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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과 홍귤선: 고려 거란 전쟁으로 귀환하지 못한 고려 관료들
하공진과 홍귤선: 고려 거란 전쟁으로 귀환하지 못한 고려 관료들 전쟁은 개개인의 인생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친다. 이 점은 고려 거란 전쟁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중에는 전쟁에 휘말려서 거란국(요(遼)라고도 함)으로 끌려갔고, 끝내는 고려로 귀환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서는 하공진, 홍귤선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1009년 정월, 평온하던 고려의 산천이 들썩이기 시작하였다. 강조가 반란을 일으켜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왕으로 옹립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결국 거란국에 전해졌고, 이를 계기로 거란의 제 2차 고려 침략이 시작되었다. 1010년 11월, 요 성종(聖宗)이 스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였다. 강조는 이현운 등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웠으나 통주(通州)에서 패배하여 거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강조는 자신이 고려 사람임을 들어 요 성종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였고,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반면, 같이 포로가 된 이현운은 성종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나오미 스탠든(Naomi Standen)이 그의 저서 언바운디드 로열티(Unbounded Loyalty)에서 1004년 전연의 맹으로 요와 중원왕조 간의 경계가 명확해지기 전에는 다른 군주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행위가 ‘좋은 군주를 선택’하는 것이었을 뿐, ‘도덕적인 배신’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현운의 행동도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충으로 보이겠지만, 당시 관념에서 본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다.
홍성민 전 재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