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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논리와 문제점
  • 전략기획실 연구위원 남상구

"전후 40년이 지났다고는 하나 불행한 역사의 상처는 아직도 특히 아시아 주변 여러 나라의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침략전쟁의 책임자인 특정 지도자가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귀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감정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피하려고 금년은 야스쿠니 신사 공식참배를 하지 않는다는 고도의 정치결단을 내렸습니다." (1986.8.15)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1986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지를 결정한 후 중국의 후야호방(胡耀邦) 공산당 총서기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편지의 요지는 ① 내 친 동생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고, 야스쿠니 신사 이외에는 모든 전사자를 추도하기 위한 시설이 없다 ② 극히 소수의 침략전쟁 지도자 즉 A급 전범이 신사측의 판단에 의해 합사되었다 ③ 이 때문에 총리가 참배를 중지한 것에 대해 일본 국민은 깊은 슬픔과 불만을 느끼고 있다 ④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중간의 상호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에 참배 중단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으니 이러한 나의 노력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20년이나 지난 글임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오늘날과 거의 변함이 없다. 나카소네의 편지에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갖는 모든 함의가 포함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글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논리와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나카소네의 편지에 담긴 야스쿠니 참배 논리

첫째, 국가가 자국의 전사자를 추도·현창(顯彰)하기 위한 공적 추도시설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신사가 그에 준하는 역할을 한다는 논리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미국에는 알링턴이 있고, 소련이나 외국에도 무명전사의 묘지 등이 있다. 어느 나라든 국가를 위해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국민이 감사를 바치는 장소가 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1985.7.25)라는 나카소네의 발언이다. 즉 A급 전범을 제외한 적어도 일반 병사들에게 국가가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관방장관 자문기구인 '추도·평화 기원을 위한 기념비 등 시설 검토 간담회 보고서'(2002.12.24)는 과거에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외국인 장병들과 민간인도 포함한 시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쟁희생자를 추도하고 전쟁의 비참함을 깊이 기억하며 평화 구축에 대한 신념을 새롭게 하는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보고서는 나카소네와 같은 20세기 초반의 논리를 가지고 자국의 전쟁희생자를 추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구축해나가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침략전쟁의 지도자인 A급 전범이 합사된 것은 신사측의 판단에 의한 것으로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이다. 이제까지 일본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자와 관련된 자료는 제공했으나 합사 결정은 종교법인인 야스쿠니 신사가 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이 발간한 『신편 야스쿠니 신사 문제 자료집』을 통해 A급 전범의 합사 등에 일본 정부(구 후생성)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A급 전범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이 전후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통해서 국제사회에 복귀하는데, 동 조약 제 11조는 "일본국은 극동국제군사재판소 및 일본 국내와 국외의 기타 연합국전범재판법정의 판결(judgements)을 수락하고"라고 명기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1972년 일·중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침략전쟁의 책임자는 소수의 군국주의자이고 일본 국민은 피해자라는 논리로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 따라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일본이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던 기본 전제를 부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셋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과의 신뢰관계 구축이라는 정치적 결단에 의해 참배를 중지한다는 논리이다.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문제가 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동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다는 점인데, A급 전범이 합사된(1978.10.17) 후에도 약 20차례에 걸친 총리 참배가 있었지만 한국과 중국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비판한 것은 1985년 8월 15일 나카소네의 참배가 처음이었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가 한국과 중국이 동북아에서 점하는 경제적·정치적 지위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전개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과거'에 저당 잡힌 아베의 야스쿠니 인식

나카소네는 아시아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에 의해 일본의 국제적 지위 상승을 꾀했다. 따라서 그는 한국과 중국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반발하자 국내 지지 세력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참배 중지를 결정했다. 이에 반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대미관계를 중심으로 아시아와의 관계를 풀어나가려는 외교방침을 가지고 있었기에 참배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일본이 외교정책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에 대한 대응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베 신조 총리는 취임 후 한국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는 대신에 공물을 동 신사에 보냈다. 이와 관련해 아베는 "국가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명복을 빈다. 이러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20년 전 나카소네의 사고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과거의 문제이자 현재의 문제이고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이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면 "피해자들의 원혼은 당사자의 종교나 유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침략전쟁의 신으로 합사된 채 반세기가 넘게 능욕을 당하고 있다."라는 한국과 대만인 유족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