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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과 홍귤선: 고려 거란 전쟁으로 귀환하지 못한 고려 관료들
  • 홍성민 전 재단 연구위원

[크기변환]3사진1) 야율아보기 동상(네이멍구자치구 츠펑(赤峰), 2016년 8월 필자 촬영)

야율아보기 동상(네이멍구자치구 츠펑(赤峰), 2016년 8월 필자 촬영)

 

거란의 제 2차 고려 침략

전쟁은 개개인의 인생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친다. 이 점은 고려 거란 전쟁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중에는 전쟁에 휘말려서 거란국(()라고도 함)으로 끌려갔고, 끝내는 고려로 귀환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서는 하공진, 홍귤선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1009년 정월, 평온하던 고려의 산천이 들썩이기 시작하였다. 강조가 반란을 일으켜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왕으로 옹립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결국 거란국에 전해졌고, 이를 계기로 거란의 제 2차 고려 침략이 시작되었다.

101011, 요 성종(聖宗)이 스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였다. 강조는 이현운 등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웠으나 통주(通州)에서 패배하여 거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강조는 자신이 고려 사람임을 들어 요 성종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였고,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반면, 같이 포로가 된 이현운은 성종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나오미 스탠든(Naomi Standen)이 그의 저서 언바운디드 로열티(Unbounded Loyalty)에서 1004년 전연의 맹으로 요와 중원왕조 간의 경계가 명확해지기 전에는 다른 군주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행위가 좋은 군주를 선택하는 것이었을 뿐, ‘도덕적인 배신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현운의 행동도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충으로 보이겠지만, 당시 관념에서 본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다.

  

하공진의 거란 억류와 귀환 실패, 그리고 죽음

거란군은 이후 파죽지세로 남하하였으니, 현종은 어쩔 수 없이 12월에 개경을 버리고 나주로 피난을 가야 했다. 하공진은 몽진(蒙塵)을 하는 현종에게 거란이 역적을 친다는 명분으로 고려로 쳐들어왔고, 이미 강조를 사로잡았으니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합시다.”라고 제안하였다. 현종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하공진 등을 거란 군영으로 보냈다. 요 성종은 화친 제안을 받아들여 회군을 결정하였지만, 대신 하공진 등을 억류하여 거란으로 끌고 갔다.

거란에 억류된 하공진은 몰래 고려 귀환을 도모하였다. 그는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에서 고려로 귀환할 수 있도록 좋은 말을 많이 사서 동쪽으로 가는 길에 줄지어 놓았지만, 어떤 자의 고발로 계획은 실패하였다. 그는 귀환을 시도한 이유에 대해 신은 고려에 감히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죄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니 살아서 요를 섬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요 성종이 그를 용서하고 절개를 바꿔 충성을 다하라고 설득하였지만, 하공진은 거절하였고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 101112월의 일이다.

 

()으로 망명한 홍귤선

한편 속자치통감장편에는 10172월에 고려인 홍귤선에게 송의 관직을 수여하는 기록이 있는데, 홍귤선은 본래 고려의 승지(承旨)로 고려왕이 그를 거란으로 보내서 첩보활동을 하다가 송에 귀순하였다고 전한다. 그런데 그가 언제 거란에 갔는지 또 언제 송으로 망명하였는지는 확인할 방도가 없다. 오직 송에서 관직을 수여한 시기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홍귤선이 송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당시 고려와 거란의 관계를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거란의 2차 침략 이후, 거란은 고려에 여러 차례 강동 6주 할양을 요구하였지만, 고려는 이를 거절하였다. 심지어 고려는 10154월에 거란 사신 야율자충(耶律資忠)을 억류하였고, 양국 관계는 더욱 험악해졌다.

 

사진2) 고려 거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개경(출처 한국 방송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고려 거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개경(출처 한국 방송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만약 이 시기에 홍귤선이 거란에 있었다면, 이러한 분위기에서 고려로 귀환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첩보활동을 하고 있던 홍귤선의 입장에서는 편안하게 요에 남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하공진과 마찬가지로 그도 연경에 머물고 있었다면, 거리상 고려로 귀환하기보다는 송으로 망명하는 편이 더 수월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이 맞물려서 그는 결국 송으로 망명하였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홍귤선은 그나마 속자치통감장편의 기록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고려 관료이다. 그러나 역사서에 기록되지 못한 채 이국의 땅으로 흩어져서 생을 마감한 고려인은 더 많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