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중국 바위그림 유적조사
필자는 지난 2018년 11월 16일부터 1년간 중국 북경대에서 파견 근무를 하면서 중국 전역에 분포하는 선사 및 고대 바위그림 유적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이 조사를 위해 먼저 중국에서 발견된 바위그림 유적 카드를 작성하고 또 남부, 동남연안, 중부, 중서부, 서북부, 그리고 동북부 등 중국을 여섯 개의 권역으로 나눈 후, 장마와 무더위 등 날씨를 고려해 조사 지역과 일정을 정했다. 3월 남부지역을 시작으로 4월에는 동남연안, 6월은 중서부 등지의 유적을 조사했다. 4월 동남연안 지역 조사 기간에 매일같이 비가 내렸다. 이에 따라 중부 지역은 9월 이후로 일정을 조정했다.
그렇게 11월 7일 귀국 전까지 소수민족자치구를 포함해 모두 12개 성 30개 바위그림 유적을 조사했다. 그것은 운남과 귀주, 광서장족자치구 등 남부 지역 8개 유적과 광동, 복건, 절강 등 동남연안 지역 9개 유적, 청해, 감숙, 영하회족자치구 등 중서부 지역 6개 유적, 신강, 내몽골 등 서북부 지역 6개 유적, 강소성 1개 유적 등이다. 중부와 동북부 등지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추진하지 못하였다.
중국 바위그림을 통해 도상문화사를 탐하다
시간과 정성, 그리고 물질을 들여서 이들 유적지를 조사한 이유는 중국 바위그림의 세계를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또 광활한 중국 대륙에 남겨진 선사와 고대 바위그림이 과연 순수한 한족 문화의 유산인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어디에 귀속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북방 수렵 및 유목민 문화의 남방 한계선은 어디까지인지, 중국 남부, 서북부 등 변경 지역 토착문화와 그 주인공은 누구인지, 한족 중심 중원문화의 독자성은 과연 있는 것인지, 또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양을 띠고 있는지 등에 관한 의문들을 바위그림 속 형상(도상자료)을 통해 살펴보고 싶었다.
또한 바위그림의 모티프와 주제, 양식 등이 시대와 지역, 문화 주인공 등의 차이에 따라 다른 점과 함께 그 동인을 살피면서 궁극적으로는 중앙 유라시아와 한반도 선사 및 고대 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 등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특정 문화의 중심과 주변, 그리고 그 확산의 양태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과의 교류 및 문화 접변 현상 등의 문제도 살펴볼 심산이었다. 그러면 소지역주의에 함몰된 도그마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한 특정 지역과 시대 그리고 민족의 문화에 대한 바른 개념 규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쉽지 않았던 유적 조사. 그러나
한반도의 약 44배, 남한의 약 96배에 이르는 거대한 중국 대륙. 그 구석구석에 분포하고 있는 바위그림 유적들을 외국의 이방인이 찾아가서 조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바위그림 유적들은 사람들의 생활공간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은밀한 곳에 그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외부인들은 물론이고 현지 주민들조차도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한 유적지들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산악지대를 다닐 수 있는 차량, 강을 거슬러 오르내릴 수 있는 배를 구하는 일부터가 고난이었다. 또한, 이와 같은 이동수단을 확보한다고 해도 유적의 위치를 아는 사람을 구하여야 하는데, 이 또한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사실 유적을 찾아다니는 길은 모험이 아닌 적이 없었다. 여러 번 검문검색을 당해야 했고, 취조(取調)에 가까운 질문을 받아야 했다. 긴 시간을 기다려서 사람을 만나거나 수 킬로미터의 산길을 쉬지 않고 걷는 일, 그리고 도중에 비가 내리고 날이 저무는 일이 다반사였다. 매번 현지 주민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특별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란 고작 담배 한 갑, 양말 한 켤레가 전부였고, 시간이 한 참 지난 후에 소박한 점심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 최고의 감사 표시였다.
태양신 (주어즈산, 우하이, 내몽고)
춤 (창위엔, 운남)
얼굴-가면 (허란산, 영화회족자치구)
어려움 속에서 일궈낸 유적조사의 성과
우여곡절을 거치며 필자는 남부와 동남연안, 중서부, 서북부 등지의 바위그림 유적들을 조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중국 바위그림에 관한 대강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이 지역에서 유라시아 대륙 바위그림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중국의 독자성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유적지의 공간 조건, 제작 기법, 그리고 현지 주민들의 인식과 태도 등은 지역을 불문하고 서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또한 청장고원을 포함해 장성 북부 지역에 분포하는 그림들이 동물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는 것에 비해 운남과 광서 등지에서는 집단적으로 춤을 추면서 의례를 거행하는 광경들이 그려진 점 등 분명히 다른 점들을 지적할 수 있다.
광동 지역의 암각화는 홍콩이나 마카오 그리고 타이완 등과 양식적으로 강한 동질성을 띠고 있었고, 절강성의 스탕(四塘)이나 신강의 후투비(呼圖壁), 강소성의 짱쥔야(將軍崖) 등의 유적은 중앙 유라시아 대륙의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티프와 양식을 뽐내고 있었다. 운남 창위엔(滄源)에서는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고, 신강 파리쿤(巴里坤)에서는 유적지 부근에 은밀하게 제물이 바쳐진 흔적들을 살필 수 있었다. 광서 화샨 바위그림처럼 보는 이를 압도하는 큰 규모의 유적이 있는가 하면, 청해의 회이토우타라(懷斗他拉)처럼 크지 않은 바위에 그려진 암각화도 있었다.
필자는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중심으로 중국 바위그림을 소개하는 도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 현장에서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분류·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중국 내의 바위그림 유적들을 남긴 주인공들은 누구이며, 그것들은 거대한 중앙유라시아 문화판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울러 한반도의 선사 및 고대 문화와는 어떤 상관성을 띠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밝혀볼 예정이다. 현장에서 목격한 중국 바위그림의 세계를 최대한 생생하게 국내의 관련 학계에 소개하고 싶은 열망을 품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