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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포커스
기자의 눈으로 본‘제12회 죽도(竹島, 일본명 다케시마)의 날’
  • 이가영(중앙일보 정치부 차장)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시절이던 1995년 우리 정부는 독도 접안시설 건설을 발표했다. 19962월 실제 공사에 착수하자 일본의 이케다 유키히고(池田行彦) 외상이 공개적으로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일본명)는 일본 땅이다라고 반박하면서 한·일 간 긴장이 높아졌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 고위층의 발언을 망언이라며 규탄했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펼쳤다. 시민단체와 대학 총학생회 등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배지를 배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필자는 당시 대학원생이었는데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재킷이나 가방 등에 배지를 달아 항의 대열에 동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원에는 일본 유학생들도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그중 한 명이 독도는 우리 땅배지를 가슴에 떡 하니 달고 다녔다. 짓궂은 남학생들이 이거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한 거냐고 묻자 그 유학생은 나한테도 독도는 우리 땅이야라고 맞받아쳤다. 일화에 불과하지만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보면 그때가 떠오르곤 한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당시 그 유학생은 현재 일본에서 꽤나 유명한 반한(反韓) 학자로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일본 전문가들로부터 들었다.

     

     

12회 죽도(竹島, 일본명 다케시마)의 날을 맞은 시마네현 표정

     

기자의 눈으로 본‘제12회 죽도(竹島, 일본명 다케시마)의 날’대학원 시절로부터 20년이 흐른 올해 일본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죽도(竹島)의 날(222)’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지난해부터 게이오대에서 연수 생활 중인 필자에게 다신 없을 지도 모를 기회였다. ‘이 때가 아니면 언제 죽도(竹島)의 날행사를 직접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221일 낮 요나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죽도(竹島)의 날을 하루 앞두고 도착한 시마네현은 고요했다. 시내 어디에서도 흔한 현수막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행사장인 현민회관 주변과 시내 곳곳에 경찰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주민들은 다음 날죽도(竹島)의 날도 또 다른 일상일 뿐이야라는 표정으로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행사 당일인 22일은 오전부터 시마네현에 긴장감이 돌았다. 호텔 식당에서는 연한 하늘색 셔츠에 감색 양복을 입은 이들 몇몇이 눈에 띄었다. 묻지 않았지만 한눈에 일본 의원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일본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 회장으로 한국 언론에도 자주 얼굴이 비쳤던 자민당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의원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올해도 죽도(竹島)의 날행사 참석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호텔 주변도 조금 시끄러워졌다. 일본의 유명한 우익단체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 관계자들이 오전부터 시마네현 다케시마 사료관과 행사 장소인 현민회관 주변을 몇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돌며 방송을 통해 주민들을 선동했다. 이 날은 재특회의 전 회장으로 도쿄 도지사 출마 경험이 있는 사쿠라이 마코토(桜井誠)도 직접 시마네현에 나타났다. 전날보다 수십 배 늘어난 경찰들이 그들을 지켜보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가끔 궁금한 표정으로 멈춰서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독도수호전국연대 최재익 의장 일행도 시마네현에 있었다. 전날 도착한 최 의장 일행은 이날 자신의 숙소에서 간단한 언론 인터뷰를 한 뒤 현청 앞으로 이동했다. 행사 2시간여 전 택시에서 내려 성명서를 낭독하려 했으나 재특회 등 일본 우익들이 몰려들면서 무산됐다. 10여 분간 대치와 몸싸움이 이어졌고 일본 경찰은 최 의장 일행을 경찰차에 태워 격리시켰다. 일촉즉발의 위기처럼 보였지만 다행히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행사 직전 기자 일행은 다케시마 사료관을 둘러봤다. 아담한 2층짜리 건물의 2층을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자료관과 도서관으로 꾸며 놓았다. 이미 일본 의원 몇몇이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초라하고 어찌 보면 빈약해 보이는 자료관이었지만 그곳을 만든 이들의 열정은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리 자료관의 주장을 읽어보아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는 별로 없었다. 다만 독도는 한국 땅이라 주장하는 각종 한국 도서들까지 모두 구비해 놓은 점은 놀라웠다.

     

     

딱딱한 공식 행사와 활기 없는 강연회

     

222일 오후 130분부터 시마네현 현민회관 중앙홀에서 열린 죽도(竹島)의 날기념식은 올해로 12회를 맞았다. 정확한 행사명은 12회 다케시마의 날 기념식 및 다케시마·북방영토 반환요구 운동 현민대회. 이 날은 1905년 시마네현이 주인 없는 땅이던 독도를 다케시마로 칭하고 정식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는 주장을 담은 고시를 발표한 날이다. 시마네현은 20053월 시마네현 조례 제36호를 통해 이 날을 죽도(竹島)의 날로 지정한 뒤 2006년부터 매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3년 행사 이래 매년 이 행사에 중앙정부 차관급 인사를 파견해 왔고, 이 날도 해양 정책·영토 문제를 담당하는 무타이 스케(務台俊介) 내각부 정무관(차관급)을 참석시켰다.

     

시마네현 지사를 비롯해 시마네현 관계자들과 중앙 정치인 및 현민 등 총 500여 명이 참석한 행사는 시종일관 딱딱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주최자 인사 내빈 인사 내빈 소개 감사장 증정 결의 표명의 순서로 구성된 1부 행사와 1시간 여 동안의 강연회가 전부였다. 이날 참석한 국회의원은 무타이 스케 의원 외에 시마네현을 지역구로 한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의원, 그리고 일본 영토 문제 단골 인사인 신도 요시타카 의원 등 모두 9명이었다.

     

미조구치 젠베(溝口善兵衛) 시마네현 지사는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 영토이나 62년 이상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최근 초·중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으로 관련 교육이 강화되고 정부의 활동도 강화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존 주장에 최근 발표된 학습지도요령을 보태는 내용이다. 시마네현 의회 의장은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행사로 치러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행사 주최자들이 거듭 정부에 요구하는 사항이다. 일본 정부는 정무관급 인사를 참가시키는 것으로 주최 측 요청을 피해가는 모양새였다.

     

내빈 인사에 나선 의원들의 발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타이 스케 정무관은 한국은 매우 중요한 이웃국이지만 영토 문제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주권 확립은 일본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베 내각이 영토주권 문제 담당 대신을 두었고 국내외에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도 요시타카 의원은 오늘날과 같은 성과가 있게 된 것은 다케시마의 날조례 제정의 결과라며 정부의 돈이 지원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진당 소속 와타나베 슈(渡部秀) 중의원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끌어들이며 비판 논조를 이어갔다. 그는 현재의 한국 상황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짐작하고 있는데 문제는 다음 대통령으로 유력한 후보가 반일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은 국가 간 약속보다 국민 감정이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위안부문제에 대한 합의도 현재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믿지 못할 정부 취급하는 발언이 무척 못마땅했으나 한편으로는 일본이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해 가지는 불안감도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행사 내내 긴장감 속에 참석자들을 살폈지만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에 크게 환호하거나 한국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발언에 한국을 향해 야유를 보내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실 행사장에는 이른바 관계자들이 훨씬 많았다. 시마네현 엠블럼(emblem)을 찬 공무원들이 상당수였고, 일반 주민들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마나 1부 행사 후에는 상당수가 빠져 나가 2부 강연회는 그야말로 활기 없이 진행됐다.

     

     

정치인들만의 행사로 전락한 듯한 죽도(竹島)의 날

     

첫 행사 참여였음에도 필자는 이미 이 행사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2회째를 맞는 죽도(竹島)의 날이 현민들의 관심은 받지 못한 채 정치인들의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행사 직전 기자 일행을 만난 한 일본인 여성은 이상한 사람들(우익을 지칭)이 있으니 조심하라며 우리를 걱정해주었다. 행사 다음날 방문한 돗토리현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이곳을 찾는 한국 여행객들의 숫자가 상당하다. 최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한국 손님들을 태운다한국과는 앞으로도 좋은 교류를 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결국 이곳 주민들의 진짜 관심사는 다케시마는 우리(일본) 같은 정치인들의 구호가 아니었다. 시마네현과 돗토리현이 나눠 쓰는 요나고 공항(돗토리현)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390km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한국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며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느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늘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민들이 무관심한 문제를 꺼내 선거나 정치 상황에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일본의 많은 정치인들이 일본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죽도(竹島)의 날행사만큼은 그 연장선이 아니라는 것을 행사에 참석한 뒤 확신할 수 있었다. 도쿄로 돌아와 만난 일본 기자들도 필자의 생각에 동의했다. 특히나 죽도(竹島)의 날에서 일본 정치인들이 강변하는 내용을 들으면 들을수록 독도가 한국 땅이기 때문에 저렇게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럼에도 죽도(竹島)의 날행사 참석 이후 한·일 관계를 지혜롭게 풀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 정치인의 말이나 행동들은 이미 일본 국민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 역시 그런 점에 집착하기보다 큰 틀에서 한국의 실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본 정치인들이 죽도(竹島)의 날로 허세를 부릴 때 우리는 일본 국민들을 상대로 따뜻한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