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뒷줄 우측의 김선태님
열정이 이어준 동북아역사재단과의 인연
서대문문화원에서는 『서대문향토사자료집』을 만든다. 조사와 탐방을 통해 동네별로 향토사 자료를 모으고 매년 한 권의 자료집을 제작하는데 나는 이 프로젝트에 3년째 참여하고 있다. 더불어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내 고장 탐방 프로그램의 해설사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2018년 11월, 나는 해설사로서 독도체험관을 찾게 되었고, 독도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독도체험관 야간개관, 역사 강좌뿐 아니라 2019년 제1기 동북아역사재단 독도 전시해설 교육과정에도 100% 출석하며 역사에 대한 조갈증을 채워갔다. 이렇듯 나는 역사재단의 강의에 자연스레 빠져들게 되었고, 이는 해설사 교육이 끝남과 동시에 제19기 역사아카데미에 수강 신청을 하게 되었다. 역사에 대한 열정이 재단과의 인연을 지속해서 이어가게 된 것이다. 특히 19기 역사아카데미는 역사공정에 대한 시선을 넓혀주는 더없이 유익한 시간이었다.
역사아카데미의 제1강 <동북공정 바로 알기>
동북공정은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다. 중국의 전략 지역인 동북지역, 특히 고구려와 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동북 3성을 중심으로 한 간도 지방은 우리 고대사의 본고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고조선과 고구려까지도 모두 중국의 역사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역사아카데미의 제2강 <역사 현안과 한일관계>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대상으로 벌이는 경제전쟁은 일본의 경제적 위상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지만 점차 그 위상이 떨어지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한때 세계 경제의 15% 가까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일본이었지만 현재는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5%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기에 조급증 혹은 초조함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의 마찰은 역사 갈등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역사 교과서’다. 일본의 제1차 교과서 공격은 ‘55년 체제’로 돌아가려는 세력이 작용했다. 일본 내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건 교과서가 ‘일본 재군비론’의 등장을 타고 우익들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다 일본 교과서 문제가 동아시아 국가 간의 외교 마찰로 번진 건 1982년, 일본 문부과학성이 일본의 ‘침략’을 ‘진출’로, ‘탄압’을 ‘진압’으로 기술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외교분쟁으로 번진 이 제2차 교과서 공격은 ‘근린제국조항(近隣諸國條項)’을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학습지도 요령>에 넣으면서 일단락됐다.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우익 교과서에 대항해 ‘독립기념관‘을 세우고 민족 자존심을 키우기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제3차 교과서 공격은 침략전쟁을 미화한 ‘신편 일본사’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아카데미의 제3강 <역사 현안과 한중 관계>
중국 동북공정의 가장 요점은 고려와 조선 시대의 한중 관계를 종주국-종속국의 관계로 일반화시키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2017년 4월 시진핑과 트럼프의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중국 역사 왜곡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강의를 맡은 이정일 박사는 포스트 동북공정의 문제점에 대해 ‘20세기 중국사로 10~17세기 동북아의 과거를 왜곡’하는 것이라 꼬집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펼치고 있고, 미국은 한국이 5,000년 동안 종번체제에 있었기 때문에 친중의 역사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역사아카데미의 제6강 <('위안부' 중심으로)한일 역사 바로 알기>
흔히 일본군‘위안부’는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식민 지배 불법성을 부정하는 일본 우익들의 주장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은 폭력, 납치, 감언이설, 취업 사기, 유괴 등의 방법으로 강제로 끌려간 역사적 범죄의 피해자다. 강사인 박정애 박사는 “피해자의 진술에 의해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지만, 연구자가 거의 없고 사실상 피해자의 증언도 부족한 실정”이며 “일본이 감추고 싶어 하는 사건이기에 기록이 거의 없어 연구로 발전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주지시켜 주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은 일본군‘위안부’가 식민지 조선의 제도와 문화인 공창제의 일환이지 전쟁범죄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의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평양 남포 출신의 박영심 할머니는 일본의 ‘처녀 공출’에 걸려 난징으로 끌려갔다. 6년 동안 일본군의 성노예로 상처뿐인 날들을 보내던 할머니는 1994년 9월, 일본군의 패주로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 미군 신문에 게재된 위안부 사진 속 만삭의 여인으로 세상에 알려진 박영심 할머니. 2015년 12월 개관한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 입구에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임신한 위안부 형상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역사아카데미의 제8강 <동북아 질서와 역사화해>
역사아카데미 마지막 시간은 어떻게 화해를 할 것인가에 대한 강의가 이뤄졌다. 우리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국제 정치를 확인하고, 한일역사화해의 필요성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뤄졌다. 최운도 연구원은 일본은 일제 강제병합을 불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과거에 대한 책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독일 수상이 무릎을 꿇어 과거의 역사를 사죄했듯 스스로가 사죄하고 화해를 신청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강의에 참여하는 8차시 내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떠올렸다. 동북아 3국이 화해와 협력의 손을 마주 잡고 아세안과 함께 EU와 같은 경제공동체를 만든다면, 세계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가장 강력한 국가공동체가 되어 세계를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