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한중관계연구소는 지난 6월 23일 재단 대회의실에서 “만주 역사지리 연구와 백두산”을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재단은 2012년 백두산정계비 설치 300년을 기념하는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한·중 영토 문제와 백두산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학문적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국경을 접한 당사국의 이해관계나 배타적 민족주의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동아시아의 변경’이라는 관점에서 영토, 민족, 교류라는 주제를 평화·공존이라는 가치와 결부시키고자 노력해왔다.
백두산 지역 역사지리 연구의 가능성 제시
이번 회의는 백두산을 주제로 한 2017년도 첫 번째 학술회의로 “만주 역사지리 연구와 백두산”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해방 이후 만주 연구는 일본의 만주 연구와 중국의 동북 연구라는 양대 축 사이에서 독자적인 연구 성과를 산출하지 못했으며 일본의 만주 연구가 가진 제국주의적 성격 때문에 학문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 곤란하였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일본의 만주 역사지리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백두산 지역연구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학술회의는 노기식 한중관계연구소장의 개회사에 이어 제1부 박장배 재단 연구위원의 사회로 2개 주제발표와 지정토론을 진행하고, 제2부와 제3부는 최덕규 재단 연구위원의 사회로 5개 주제발표와 지정토론을 지정하였다. 제4부는 동국대 하원호 교수의 사회로 토론자와 참가자가 함께하는 종합토론을 진행하였다. 발표·토론자와 주요 발표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에서는 ‘일본의 만주 역사지리 연구’를 주제로 이노우에 나오키(井上直樹) 교토부립대 교수가 ‘전전 일본의 만주사 연구’를 발표하고 토론은 박찬흥 국회도서관 박사가 맡았다. 이노우에 나오키 교수는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소장 관련 문서를 토대로, 주로 만주국 건국을 계기로 적극 연구된 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만주사 연구 일부를 규명하였다. 정상우 한림대 교수는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의 만주사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진행하고 윤휘탁 한경대 교수가 토론을 맡았다. 정 교수는 대표적인 만선사학자로 거론되는 이나바의 만주사 인식을 통해 ‘만선사관’에 드리워진 식민주의 사관이라는 정치적 도그마를 걷어내고 좀 더 냉정한 재검토와 그 안에 담긴 학문적 논리를 재평가해야 한다며 만주사 연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제2부에서는 ‘일본의 만주 연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주제로 쑨저(孫喆) 중국인민대 교수가 ‘1930~1940년대의 중국 지도 제작 연구’를 발표하고 김승욱 충북대 교수가 토론하였다. 쑨저 교수는 1930~1940년대 중국, 특히 동북 지역을 대상으로 한 지도 제작 상황을 정리·분석하였는데 오랜 역사 지도 제작 전통이 있는 중국에서는 중화민국의 건립 이후 현대적 기술을 활용한 지도 제작의 움직임을 진행해 왔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중·일전쟁으로 전국이 급격한 혼란에 빠져 들던 1930~1940년대에도 꾸준히 지속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이 시기 동북 지도는 9·18 사변 이래 민족국가 의식이 강화되는 가운데 정치적·시대적 특징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강해수 국제기독교대 교수는 ‘일본의 만주 연구와 최남선의 불함문화론·만몽문화론’을 발표하고 정준영 서울대 교수가 토론을 맡았다. 강 교수는 최남선의 ‘불함문화론·만몽문화론’의 성립에서 근대 일본의 만주·만몽연구가 어떻게 그 대항적 계기로써 관계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백두산 탐사와 백두산 역사지리’라는 주제로 이화자 중국사회과학원 교수가 ‘백두산 탐사와 1712년 백두산 정계의 수원’을 발표하고 김종혁 성신여대 교수가 토론을 맡았다. 이 교수는 백두산 정계의 진실을 규명함과 동시에 학계의 잘못된 국경 인식 예컨대 중국 학계의 ‘정계비 이동설과 한국 학계의 토문·두만 2강설’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였다. 이강원 전북대 교수는 ‘임진정계시 두만강 상류 수계 인식과 경계 표지물 설치’를 발표하고 한성주 강원대 교수가 토론을 맡았다. 이 교수는 1712년에 이루어진 ‘임진정계’가 한·중 국경 논의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점을 밝혔다. 배성준 재단 연구위원은 ‘19세기 후반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만주와 백두산 탐사’를 발표하고 홍웅호 동국대 교수가 토론하였다. 배 박사는 1860년대 이래 왕립지리학회 기관지에 게재된 만주와 백두산에 대한 보고서를 분석하고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만주 및 백두산 인식은 근대적 역사지리 인식의 출발점이라고 하였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하원호 동국대 교수의 사회로 발표자와 토론자의 상호토론 및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일본의 만주 연구는 동아시아의 근대적 지역연구의 선구라는 점에서 백두산 지역연구의 밑거름이 될 것이며 백두산 지역은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 유역에서 살아온 여러 민족들의 문화가 중첩되고, 동북아시아의 중심이자 대륙과 해양의 변경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지역연구의 전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백두산 국제 학술회의는 기존의 일본 만주 연구와 간도 문제 연구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한·중 국경문제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한편 백두산 지역 연구의 학술적 기반을 마련한 뜻깊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