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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17세기 동북아 국제 질서 - 다시 세계사 속으로 -
  • 이정일 (한중관계연구소 연구위원)

16~17세기 동북아 국제 질서 - 다시 세계사 속으로 -조선시대 대외 관계는 한 . 중 관계의 역사성을 이해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시기와 관련해 중국 대() 비중국이라는 이분법적 인식과 중국 우위의 계서적(階序的) 화이관(華夷觀)이 결합된 중화제국론은 동아시아 학계 뿐 아니라 구미 학계 동아시아사 연구자들에게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친다.

더구나 2000년대 이후 중국은 중국 중심주의를 전방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청사공정(淸史工程)’의 경우 19세기 이전 이웃 국가들과의 사대 외교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자국의 위상을 사후적으로 합리화하고자 한다. 이는 고구려 뿐 아니라 조선도 또 하나의 역사 왜곡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위험에 놓였음을 의미한다. 16~17세기는 왜란, 호란, 후금 건국, 명 멸망, 청 건국 등 19세기 서세동점(西勢東漸) 이전 동아시아 대륙 질서의 후반부를 장식한 시기로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익숙한 동아시아 전통 질서가 전개된 시공간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 갈등에서 그 연원을 분석할 때 인후(咽喉)에 해당되는 것이다. 실로 이 시기 한 . 중 관계를 포함한 전통시대 동북아 지역의 역학 관계에 대한 역사적 실상을 새롭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된다.

 

글로벌 히스토리 : 하나의 대안?

한편 구미 학계는 일반적으로 존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 이래 구축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 질서라는 인식 틀 속에서 동아시아 역학 관계를 이해해 왔다. 최근 유럽사와 비유럽사 간 비교 연구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히스토리가 하나의 대세로 등장하면서 세계사의 전개 속 동아시아사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방점은 18세기 이후 근대 구미 일부 국가들의 전지구적 팽창과 근대화-자본주의와 산업화-과정에서 유럽 이외 지역과의 상호작용을 강조함으로써 기존 구미 학계의 유럽 중심주의를 재고하는 데 있다.

그러나 글로벌 히스토리는 비교 연구의 핵심인 개별 사료 . 데이터 분석과 논리 전개에 있어 미숙함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 . . 일로 국한시켜 볼 때 구미 학계의 중국사와 일본사 연구는 반세기 이상 꾸준히 연구 성과와 데이터 축적이 진행된 반면, 한국사 관련 연구 성과나 데이터 구축은 상대적으로 저열한 상황이다. 즉 자료 활용도에 있어 불균형이 존재하며 이는 비교 연구의 기본 조건이 갖춰져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갈 수 있다. 충분한 연구 토대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간헐적 사례 연구는 자칫 소재주의적 경향으로 흘러 비교 연구의 특징인 확장성과 지속성에 저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안드레 군더 프랭크(Andre Gunder Frank), 케네드 포머란츠(Kenneth Pomeranz), 빈 웡(R. Bin Wong) 등 중국사 관련 글로벌 히스토리 주창자들의 연구를 보다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유럽 중심주의의 상대화를 목표로 18세기 서유럽의 전지구적 팽창 및 지배가 완성되기 이전 유럽과 동아시아의 발전 양상을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유럽 우위의 시점을 19세기로 한정시키고자 하는 시도로써 일면 창의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누가, 구체적으로 어느 국가, 왕조, 정체(政體)가 각각 서구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가의 문제다.

이들의 연구에서 유럽 국가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수 개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데 반해 동아시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다. 당시 청대는 강역과 경제를 포함한 국가 운영의 규모로 볼 때 충분히 당시 서유럽과 비교될 만하다. 하지만 유럽은 지역 단위로, 동북아는 청이라는 일국 단위로 유럽-동아시아 간 비교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외형적 등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중국을 동아시아사로 일반화시켜 설명하려는 접근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를 중국사 밑으로 부속화 시킬 위험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히스토리는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이웃 국가들의 대응 논리와 안보 전략을 어떻게 18세기 이후 세계사의 전개 속에서 재조명할 것인가에 대해 취약한 연구 기반을 노정하고 있다. 중국 중심적 동아시아사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중국 이외의 정체(政體)들이 상당히 수동적인 객체로 다루어지거나 도외시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글로벌 히스토리가 국내 학계의 한국 근현대사, 동아시아사, 역사 교육 등 다양한 전공자들로부터 관심과 지지를 얻고 있다 해도 연구 방법론과 사료 활용의 측면에서 보다 심도 깊은 학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16~17세기 동북아 지역의 역학 관계에 대한 역사적 실상을 새롭게 논의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인 것이다.

 

16~17세기 동북아 국제 질서 - 다시 세계사 속으로 -새로운 방향을 찾아서

그렇다면 중화제국론의 자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모색이 필요할까? 16~17세기 동북아 국제 질서는 한족계 명, 북방계 여진 . , 조선의 삼자 간 대립 구도 속에서 점차 북방계 여진 . 청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며 재편됐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13~15세기와는 달리 당시 여진은 수백년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명의 영토 뿐 아니라 현재 내몽골, 티벳, 동투르키스탄 지역을 포함하는 최대 강역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여송(麗宋) 관계와 조명(朝明) 관계, 여명(麗明) 관계와 조명(朝明) 관계, 여원(麗元) 관계와 조청(朝淸) 관계, 조명(朝明) 관계와 조청(朝淸) 관계 등 삼자 간 대립 구도를 보다 통 . 공시적으로 교차 분석할 수 있는 비교 연구가 진행된다면 여진 . 청이 어떻게 이전 동북아 국제 질서의 패턴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패턴을 창출했는가를 보다 당대적(當代的) 문맥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중 관계를 포함하는 동북아 국제 질서의 역사성에 대한 통찰력 뿐 아니라 최근 역사 갈등의 핵심인 역사의 정치화를 해체하는 안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 국내 학계는 16~17세기 명과 여진 . , 여진 . 청과 몽골, 여진·청과 고려·조선의 대외 관계를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다양한 원사료를 이용함으로써 동북아 역학 관계 연구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는 중국 학계와 구미 학계에서 많이 접할 수 없는 사료의 활용이란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연구 방향으로 보면 정체(政體) 간 그리고 개별 정체(政體) 내부의 제 세력 간 복합성과 다층성을 관취하면서 동북아 역학 관계의 상호작용성에 주목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주제와 문제의식으로 연구의 폭을 넓히는 국내 학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그 확장과 지속을 통해 중국 중심적 역사서술을 극복할 연구 가능성을 타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 . 중 관계만으로는 혹은 중국 연구자들과의 교류만으로는 중국 중심적 역사 인식의 해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계 학계와 공유할 경쟁력 있는 비교 연구가 요구된다. 글로벌 히스토리는 중국 중심적 동아시아사 인식의 문제점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비교 연구 및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장점을 취하면서 이 시기 명, 여진 . , 조선 사이에서 생산된 중층적 상호작용과 다자간 관계의 복합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아시아 내부에서 전개된 역학 관계와 그 이외 지역에서 전개된 역학 관계와의 교차 분석을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사 심화 연구와 수평적 사고의 세계사 서술이 동시에 담보된 비교 연구의 토대를 구축하고 탈중심적, 탈패권적 동북아사 연구의 확장성과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