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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NAHF 포럼〉 “신냉전의 도래와 문명의 충돌” 개최
동북아포커스 〈2023 NAHF 포럼〉 “신냉전의 도래와 문명의 충돌” 개최 동북아역사재단은 8월 24~25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신냉전의 도래와 문명의 충돌”이란 주제로 <2023 NAHF 포럼>을 개최하였다. NAHF는 동북아역사재단(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영문 표기의 약자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탈냉전 이후 약화되었던 대립과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이념적 대립구도의 모호성과 회색지대에 속하는 국가들의 존재, 예를 들어 브릭스(BRICS) 국가들을 들어 ‘신냉전’으로 보는 것에 부정적인 견해가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대륙세력과 미국 중심의 해양세력이 충돌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와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을 중심으로 대륙세력은 확장하고 있으며, 미국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Free and Open Indo - Pacifi c)’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의 글로벌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각각 인류운명공동체와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 문명담론을 전파하고 있다. 이들 문명담론은 세계를 어떤 문명관으로 이끌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제국담론’ 혹은 ‘지구담론’이라고도 한다. 이들 문명담론은 모두 서구문명을 대신하여 중국문명 혹은 러시아문명이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냉전시기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구별하여 ‘21세기판 제국론’이라도 한다.
김인희 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 소장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 2023년 8월 16일 독도체험관에서는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라는 제목의 기획전시를 개막하였다. 이번 전시는 독도체험관이 영등포로 확장 이전한 후 열리는 첫 기획전시로, 2021년 한국산악회가 재단에 기탁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 관련 자료들로 구성하였다. 김보영 재단 독도체험관 학예사 한국산악회의 자료 기탁 독도체험관 확장 이전을 준비하면서 자료조사를 하던 중 「제 1차 울릉도학술조사 계획서」의 원소장처가 한국산악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국산악회 관계자와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학술조사 계획서의 원본을 직접 보기 위해 방문한 한국산악회 사무실에는 「제 1차 울릉도학술조사 계획서」 외에도 울릉도·독도 학술조사와 관련된 많은 양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었다. 귀중한 자료들을 잘 관리·보존할 것과 전시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약속하고 울릉도·독도 학술조사 등 국토구명사업 관련 문서 72점, 사진 등 디지털 자료 122점을 기탁받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2021년 11월 재단과 한국산악회는 업무협약을 체결하였다. 미공개 자료의 발굴 한국산악회의 기탁 자료에는 현재 한국산악회 변기태 회장이 구입한 자료들이 포함되었다. 그 자료들은 한국산악회(당시는 조선산악회)의 초대 회장이자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대장이었던 석남 송석하(宋錫夏, 1904~1948)가 작성하고 소장했던 것들로 보인다. 이 자료 중에는 1947년 제 1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 파견과 관련하여 선박 제공을 협의하는 조선산악회와 해안경비대 간의 왕복문서, 과도정부 외무처(外務處) 일본과(日本課)에서 조선산악회장의 내방을 요청하는 서신, 과도정부 소속 한국인 공무원들의 울릉도·독도 출장을 허가하는 미군정청의 출장명령서 등이 있다. 이 문서들은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들이다. 재단 홍성근 교육홍보실장의 연구에 따르면, 이 자료들은 1947년 제1차 울릉도학술조사대 파견 경위와 과도정부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과도정부의 독도조사단 파견을 공적으로 증명해주는 문서란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학술조사단원을 만나다 한국산악회 자료 중에는 『독도행각』이라는 일기도 있었다. 『독도행각』은 1953년 제3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에 참가한 김연덕 단원의 일기로, 서울을 출발한 1953년 10월 11일부터 조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10월 17일까지 매일의 날씨와 여정, 본인의 감정 등을 기록하였다. 당시 서울대학교 공대생이었던 막내 단원 김연덕의 생생한 기록이 이번 전시 기획의 시작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김연덕 단원을 인터뷰할 수 있었는데, 관련 인터뷰 영상은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김연덕 단원께서는 울릉도·독도 학술조사의 산증인으로서 독도체험관 개막식에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셨다. 전시를 개막하다 2023년 8월 16일, 76년 전 제 1차 울릉도학술조사대가 서울을 출발한 그날, 독도체험관 기획전시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가 개막했다. 전시에서는 학술조사 계획 관련문서 등 자료들과 울릉도·독도로 가는 멀고 험난한 길, 다양한 학술조사 활동 등을 소개하고 있다. 1~3차 학술조사가 이루어진 1947~1953년에는 미군정 통치, 6·25전쟁, 휴전 등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사건들이 연달아 있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먹고 사는 것조차 해결하기 힘들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한국산악회와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조사를 계속 진행하였다. 어려운 시기에도 독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김보영 재단 독도체험관 학예사
일제의 언론·출판·방송 통제
일제의 언론·출판·방송 통제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총독부는 강력하고도 체계적으로 언론을 통제했다. 매체의 허가와 규제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률을 가지고, 자신들의 지배정책에 부응하는 매체만 허가해주며, 검열을 통해 자신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어긴 매체를 찾아내고, 행정처분과 사법처분으로 매체와 언론인을 처벌하며, 매체를 강제로 폐간시키거나 선전에 동원했다. 일제는 통감부 시절에 입법한 ‘신문지법’과 ‘출판법’을 강점 이후에도 계속 언론통제를 위해 사용했다. 신문지법은 허가제와 사전검열제를 규정했고, 출판법도 원고검열을 통한 허가제를 규정했다. 다만 신문지법에 따라 허가된 신문이나 잡지는 원고가 아닌 교정쇄 검열을 받았고 정치나 시사를 다룰 수 있었지만, 출판법에 의해 허가된 잡지는 원고 사전검열을 받았고 정치나 시사를 다룰 수도 없었다. 방송은 ‘무선전신법’과 ‘방송용사설무선전화규칙’의 적용을 받았지만, 허가와 규제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조선총독부는 1919년 3·1운동의 여파로 1920년 한국인에게 세 개의 신문발행을 허가했으나 이후에는 단 한 개의 신문도 추가로 허가하지 않았다. 1936년 8월 이후에는 두 개의 신문만 존재하다 그나마도 1940년에 모두 폐간됐다. 총독부는 1920년대에는 신문지법으로 잡지를 허가해 교정쇄 검열을 받으며 정치·시사를 다룰 수 있는 잡지들이 발행됐다. 이런 잡지들이 발행 정지당하거나 경영 곤란으로 자진 폐간해 1930년대에는 ‘신문지법’에 따라 허가받은 신문과 잡지는 교정쇄 검열을 받았고 방송은 다양한 출자자들이 참여한 사단법인의 형태로 출발했지만, 총독부가 강력히 통제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돼 사실상 국영방송이나 다름없었다.
박용규 상지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죽은 자의 집, 고구려 벽화고분
죽은 자의 집, 고구려 벽화고분 많은 사람이 사후를 생각한다. 죽은 뒤 어떻게 될까? 죽은 뒤의 삶이 있을까? 그럼, 어디로 가지? 이승 너머의 저승에선 어떻게 살지? 지금처럼 살까? 아니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까? 죽음 너머 저 세상 삶은 어떻게 정해지는 거지? 옛 기록을 보면 죽은 뒤의 삶이 상정되었음은 확실하다. 이 세상 너머에 저 세상의 삶이 있고 그곳에서의 삶은 이 세상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듯하다. 인간관계나 사회질서도 이 세상에서와 비슷하다고 여겼음을 기록이나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 사람들의 죽은 뒤의 삶, 죽은 자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관념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357년 묵서묘지명이 있는 안악3호분은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고구려 벽화고분이다. 널길방과 앞방, 좌우(동서) 곁방,널방, 회랑 등이 있는 이 고분은 고구려의 귀족 저택을 지하로옮겨 놓은 듯한 구조와 벽화로 잘 알려졌다. 특히 동쪽과 서쪽의 곁방 벽화는 각각 귀족 저택의 안채와 사랑채 시설을 재현한 듯한 벽화로 말미암아 보는 이의 눈길을 끌었다. 안악3호분 동쪽 곁방에는 부엌, 고깃간, 차고, 마구간, 외양간, 우물, 방앗간이 그려졌고, 서쪽 곁방에는 무덤주인과 신하들, 무덤주인의 부인과 시녀들이 묘사되었다. 두 개의 곁방이 실제로는 안악3호분 무덤주인부부의 생전 저택의 주요시설에서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호태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