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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3·1운동의 사상적 배경과 임시정부가 꿈꾼 ‘공화제’란 무엇인가
  • 김현철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3·1운동의 사상적 배경과 임시정부가 꿈꾼 ‘공화제’란 무엇인가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는 2018 11 21일 재단 11층 대회의실에서 역사학자와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배경과 의의-사회진화론 비판과 공화주의 형성 과정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2019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3개년 사업으로 시작한 재단 기획 연구의 진행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우선 1차연도인 2018년에는 구한말부터 국권 침탈 시기를 거쳐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까지 한국이 서구의 사회진화론과 공화주의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 성과가 발표되었다. 


1919 4 11일 반포된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에서 민주공화제를 선언한 것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재단 내외 6명의 연구자들이 3·1운동 당시 국제정치에서 힘의 논리에 기반한 권력 정치(Power Politics) 현상과 사회진화론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정의·평화·인도주의가 부각되었던 시대적 분위기와 독립운동가들이 정치 체제로서 공화주의를 지향하게 되는 과정을 재조명하였다. 


먼저 오전의 제1세션 「서구 사회진화론과 공화주의 사상의 전파와 한국 내 수용」에서는 남상구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장의 사회로, 3명의 전문가가 구한말 이후 20세기 초 국제 정세의 변화와 적자생존을 정당화하는 서구의 사회진화론 및 공화주의 개념이 동아시아 및 한국에 어떻게 소개되고 수용되었는가를 분석하였다.


이병택 재단 연구위원은 사회진화론과 공화주의의 동아시아 수용의 맥락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한국에서의 공화·민주 논리 수립을 조명하면서, 한국 사회의 진화 논리 결핍 현상을 지적하고 혁명 논리의 생성과 그 문제점을 진단하였다. 이 연구위원에 의하면, 동아시아에서의 공화주의 수용은 대체로 군주정의 대안적 정치 체제로 이해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제 선언은 구 황실 우대 조항과 급진적 평등 구상 등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이어 신철희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구한말 이후 한국에서 서구 공화주의의 수용과 입헌 정치 체제의 지향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서, 구한말 이후 서양에서 수용된 공화주의 사상은 국가 통치 체제 문제에 있어서 기존의 군주제를 극복하고 문명사회로 나가는 대안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하였다. 3·1운동 이전까지는 공화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공화주의를 왕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 체제 수준에서 이해하여 논의하였으며, 1910년 한일병합 이전에는 현실적 대안으로 제기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다.


그리고 김현철 재단 연구위원은 구한말 개화파의 공화주의 인식과 20세기 초 계몽운동가들의 사회진화론 수용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19세기 후반 공화라는 용어가 소개된 지 3~40년 만에 1919년 임시정부가 임시헌장 제1조로 민주공화제를 선언한 것은 단시일 내 엄청난 정치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평가하였다. 김 연구위원에 의하면, 구한말 이후 20세기 초 한국에서 공화주의를 인식한 사례로써 유길준의 입헌 군주제 시도를, 사회진화론 수용의 사례로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국제 현실에 대한 장지연 등 계몽운동가들의 인식을 들 수 있다.


이어 오후 제2세션 「20세기 초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사회진화론 비판과 공화주의 인식의 양상」에서는 김형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의 사회로, 3명의 연구자가 주요 단체 및 지도자들의 사례를 통해 1910년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새로운 국가 건설을 구상하면서 공화주의를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김기승 순천향대 교수는 20세기 초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사회진화론 극복과 평화 사상의 형성이라는 발표를 통해, 박은식, 이상룡, 신채호, 조소앙의 사례를 들어 이들 독립운동가가 구한말 유교적 교육 배경에서 사회진화론을 수용하였으나 이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차이가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김 교수에 의하면, 1910년 국망 이후 이들 4명의 독립운동가는 공통적으로 사회진화론적 힘의 논리를 배격하고 도덕주의적 평화를 지향하였으며, 힘에 따른 불법적 지배에 대한 무장 저항이 정의이며, 독립 이후의 국제 질서는 모든 존재의 평등을 기반으로 한 세계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일맥상통하게 주장하였다.


이어 장세윤 재단 연구위원은 1910년대 만주독립운동 세력의 공화주의·공화제 수용 양상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1910~20년대 초 중국 동북 지역(만주)에 있는 여러 독립운동단체의 조직 이념과 규정, 선언문, 선언서, 활동 내용을 통해 사회진화론이 영향을 미친 독립전쟁론과 공화주의, 공화제에 대한 인식과 수용 양상을 비교하였다. 장 연구위원은 당시 공화주의와 공화제 구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로, 신민회의 활동과 안창호의 인재 양성 방안 구상, 대동단결선언, 대한독립선언서, 대한군정서 등 만주 독립운동 단체들의 활동 등을 들었다.


그리고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1910년대 해외 독립운동가의 국제 정세 인식과 공화제 임시정부 구상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1910년대 해외 독립운동가들이 당시 국제 정세가 독립운동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독립전쟁과 임시정부를 구상하였으며, 그 예로 미주 한인 사회 내 박용만의 무형국가론(1911), 1914년 노령의 대한광복군정부 및 1915년 중국 관내의 신한혁명당 등을 소개하였다. 윤 교수에 의하면, 박용만의 무형국가론, 대한광복군정부, 신한혁명당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 경험이 1917년 대동단결선언의 배경이 되었고, 이후 1919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6편의 주제 발표에 대해 제1세션과 제2세션, 그리고 제3세션의 종합 토론 시 강진옥, 손병권, 이동언, 황민호 교수 및 김종학, 신효승 등 재단 연구위원의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다. 토론자들은 이번 학술회의가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사회진화론 극복과 공화주의 수용을 분석한 것에 주목하여 그 의의를 강조하면서, 공화라는 용어의 사용과 수용 과정의 구체적 경로 등을 보여주는 사료의 발견 등 더 심층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토론 과정에서 20세기 초 이후 한국의 주요 단체들과 지식인들, 독립운동가 및 대중의 차원에서 공화주의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기존 조선 시대 군주제 하에서의 정치 운영과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일부 참가자들은 20세기 초의 이러한 변화를 한국의 공화주의 수용 과정에 어떻게 반영하고,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