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기고
벌거숭이 임금님의 변신 - 영화 <광해>를 보다 -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사극은 TV 드라마와 영화 장르로 인기가 높지만, 역사를 소재로 허구를 더해 만든 '이야기'다.〈동북아역사재단뉴스〉에서는 이번 달 부터 '역사와 이야기'를 연재한다. 사극을 재밌게 봤다면, 이번에는 역사학자들이 들려주는 '역사 사실'에도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편집자 주-

영화 <광해>를 생각하면 슬프다. 두 가지 이유에서. 첫째, 몇몇 특강 때 묻는다. "내 책 읽어보신 분?" 100명 중 한두 명 있으면 다행이다. "영화 광해 보신 분?" 대부분 손을 든다. 영화 <광해 - 왕이 된 남자>가 개봉했을 때, 나는 시민들과 공부하면서 쓴 책인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을 막 출간했다. 이 때문에 기자들에게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중 가장 많은 질문은 "정말 《광해군 일기》에 15일 동안 기록이 없느냐"였다.

예고편에 보면 다음 자막이 선명히 나온다. 이 것, 《광해군 일기》에 분명히 나온다.

광해군 8년, 2월 28일,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可諱之事, 勿出朝報]'

그리고 배우 류승룡 씨 음성과 자막이 교차로 이어진다. 말 타고 달리는 장면과 긴박감 넘치는 배경음악을 깔고 말이다.

당장 승정원에 가서 보름간의 일기를 가져오게!'(류승룡) - 둥둥둥둥 - '조선왕조실록에서 사라진'(자막) - 뚜그닥 뚜그닥 - '훔쳐서라도 뺏더라도 반드시 가져오게!'(류승룡) - 둥둥둥둥 - '광해군 15일 간의 행적'(자막)…….

정말 보름치 기록이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처음에는 나도 멍했다. 몇 번을 읽었던 《광해군 일기》였지만 기록이 누락되었다는 기억은 없었다. 미심쩍어 확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실은 실록에 며칠이 누락되었는지는 누구나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http://sillok. history.go.kr/)'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광해군 8년 2월 27일 / 28일 / 29일 / 3월 1일 / 3일 / 4일…

다 있다. 보름치가 빠진 일은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웃으며 이 영화는 처음부터 거짓말로 시작하는 영화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특히 보름치가 사라졌다는 귀여운 허구 말고도 이 영화는 처음부터 몇 가지 무식(無識)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무식. 승정원에 가서 '일기'를 가져오라고 해놓고, 《조선왕조실록》에서 사라진 15일간의 '일기'라고 했다. 《승정원 일기》와 '실록'을 헷갈렸다. 물론 《광해군 일기》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표현했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그것도 틀렸다. 《광해군 일기》를 '실록'이라고 하지 않고 '일기'라고 부르는 것은 광해군이 폐위당한 임금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광해군 일기》는 일기라는 명칭만 같을 뿐 승정원에서 편찬하는 일기와는 전혀 다른 기록이다.

둘째 무식. 더구나 《광해군 일기》는 광해군이 재위하고 있을 때는 편찬할 수가 없다. 관례대로 다음 왕인 인조 초반에 실록 편찬을 시작하였으나, 광해군 시절 궁궐 공사 등으로 파탄이 난 재정 때문에 결국 편찬을 마치지 못하고 초본 상태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기록이다.

'조보(朝報)에 내지 말라'고 한 부분은 사실이다. 당시 조정에는 인목대비 폐비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중국 사신들이 와 있었다. 광해군은 정인홍(鄭仁弘)과 이이첨(李爾瞻)의 뜻에 따라 진행하던 폐비 논의가 중국에 알려질 경우 외교 문제로 비화할 것이 걱정되어 이와 같은 명을 내렸다. 가뜩이나 형인 임해군을 유배 보낸 전후 명나라가 의심을 품고 사신을 보냈고, 그 사신에게 은(銀)을 뇌물로 바쳐 구슬리는 것이 상례가 되었는데, 폐모 논의마저 사신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구차한 이유 때문에 했던 명령이었을 뿐이다. 이런 일을 영화에서는 광해가 양귀비에 중독된 15일간의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영화 <광해> 중 광해, 허균, 대동법, 백성, 명(明)나라, 중전, 상궁, 상참 등의 명칭이나 이름, 용어, 관직 빼고는 모두 허구라고 보면 된다. 영화니까, 하고 이해하면 되겠지만, 실은 영화라도 이러면 되는지 모르겠다. 관객들이 실제 사실과 혼동하니까.

허균은 사실 강직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홍길동전》 때문에 우리는 그를 새로운 비전을 꿈꾼 인물로 기억하고 있지만 역사 속 허균은 이이첨과 함께 인목대비 폐위 논의를 주도하다가 나중에 이이첨에게 팽(烹) 당하는 인물이다.

장광 씨가 연기했던 조 내관 같은 인물이 없지 않았다. 환관 이봉정이란 사람이다. 광해군이 왜 요즘 살이 찌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선조 때는 일이 바빠 살이 빠졌는데,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 일이 없어서 살이 쪘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광해군이 정사를 게을리 하는 것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종종 드라마에서 내관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주의해야 할 일이다. 궁궐의 그늘에서 일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국왕도 없다.

다른 건 빼고, 하선 광해를 진짜 광해군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서 코멘트. 양귀비에 중독된 광해가 실제 역사 속 광해군과 흡사하다. 의심, 단견(短見), 불안 ……. 헌데 교과서에는 광해군이 대동법을 실시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맞다. 대동법을 시행할 선혜청을 설치했다. 그런데 곧 광해군과 내각이 반대하여 대동법은 유야무야되었고, 인조반정 이후에야 다시 논의되었다.

아, 참! 영화 <광해>를 생각하면 슬픈 두 번째 이유. 영화가 끝날 무렵 자막이 올라간다. "광해는 땅을 가진 이들에게만 조세를 부과하고, 제 백성을 위해 명(明)에 맞선 단 하나의 조선의 왕이다."(명나라에 맞섰다는 말의 진실은 다음에 따지고) 여기서 또 벌거숭이 임금님의 행차를 보고, "옷감이 참 훌륭해!" 하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던 안데르센 동화의 어른들이 떠올라 슬프다. 아니, 웃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