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이영수 한국학대학원 한국사학과 석사과정
군 복무 중 동북아역사재단을 알게 되었다. 역사를 공부하며, ‘이 곳에서 역사를 연구한다면, 사람들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뜨겁게 나눈다는 내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하였다. 그래서 대학원 자기소개서에도 ‘나중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평생 연구를 하며 살고 싶다’라고 썼다. 그렇게 꾸준히 재단에 관심을 두던 중, 재단에서 온라인 서포터즈 1기를 뽑는다는 소식을 보았다.
합격이 간절하여 하나님께 치열하게 기도하며 준비한 결과 감사하게도 훌륭한 분들과 함께 서포터즈 1기가 되었다.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만큼 기분이 좋았다. 많은 학자를 뵙고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1기’라는 새로움으로 들떠 있었다. 발대식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의 홍보가 여러분께 달렸다”는 격려사를 들으며 분골쇄신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본격적인 온라인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했다.
첫 홍보 게시글은 재단에서 출판한 동북공정 관련 자료 요약이었다. 평소 동북공정에 대해 관심이 많아 기가 막힌 게시글이 나올 것을 내심 자부했는데, 완성하니 구상에 미치지 못하는 초라함에 자괴감마저 느꼈다. 다음으로는 ‘위안부’ 학술대회 참여를 게시글로 작성했다. 이때는 학부 시절 ‘평화나비’ 활동과 수요집회 참석 일화를 곁들이고 사진도 여러 방법을 써서 배치해 전보다는 자득하였다. 이 때부터 홍보 게시글 작성에 재미가 생겼다.
이후 정창원 한반도 유물, 수·당대 화친 정책, ‘촉각식검’을 통한 고대 한국의 교류망 등 수요포럼 관련 게시물을 작성했는데, 모두 평소에 관심 있던 주제들이라 게시글 속에 내 생각을 녹여낼 수 있어서 아주 즐겁게 작업하였다. 그 외에 수요포럼에서 뵈었던 재단 연구위원님들께 궁금한 것을 여쭐 수 있었고, 역사탐방을 ‘쌍사절 기념 이순신 장군 유적 답사’라는 테마로 진행하며 개인적 공부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서포터즈 활동에 대한 소회를 쓰고 있자니 면접 때 밝힌 포부에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믿고 선택해준 선생님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스런 마음이 있다. 그렇지만, 서포터즈 활동으로 얻은 것이 아주 많아 활동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재단과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재단 서포터즈를 통해 많은 유익을 누렸으면 좋겠다. 끝으로, 서포터즈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고현정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한다.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선택, 동북아역사재단
전동수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동북아역사재단 온라인 서포터즈에 지원했을 때, 나는 군대를 전역하고 아직 복학하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몸에 밴 긴장감은 여전히 몸속에 숨겨져 있었고,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왔다. 입대 전에는 '~까'라는 어미가 어색했는데 말이다. 재단의 온라인 서포터즈에 지원했을 때 나는 몹시 긴장했다. 역사를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사학과에 진학했고, 군대 또한 역사 전공자들이 지원한다는 유해발굴을 하고 왔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나에게 남아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이끌어 주고, 배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절실했다. 그때 학과 교수님의 포스팅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의 서포터즈를 알게 된 것이다.
사실 면접을 봤을 때만 해도 앞서 언급했듯 군을 전역하고 휴학을 연장한 상황이었던 나는 학과 공부와는 멀어져 있었고, 그로 인해 전공과 관련한 지식이나 생각이 많이 모자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합격 소식을 듣고 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게 되었다. 어쨌든 이런 작은 자신감을 품고 나는 활동을 시작했다. 발대식부터 약 5개월간 온라인 서포터즈로서 재단의 소식을 알리고, 행사에 참여해 취재기사를 쓰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 내 포스팅을 보고 주변 친구들과 후배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그게 고맙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결심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그중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은 최근에 다녀왔던 독도체험관 야간개장이다. 매월 1번씩 열리는 독도체험관 야간개장은 전시 시간을 연장하고, 1시간 정도 강의를 진행한다. 9월에는 독도에 관한 강의를 들었는데, 최근에 다녀온 11월 야간개장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한 강의가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오랜 기간 관심이 있던 부분이었고, 할머님들을 위해 후원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왜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발생했는지, 국제법상의 입장은 어떤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강의를 듣고, 내가 역사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이유, 그리고 역사 속에서 고통 받는 분들을 위해서 미약한 힘이라도 더하고 싶다는 내 다짐이 다시 살아났다.
서포터즈 활동은 나에겐 대단한 도전이었다. 여러 행사에 참여하고 기사를 쓰면서 동북아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고, 내가 아는 것보다 남들에게 알리는 것이 더 어려우며 중요하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무언 가에 도전한다는 것의 소중함도 얻을 수 있었다. 끝으로 이런 기회를 준 재단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다음에 활동할 서포터즈에게 열심히 활동해주길 부탁하고 싶다. 재단의 일을 도우면서, 자신도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5개월의 기록, 재단의 조보(朝報)로 활동하다
한동희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초목이 우거진 7월부터 첫눈이 내린 11월까지, 서포터즈 활동은 그야말로 ‘시광유서(時光流逝)’였다. 세월이 빠르게 끊임없이 져 가듯, 숨 쉴 새 없이 흐른 지난 5개월간 학계의 많은 분을 만났고 다양한 학술회의에 참석했다. 그 과정에서 훌륭한 교수님들을 만났고,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주관하는 여러 행사들을 알릴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장장 5개월의 동안 동북아역사재단을 알리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했다. 그중에서 가장 공을 들인 활동은 취재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관하는 여러 활동들을 취재해 블로그에 이를 소개하는 글을 적었는데, 총 7번이었다.
처음으로 쓴 글은 서포터즈로서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실을 둘러보며 재단의 역사, 설립 목적, 사무실의 위치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두 번째 글은 8월, 3·1운동 100주년과 더불어 재단이 세종문화회관과 공동으로 진행한 ‘동해, 독도 지도전’을 취재했다. 동해와 독도는 우리가 예전부터 불러온 이름이지만, 일제가 독도를 한반도 침략의 교두보로 삼으면서 일제의 침략에서 가장 먼저 빼앗긴 것이었다. 그래서 이 전시회는 독도와 동해가 옛날부터 우리가 써온 이름인 것을 입증하는 자료와 독도의 전경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었다. 수요포럼 활동도 취재하였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다양한 주제로 학술회의와 토론을 진행하는데 9월, 10월, 11월에 열린 포럼을 취재했다. 9월의 주제는 연민수 박사가 발표를 맡은 「정창원의 설립과 백제유물」로, 10월에는 우성민 연구위원의 「수·당대 화친 정책과 주변국과의 역학 관계」였는데, 북방 민족과 중화 제국들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추진한 결혼 방책에 대한 설명이었다. 11월에는 27일 장석호 연구위원의 「중국 바위그림의 세계」를 취재했다. 그 밖에도 여러 행사를 참관하며 서포터즈 자격으로 취재를 다녔다. 재단이 주최하는 행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 놀라웠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는 최근 이뤄진 충주 고구려비에 대한 학술회의였다. 발견 40주년이라는 가치도 있었지만, 11월경 충주 고구려비에서 새로운 글자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듣고 찾아온 이들이 많아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취재 말고도 다른 활동이 꽤 있었다. 주기적인 활동으로는 한 달에 총 3회 동북아역사재단 블로그 글을 스크랩해서 각자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 있었고, 비정기적인 활동은 재단에서 펴낸 책 두 권에 관한 감상문 작성, 유적지 탐방이었다. 그 중 동북아시아의 여러 문화가 섞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낸 인천의 개항지 유적을 선택했다. 인천을 탐방하면서 가까이 있었지만, 미처 몰랐던 숨은 유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고, 여행코스를 짜면서 ‘어떻게 하면 관광객들에게 이곳을 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기회도 가졌다. 이 모든 활동은 동북아역사재단의 여러분들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지면으로나마 재단에서 함께하는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다음 서포터즈들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끝없는 열정으로 재단 홍보를 더욱 열심히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역사가 지닌 ‘사실의 무게’를 가늠케 했던 5개월을 기억하다
김영철 인제대학교 역사고고학과
복학 이후 나는 대외활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활동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동북아역사재단 온라인 서포터즈는 역사학을 배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평소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에 관해 관심이 컸던 나로서는 아주 의미 있는 활동임이 틀림없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면접을 마친 후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지 못해 느꼈던 아쉬움을 잊지 못한다. 그만큼 서포터즈 활동은 간절한 일이었다. 그 간절함을 뒤로 한 채 5개월이 지났고, 어느덧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지난 7월 발대식에서 한국고중세사연구소 우성민 박사님이 하신 말씀은 활동을 하는 내내 가슴에 새겼다. “중국은 역사를 이데올로기로 사용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수나 양적 측면으로 중국에 대응하기 힘든 측면이 있어 국민들이 역사문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서포터즈의 역할이 크다”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는 내 활동이 그 역할에 충실한지에 대해 줄곧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첫 활동에 임하면서 스스로 생각했던 당시의 포부에 비해서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과는 무관하게, 서포터즈 활동이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 방문, 김문숙 부산 정대협 이사장님 인터뷰에서부터 독도체험관, 광화랑 ‘동해·독도 지도 展’, 일제 강제 동원 역사관 관람, 목포 근대유산 답사, 2000년 여성 국제 법정 19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 참석에 이르기까지 많은 활동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초짜 사학도에게 근현대사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 동원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다.
얼마 전에 읽은 한일역사 문제연구소에서 펴낸 『한일 역사 쟁점: 일제 식민 지배와 극복』에 ‘사실의 무게를 아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며 사실의 무게를 아는 노력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영화 ‘겨울왕국 2’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엘사와 안나가 할아버지가 범한 잘못된 역사를 잊지 않고 직시하며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어두운 안개를 걷고 희망찬 미래를 끌어낸다는 내용이다. ‘사실의 무게를 아는 노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어두운 과거를 숨기지 않고, 잘못된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말이다. 지난 5개월 동안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하는 수많은 활동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느낀 것은 ‘사실의 무게를 아는 노력’을 하는 이들이 바로 동북아역사재단의 관계자 여러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노력을 지켜보고 느낄 수 있었던 지난 5개월은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음을 확언한다.
끝으로 지난 5개월 동안 많은 깨달음을 얻으며 보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실의 무게를 아는 노력’을 위해 정진하고 계시는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 여러분과 그리고 부족한 나의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