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의 〈일제침탈사 편찬사업〉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과 식민지 지배 실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종합하여 총서로 발간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자료총서, 연구총서, 교양총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치·경제·사회· 문화 분야로 나누어 학계 전문가들이 집필에 참여하고 있다. 〈일제침탈사 시리즈〉에서는 발간된 일제침탈사 총서 가운데 한 권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총독부는 강력하고도 체계적으로 언론을 통제했다. 매체의 허가와 규제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률을 가지고, 자신들의 지배정책에 부응하는 매체만 허가해주며, 검열을 통해 자신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어긴 매체를 찾아내고, 행정처분과 사법처분으로 매체와 언론인을 처벌하며, 매체를 강제로 폐간시키거나 선전에 동원했다.
제1차 조선군 보도연습 선서식 (『매일신보』 1943.5.30., 3면)
조선군 보도부가 주관한 전쟁 동원을 위한 언론인 훈련 과정
허가제를 통한 발행의 자유 제한
일제는 통감부 시절에 입법한 ‘신문지법’과 ‘출판법’을 강점 이후에도 계속 언론통제를 위해 사용했다. 신문지법은 허가제와 사전검열제를 규정했고, 출판법도 원고검열을 통한 허가제를 규정했다. 다만 신문지법에 따라 허가된 신문이나 잡지는 원고가 아닌 교정쇄 검열을 받았고 정치나 시사를 다룰 수 있었지만, 출판법에 의해 허가된 잡지는 원고 사전검열을 받았고 정치나 시사를 다룰 수도 없었다. 방송은 ‘무선전신법’과 ‘방송용사설무선전화규칙’의 적용을 받았지만, 허가와 규제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조선총독부는 1919년 3·1운동의 여파로 1920년 한국인에게 세 개의 신문발행을 허가했으나 이후에는 단 한 개의 신문도 추가로 허가하지 않았다. 1936년 8월 이후에는 두 개의 신문만 존재하다 그나마도 1940년에 모두 폐간됐다. 총독부는 1920년대에는 신문지법으로 잡지를 허가해 교정쇄 검열을 받으며 정치·시사를 다룰 수 있는 잡지들이 발행됐다. 이런 잡지들이 발행 정지당하거나 경영 곤란으로 자진 폐간해 1930년대에는 ‘신문지법’에 따라 허가받은 신문과 잡지는 교정쇄 검열을 받았고 방송은 다양한 출자자들이 참여한 사단법인의 형태로 출발했지만, 총독부가 강력히 통제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돼 사실상 국영방송이나 다름없었다.
검열제를 통한 내용 규제
신문, 잡지, 서적은 모두 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에서 검열 업무를 담당했다. 방송은 경무국 보안과가 방송원고를 검열하고, 체신국 감리과가 방송내용을 감시했다. 경찰 업무를 수행하던 경무국이 사상통제 차원에서 매체를 검열했다.
신문지법에 따라 허가를 받은 신문과 잡지는 교정쇄 검열을 받았고, 출판법에 근거해 발행되는 잡지나 서적은 원고검열을 받아야 했다. 언론들은 검열에 항의하거나 검열을 우회하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자기검열을 강화했다. 방송의 경우 보안과와 감리과의 검열과 방송 현장의 감청까지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검열을 회피할 여지는 없었다.
일제의 언론 · 출판 · 방송 통제』(동북아역사재단, 2021)
가혹한 행정처분과 사법처분
총독부는 검열을 통해 삭제, 압수, 발행정지 같은 행정처분을 하거나 언론인에게 형사처벌을 가하는 사법처분을 내렸다. 삭제나 압수가 빈번했는데, 특히 압수는 큰 손실을 초래해 언론으로서는 부담스럽고 회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발행정지는 일정 기간 신문이나 잡지를 발행할 수 없어 신문에 가장 위협적 조치였다.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인한 『동아일보』의 4차 정간을 제외하고, 신문지법에 따라 허가받은 모든 신문과 잡지의 발행정지는 1920년대에 일어났다. 신문과 잡지들이 발행정지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일제의 통제가 강화된 1930년대 이후 철저한 자기검열을 했기 때문이었다.
1920년대에는 언론인이 기사로 인해 옥고를 치르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1920년대 초반에 『개벽』, 『신천지』, 『신생활』 등의 잡지에 대한 사법처분이 내려졌다. 1920년대 중후반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외일보』 등의 신문에 대한 사법처분이 있었다. 사법처분 사례가 아주 많지 않았던 것은 사전검열이나 자기검열을 통해 문제가 될 만한 기사들을 미리 걸러냈기 때문이었다. 다만 발매금지된 책의 배포 등으로 인해 출판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사례는 1930년대까지도 상당히 많았다. 경찰은 서점을 계속 단속하고 ‘불온서적’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기도 했다.
『극비 1937년도 조선출판경찰개요』 조선총독부의 비밀 검열자료
매체 구조 개편과 선전체제 구축
1937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1941년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총독부는 매체를 아예 없애거나 선전도구로 만들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시켰고, 대부분의 잡지도 없앴다. 한국어 신문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하나만 남겼고, 잡지는 새로 창간된 친일 잡지와 완전히 친일화된 기존 잡지 몇몇만 살아남았다.
총독부는 일제 말기에 단순히 언론을 탄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 협력을 위해 적극적으로 동원했다. 이제 모든 매체가 전시 총동원체제 속에 전쟁 협력을 위한 역할을 해야했다. 검열은 더욱 강화되어 한국인의 전쟁 동원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만 발행이 허용됐다. 일제 말기의 적극적 전쟁협력 동원으로 많은 언론과 언론인이 친일 행적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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