 가담했다. 이후 1919년 5월에 설립된 상하이 임시정부 산하 비밀단체 ‘대한청년외교단’에서 편집국장직을 맡아 외교 시보를 발행하는 일을 전담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1919년 8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경술년(1910년)의 국치일(8월 29일)을 기해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이때 이의경은 ‘국치기념경고문’을 안문(案文)해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1919년 11월 대한청년외교단의 비밀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수배 인물로 쫓기게 되었다. 그는 지인의 도움으로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산하 대한적십자의 대원으로 간호사를 양성하는 일에 종사했다.
독일 망명길에 오르다!
1920년 4월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인 안봉근과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성 베네딕트회 빌렘(Nicolas Joseph Marie Wilhelm) 수사의 도움으로 그는 중국인 신분의 학생 여권을발급받아 상하이를 떠났다. 그해 5월 26일 독일 남부 도시 뷔르츠부르크 근처에 있는 뮌스터슈바르차하 수도원에 도착해 독일에서의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20년 6월 29일 궐석재판에서 출판법 위반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수도원에 머물며 독일어를 독학으로 습득했다. 1921년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 입학해 1년간의 청강 과정을 거쳐 1922년 4월부터 의과대학에서 학업을 시작했다. 1924년에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로 전학해 의학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나 중병(重病)으로 의학 공부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1925년 뮌헨대학교로 전학해 동물학과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학업을 이어갔다. 뮌헨대학 시절이었던 1927년 2월, 그는 당시 베를린대학교(현재 훔볼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던 이극로(1893~1978)와 프랑스 파리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던 김법린(1899 ~1964) 등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 피압박 민족결의대회’에 참가했다. 이들은 일본의 야만적인 침략 행위와 잔인한 강탈 정치로 핍박당하고 있는 ‘한국의 문제’를 세계에 널리 알렸다. 이의경은 “인간 삶의 최후의 길이자 유일한 길인‘자유’를 위한 목숨 건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1923년 뷔르츠부르크대학교 한인 유학생들. 앞줄 왼쪽 첫 번째가 민범식(충정공 민영환의 장남)이고, 두 번째가 이미륵이다.
독일의 저널 공간에 ‘한국적 다름’을 새기다!
이의경은 1928년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곧바로 귀국할 수 없었다. 독일 뮌헨에 홀로 남아 ‘한국적인 것’을 표상하는 글을 저널 공간에 소개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1931년 『디 다메지』에 그의 첫 단편 「어느 날 밤 골목길」을 발표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사람 사이의 주고받는 행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완전히 제거한 순수의 선행(善行)을 해학적 웃음이라는 수사학적 전략으로 한국인 특유의 도덕적 이상향을 서술하며 독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박사학위를 마친 뒤에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는데 1932년 독일 명문가 출신의 알프레드 자일러(Alfred Seyler; 1880 ~1950) 박사의 후원으로 ‘이방인의 고독한 삶의 순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1933년 이후 나치의 광적인 선동퍼레이드와 극단적인 편향성에 따른 사회적 대혼란을 겪으면서 그의 글은 단순히 그 자신의 로컬리티 문화, 즉 ‘한국의 장례식’, ‘한국의 조상숭배’를 비롯해 수십 편의 한국의 전래동화 등을 재생하는 데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의경은 독일에서의 디아스포라 경험을 내재화한 서양적인 것과의 관계성 속에서 한국적인 ‘다름’을 서술하는 그만의 독자적인 필법을 구축해 나갔다. 1933년 발표한 단편 「유럽 지식인」에서 그는 한국의 한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유럽식으로 해부된 유럽 지성인의 단면적인 앎에 ‘의혹’을 제기했다. 같은 해 12월 「서양의 영향- 동양의 옛 종교들」과 「기독교의 유입-유물론의 속박 속에서」를 발표했다. 이 두 편의 글을 통해 유럽문화의 강제 이식(移植)으로 한국문화의 고유한 가치와 유구한 역사, 한국인의 순수한 믿음이 훼손되고 왜곡되었던 사실을 폭로했다. 1934년 발표한 「한국과 한국인-먼 아시아 일본 정치 엿보기」에서는 유럽 열강의 약탈자 속성과 일본의 ‘무분별한 식민정책’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유럽인들의 방관자적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단편 「아이의 수심」에서 그는 순수하고 원초적인 앎의 세계에 존재하는 ‘무경계’로써 편견 없는 사고를 만들어내는 한국 아이들의 아이다운 ‘수심(愁心)’의 행위에 비유하며 유럽의 편파적인 지식 경계 허물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단편 「이상한 사투리」에서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반목(反目)이 아닌, 같은 시선으로 관대한 공감을 나누는 ‘세계 동포의식’을 제안하는 등 ‘한국인의 철학적 사고’를 독일의 여러 지역 저널에 알리는 데 힘썼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후원으로 2019년 5월 29일 이미륵 박사 기념동판이 그래펠핑시에 설치되었다.(뮌헨 『메르쿠어』기사)
양부모 자일러 박사의 가족과 간식타임
‘압록강은 흐른다’: 인간 영혼의 순수 리듬을 재생하다
1935년부터 이의경은 필명(筆名) 이미륵으로 본격적인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단편 「수암과 미륵」에서 시작된 그의 자전적 이야기는 1942년 6월 여러 개의 단상을 엮어 만든 이야기 「어느 한국인의 유년에 대한 회상」으로 확장되고, 마침내 1946년 자전적 장편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로 완성되었다. 10년에 걸쳐 완성된 그의 소설은 나치의 출현과 전쟁 도발, 잔혹한 홀로 코스트, 그리고 패전(敗戰)에 이르기까지의 참혹한 역사적 현장 한가운데서 작가가 직접 겪었던 독일에서의 정치 사회적 디아스포라 경험을 완전히 제거하고 오직 “평화롭고 꿈결처럼 포근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그림들”로 구상되었다. “가슴의 언어로 쓰인 그의 책은 독일사람이 미처 찾지 못한 단어와 문장들로 한민족의 영혼과 진실의 감정”을 전했다.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영혼을 일깨워 주는 절제된 표현, 신념을 북돋아 주는 인간성 등은 마치 노련한 장인의 비단 두루마리를 펼쳐보는 듯한” 감동을 전한다. 이미륵은 전후(戰後) 해체된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독일 문학의 미래 지향성을 묻는 독일작가보호연맹의 잡지 『슈리프트슈텔러』의 질문에서 문학인들이 “(인간의) 원초적 리듬과 울림을 만들어내는 영혼의 호흡을 감지할 것”을 강조했다.
이미륵 박사의 친필
이백의 시로 번역은 다음과 같아. "오로봉을 붓으로 삼고, 삼상 강물로 벼루를 만들어, 푸른 하늘 종이로 펼쳐 두고, 내 마음 속의 시를 쓰리라."
교육자로서의 마지막 생
1947년 뮌헨대학교 동양학과 외부 교수로 초빙된 이미륵은 한국어를 비롯해 한국의 역사, 맹자, 동아시아 문학사 등을 강의하면서 패전으로 절망에 빠진 독일 청년들이 “인간 영혼의 가장 내면적인 가치를 끌어올려 스스로 삶을 구원하고 치유해 ‘새로운 인간’”으로 성장해 새로운 철학과 신념을 세울 수 있도록 교육에 헌신했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1950년 3월 20일 고독한 망명자의 생을 내려놓고 뮌헨 근처의 작은 공원묘지에 묻혔다.
문화체육부 지원으로 1997년에 새롭게 조성된 그래펠핑시의 이미륵 묘소(출처: (사)이미륵박사기념사업회)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독일 망명 작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 초(超) 디아스포라와 초(超) 로컬리티를 통한 세계관적 전략으로서 ‘순수’를 이야기하다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