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7일 재단은 "한국 상고사의 쟁점"을 주제로 상고사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날 회의는 오전과 오후 2부로 나눠 진행했는데, 단군신화, 패수의 위치, 왕검성과 낙랑군의 위치와 성격, 연진 장성의 동단, 상고사의 복원 방향 등 한국 상고사의 주요 쟁점을 주제로 참석자 간의 열띤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단군 인식과 패수의 위치 등 주제 발표
제1부에서 먼저 서영대 인하대 교수가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를 주제로 단군과 관련하여 학계의 쟁점을 소개하고, 그동안 학계와 일반에 잘못 알려진 단군 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단군신화'라는 용어에 관해 식민사학의 잔재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 학자들은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신채호 등 한국 학자들이 '단군신화' 용어를 사용하여 민족 정체성의 근거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관련 문제를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란을 중지하고 대신 단군신화의 역사소 탐색과 역사로서 재구성, 고조선사 복원 사료로 활용하는 방법 모색, 식민사학의 내용과 본질을 파악하고 극복하는 방안 등 향후 올바른 단군연구를 위한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어서 이도상 사단법인 한배달 학술원장은 '고대 한중 국경선 패수의 위치 비정'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원장은 패수의 위치 문제가 고조선사 복원의 열쇠이자 식민사학 극복의 단초라는 차원에서 역사학계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였다. 패수의 구체적인 위치에 관해서는 중국 고대 사서를 분석해 보면, 지금의 '난하(灤河)'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밝혔으며, 이 사실이 고조선사와 한국 고대사를 복원하는 기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패수의 위치를 대동강으로 보는 학계의 또 다른 관점에 관해서는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출발점이자 중국 동북공정에 호응하는 논리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공석구 한밭대 교수는 '연(燕)진(秦) 장성의 동단과 관련된 논의' 발표를 통해 《중국 역사 지도집》에서 중국 학계가 주장하는 연진 장성의 동단에 관한 일반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였다. 현재 《중국 역사 지도집》에는 연진 장성의 동단이 한반도 중북부지역에서 평양 부근까지 연결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공 교수는 이 지도집 출간 전후 중국 학계의 연구 동향, 해당 지역의 고고학 연구와 관련 문헌 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중국 측 주장은 구체적인 학술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잘못된 주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고조선과 낙랑군 위치 쟁점에 관한 심층 토론
제2부에서는 한군현 낙랑군의 위치와 성격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먼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위만조선의 왕검성과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소장은 한국 학계 일부가 위만조선의 왕검성을 대동강 북쪽 평양 일대에, 낙랑군 조선현은 대동강 남쪽 토성리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하는데, 이러한 인식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소속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추종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또 중국 고대 사료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왕검성의 위치는 평양이나 대동강 남쪽이 아니라 현재 하북성 노룡현 일대라고 비정하였다. 또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를 평양 일대에서 찾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일제의 정치 선전에 불과한데, 현재까지도 한국 학계 일각에서 이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인성 영남대 교수는 '토성리토성(낙랑토성)의 발굴조사와 출토 유물의 성격'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다른 관점을 제시하였다. 토성리토성이 고조선의 왕검성과 낙랑군치로 비정되는 중심 유적인 만큼 일제 강점기 조사와 연구가 신뢰성이 있는지 여부를 놓고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치밀한 검증도 없이 이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배제한다면 의미 있는 연구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정 교수는 일본으로 반출된 낙랑토성 출토 유물을 직접 정리하고 구체적으로 분석했는데, 그 결과 관련 유물들은 출토 정황에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해당 유적이 낙랑군과 관련된 유적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평양 주변에서 나온 다른 여러 유적들과 유물들 역시 낙랑군 평양설을 상정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성과를 두고도 이를 낙랑군과 관련 없는 것으로 부정한다면 반대로 요동지역의 고구려, 요서지역의 고조선 강역과 문화 요소가 부정당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이어서 박정학 치우학회 회장은 '민족 저력의 뿌리 상고사 복원 방향'이라는 주제로 한국 상고사를 올바르게 복원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특히 민족명, 형성 시기, 종족적 또는 지역적 범위,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을 형성하는 공통적인 사유체계로 '겨레 얼'을 강조하였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겨레 얼'의 원형이 담긴 선사시대 역사를 제대로 복원하여 국사의 맨 앞에 싣고, 그 이후 역사도 중화사상이나 서구식 사고가 아닌 '겨레 얼'에 따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기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박경철 교수(강남대)의 사회와 윤용구 박사(인천도시공사), 심백강 박사(민족문화연구원)가 함께 토론자로 참석하여 6명의 발표에 대한 종합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한국 상고사 연구는 관련 쟁점에 대해 각기 다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논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날 상고사 학술회의는 주요 쟁점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을 격의 없이 논의하는 학문적 소통의 장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재단은 앞으로도 정기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여 상고사 연구의 이견을 해소해 나가고, 상고사 연구의 활성화와 발전을 이끌어 내는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