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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포커스
단군신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
  • 이정빈 (한중관계연구소 연구위원)

일찍이 신화는 원시 . 고대사회의 미개사고로 간주되었다. 근대의 이성 내지 합리와 대비되었던 것이다. 특히 과거 사실의 재현과 과학적 연구방법을 추구한 근대 역사학에서 신화는 연구의 대상에서 소외되기 쉬웠다.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단군신화도 마찬가지였다.

 

근대의 단군신화 연구, 근대주의를 넘어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 역사학의 학문 체제를 수립한 일본도 역사와 신화를 철저히 구분하고자 하였다. 근대 일본의 동양사학은 일본서기의 신화, 이른바 신대사(神代史)를 역사에서 분리했다. 신대사는 후대의 정치 권력이 만들어 낸 정치서사였다고 파악하였다. 한국의 단군신화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체로 고려시기에 가공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일본 역사학계의 단군신화 연구가 과학적이지만은 않았다. 단군신화 사료비판은 고조선의 역사를 축소 . 부정하는 데 활용되었고 이로써 한국사의 타율성을 말했다. 단군신화는 일본의 신화와 비교되었는데 원시성을 부각하여 한국사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과학적인 연구를 표방했지만 현실은 제국주의 . 식민주의에 부응했던 것이다.

단군신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19세기 후반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에서 단군의 의미는 각별했다. 단군을 통해 민족사의 계보를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군은 민족의식의 원천이었다. 그런 만큼 민족주의 역사학에서 단군신화는 신화일 수 없었다. 신화가 아닌 역사로 평가됨은 물론이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신앙적 서술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일환으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과학적인연구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구학계의 신화 연구는 20세기 중반 이후 크게 진척되었다.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서 신화의 구조와 기능이 탐색되었고 역사적 성격과 의미가 논의되었다. 특히 20세기 후반 근대를 반성하면서 이성과 합리를 표방한 서구 문명의 야만성이 폭로되었고, 미개 사유로 간주되어 온 신화의 의미와 가치가 재평가되었다. 가령 생태 환경의 관점에서 볼 때 신화의 사유 내지 세계관은 근대 서구 문명을 반성하는 거울로 주목되었다.

한국학계의 단군신화 연구 또한 그 수준이 높아졌다. 서구학계의 연구 방법을 수용하고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신화를 폭넓게 비교했다. 이를 통해 단군신화가 후대에 윤색이 있었지만 고대사회의 신화였음을 밝혀냈고, 나아가 고조선의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단군신화에 담긴 신화적 사유 . 세계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단군신화의 비대칭적 세계관

 

신화를 간명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인간과 세계에 관한 신이(神異)한 이야기정도로 말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인간을 둘러싼 가장 밀접한 세계는 자연이었다. 예컨대 그리스 . 로마 신화의 수많은 신은 인격을 갖춘 자연이었다. 그러므로 신화 속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고대인의 세계관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신화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는 신화학의 대칭성 . 대칭 관계 개념이 참고가 된다.

대칭성 . 대칭 관계란 본래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가 구조주의 문화이론을 통해 제시한 개념인데 나카자와 신이치(中澤新一)가 신화 연구를 진행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교감 . 소통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나카자와 신이치에 따르면 신화는 원시 수렵 . 채집사회에서부터 발생하였는데 당시 인간은 자연과 유대 관계를 추구하며 대칭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전형은 장기간 수렵 . 채집 생활을 영위한 시베리아 제 종족의 신화에서 잘 나타난다고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시베리아 제 종족, 특히 아무르강 유역의 여러 종족은 곰과 호랑이를 자기 집단의 조상으로 믿었다. 그들의 신화 중 다수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형적인 토템이었다. 그들의 신화에서 인간과 곰 . 호랑이의 경계는 확고하지 않았다. 양자의 소통에도 막힘이 없었다. 곰과 호랑이는 언제든 스스럼없이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다. 가죽을 입으면 곰이요 호랑이였고 가죽을 벗으면 곧 인간이었다. 또 인간과 대화하고 교감했으며 혼인했다. 곰과 호랑이는 인간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가족이었다.

단군신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시베리아에서 곰 . 호랑이는 숲의 최상위 포식자로 자연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시베리아 제 종족의 신화에서 인간과 곰 . 호랑이의 소통과 교감은 인간과 자연의 대칭 관계를 반영한다고 이해된다. 일찍부터 시베리아 제 종족의 곰 . 호랑이 신화는 단군신화와 비교되었다. 대부분 공통점을 중시했다. 그러나 단군신화 속의 곰과 호랑이는 시베리아 제 종족의 신화와 달리 스스로 인간으로 변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단군신화의 곰은 신()인 환웅(桓雄)의 힘을 빌어서야 인간의 몸을 얻었다. 또한 인간으로 변신했음(웅녀)에도 더불어 혼인할 자가 없었다. 단군신화에서 인간과 곰 . 호랑이의 경계는 비교적 명확했다. 따라서 단군신화의 사유 체계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직접적인 교감과 소통 역시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 인간과 자연은 비대칭 관계로 설정되었던 것이다. 단군신화는 비대칭적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 호랑이와 관련된 신화 내지 토템이 비단 시베리아 제 종족의 것만은 아니었다. 곰 신화와 토템은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북부의 수렵 지대를 중심으로 한 북반구에 폭넓게 분포한다. 또한 반드시 곰이 아니어도 인간과 자연의 대칭 관계에 대한 사유는 다른 여러 동물을 통해 나타난다. 유럽의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 늑대인간 설화나 아프리카 반투족의 표범인간 설화도 그 원형은 인간과 늑대 . 표범의 대칭 관계를 반영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신화 속의 대칭 관계, 신화의 대칭적 세계관은 세계사적 보편성이 인정된다. 단군신화 또는 그 신화 속의 원형도 인간과 자연의 대칭 관계를 반영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본래 단군신화 속 곰과 호랑이도 신의 힘을 얻지 않고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고, 쉽게 혼인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단군신화의 대칭적 세계관이 비대칭적 세계관으로 변모한 중심에는 환웅이 있었다.

 

권력의 신화로, 단군신화는 고대사회의 신화

 

단군신화에서 환인 . 환웅은 천상(天上) 신계(神界)의 존재였다. 환웅은 천상의 신계에서 천하(天下)의 인간 세계로 내려왔다. 샤머니즘의 세계관에서 천상의 신계와 천하의 인간계는 우주수(宇宙樹)로 연결되었다. 환웅이 내려온 신단수(神壇樹)가 그와 같은 우주수였다. 단군신화에서 인간과 자연의 경계는 비교적 명확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천하의 세계는 인간 세계와 자연 세계로 구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세계로 내려온 환웅은 360여 일()을 모두 주관하였고, 또한 곡식 . 생명 . 질병 . 형벌 . 선악을 주관하였다고 한다. 이때 곡식 등은 자연 세계의 일을 포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하여 환웅이 풍백 . 우사 . 운사를 거느렸다고 한 사실이 주목된다. 풍백 . 우사 . 운사는 바람 . . 구름의 신이다. 환웅은 천하의 인간 세계만이 아니라 자연 세계도 주관하였던 것이다. 비록 곰 . 호랑이 즉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가 구분되어 있었지만 이를 모두 환웅이 주관하면서 두 세계의 교감 . 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단군신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


여기서 삼국지동이전에 기록된 옛 부여의 습속(舊夫餘俗)이 상기된다. 옛 부여에서는 홍수나 가뭄으로 오곡이 익지 않으면 번번이 그 책임을 왕에게 돌렸다고 하였다. 옛 부여의 왕은 오곡 즉 생산을 보장해야 하는 존재였고 그래야만 왕권의 권위를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조선에서도 안정적인 생산은 왕의 권력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주요 요소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였을 때 환웅이 풍백 . 우사 .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등 자연 세계를 주관하였다고 한 것은 고조선의 왕이 그와 같은 권능을 보유한 신의 혈족으로, 안정적인 생산을 보장해 주는 존재였음을 말해준다. 단군신화의 환웅은 왕권의 정당성, 권위를 상징한 요소의 하나였던 것이다.


단군신화의 대칭적 세계관이 비대칭적 세계관으로 변모한 데에는 고조선 왕권의 탄생이 그 역사적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원시 사회의 해체 이후 농업 사회의 발전과 아울러 한층 안정적인 생산이 추구되면서 인간은 자연을 더욱 적극적으로 제어하고자 하였고, 그러한 욕망은 신화 속 대칭 관계를 무너뜨렸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인간 세계의 지배자로서 왕이 출현하면서 왕은 인간 세계뿐만 아니라 아니라 자연 세계도 주관할 수 있는 존재로, 또 인간 세계와 자연 세계의 교감.소통을 독점한 혹은 가장 우월한 존재로 부상했으며, 신화를 전유하였다고 파악된다. 요컨대 단군신화의 비대칭적 세계관은 고조선 사회의 변화, 더 구체적으로는 왕권의 탄생을 반영한다고 이해된다.


이 글은 단군신화의 비대칭적 세계관과 고조선의 왕권〉 《인문학연구31,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을 요약.수정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