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에 개봉한 영화 <관상>은 9백만 이상의 관객이 관람했다.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이 집권하는 발판이 된 정변으로 세조와 관련된 사극에서 늘 비중 있게 그려졌다. 방송에서도 몇 차례 다루어진 적이 있어 진부할 수 있었으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관상이라는 소재를 도입한데다 연기자들의 호연이 어우러져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언뜻 계유정난은 태조 7년에 일어났던 무인지변(제1차 왕자 난)의 재판(再版)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무인지변은 태조를 움직여 사병혁파를 이끌어내고, 태조 이후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종친들을 제거할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세자의 사부이자 권력자인 정도전에게 이방원이 선수(先手)를 친 것이다. 정변의 성공으로 이방원은 보위에 오를 수 있었다.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보필하는 황보인과 김종서, 그중에서도 표면적으로는 권력을 장악하고 인사를 전횡하면서 역모를 꾸미는 김종서를 제거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계유정난은 성공했고, 수양대군은 마침내 왕위를 찬탈했다. 그러나 그가 내건 계유정난의 명분은 사실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보여준 역사적 사실
영화 <관상>은 관상과 계유정난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재나 서사 자체가 매우 한국적이다. 역적 가문의 몰락한 양반 출신 김내경은 생존을 위해 관상을 공부한 천재 관상가였으나 양반을 고집하는 아들 진형의 반대로 관상 보는 일을 접고, 외딴 곳에서 처남과 함께 붓을 만들어 팔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듣고 찾아온 연홍이 서울 기방에서 관상 보는 일을 제안하자 받아들인다. 역적의 후손이면서도 관직 진출을 꿈꾸는 아들의 뒷바라지와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한 도전이었다. 관상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세종 대에는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졌고 공법의 시행, 훈민정음의 창제, 노비의 출산 휴가 허용 등 백성을 위한 여러 정책이 시행되었다. 국가의 기반이 되는 자영농도 7할이나 되었다. 따라서 일반 백성들의 삶은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역적 집안의 생존자나 연홍처럼 가난한 집 아이들의 삶은 비참하였다는 것, 어물전에서 경시서(京市署) 감찰이 상인의 부녀자를 겁탈하는 행태 등 하층민들이 겪어야 했던 사회·경제적 상황을 <관상>은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간극
김내경의 삶은 서울 기방에서 관상을 보기 시작하며 달라졌다. 신분제 사회에서 짊어진 숙명적 멍에를 벗어던지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는 예기치 않게 계유정난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본격적으로 계유정난의 서사가 전개되면서 유명세를 떨친 김내경이 수양대군 일파에게는 납치와 제거의 대상이 되고, 김종서 측에게는 구원 투수로 활약하는 갈등 구조가 등장한다. 문종까지도 김내경에게 왕권에 야심을 가질만한 인물들에 대한 관상 평을 명하는데, 이러한 내용들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만큼 흥미를 위한 창작의 영역이 곁들여진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단종을 둘러싼 김종서·안평대군·수양대군의 위상이나 정치적 관계가 정밀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용이 산만하고 긴장감은 떨어졌다. 특히 수양대군이 정적(政敵)으로 단정한 안평대군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단종이 즉위한 후 김내경은 수양대군 수하에게 납치되어 김종서의 역모를 단종에게 고하라는 협박을 받는다. 풀려난 후 한명회를 찾는데 실패한 그는 김종서를 도와 연홍·처남과 더불어 수양대군의 역모를 막기 위해 분투한다. 김종서도 수양대군이 명나라 사신을 환송하는 틈을 타 거사하려 했으나, 그 계획은 감찰로 어물전 부녀자를 겁탈한 자가 황표정사로 호조 정랑이 된 것을 비판한 진형이 김종서의 분노로 실명에 이르게 되고, 이에 격분한 팽현이 조카의 치료와 신변 보장을 조건으로 수양대군에게 거사 일정을 누설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결과는 수양대군 일파의 승리였다. 이 중 역사 속 인물 외의 다른 내용은 전부 사실(史實)이 아닌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장황하게 나열한 까닭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김내경을 납치·협박하고, 황표정사를 비난한 사실을 들춰내 진형의 시력을 빼앗고, 김종서 측을 분열시켜 계유정난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인 모사꾼 한명회의 실체를 빼어나게 잘 담아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항복하여 즉위에 반대한 진형의 목숨을 구한 김내경 앞에서, 수양대군이 관상을 봐준 값이라며 화살로 진형을 절명시킨 장면은 그의 냉혹함과 잔혹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영화 밖 역사로서의 계유정난
수양대군은 세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국정을 도왔다. 그러나 관료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안평대군도 공무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유아(儒雅)에 주력했고, 시서화에 뛰어났다. 이러한 취향과 성삼문과 인척관계 등으로 안평대군은 세종 24년 이전부터 이개·성삼문·박팽년·신숙주·정인지·김종서 등과 폭넓은 교유를 맺고 있었다. 당대 엘리트 문사들이 안평대군에게 대거 몰려 있는 형세였다. 더구나 문종을 배경으로 당대 불사를 주도하면서 그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단종 대에는 김종서·황보인 등이 국정을 전담하였고 단종의 환관을 추천한 안평대군의 입지와 권세는 더욱 강화된 상태였다. 그들은 모두 단종을 보호하고 있었다.
반면 안평대군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문종 대에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나선 수양대군은 이 때에 이르러 더욱 고립되었다. 그는 예전부터 왕위를 넘보았다며 안평대군을 모반자로 낙인찍고, 한명회와 결탁하여 그를 제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동생을 제거하려 했다는 윤리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정승으로 신망과 중망을 받았으나, 황표정사로 비난받던 김종서를 모반을 부추긴 원흉으로 조작해 놓았다. 계유정난은 한명회의 계략대로 첩자를 심어 정보를 모으고, 은밀하게 움직여 세력을 모은 수양대군 일파가 홍달손이 순작군을 감독하는 날 김종서 부자를 기습적으로 살해하고, 누대(累代)에 걸쳐 조정을 섬긴 수많은 대신들을 살해한 참혹한 사건이었다. 권력을 장악한 그는 마지못한 듯 실제 제거 목표였던 안평대군을 사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