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뉴스레터

재단 새 책
『안용복 ‘진술’에 대한 새로운 검증』
  • 정영미, 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

『A New Verification of Ahn Yong-bok's Statement』


이 책은 안용복의 비변사(備邊司진술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것 외에도 한국 측 관련 기록을 최대한 사용하여 울릉도쟁계와 안용복의 1·2차 도일 사건을 기술했다는 특징이 있다지금까지 학계가 일본 측 관련 기록을 주로 활용하고 이해해 온 것은 일본 측 기록이 많고 내용도 구체적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한국 측에도 단편적이기는 하나관련 기록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이 책은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은 기록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집필한 것으로해당 사안에 대한 독자의 통합적 이해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안용복 진술의 신빙성은 누가 훼손하였나


1693년 울릉도에 가 있던 조선인 중 안용복과 박어둔이 돗토리(鳥取) 번의 요나고(米子)에서 출항한 배의 선원둘에게 납치되어 돗토리로 끌려간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단초로 조·일 정부 간 울릉도 소속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가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라고 하면서 조선 어민의 도해를 금지시키라는 요구를 해 왔기 때문이다. 흔히 울릉도쟁계라 불리는 이 논쟁은 16961월 일본 정부가 돗토리 배의 울릉도 도해를 금지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안용복이 일행을 꾸려 다시 돗토리로 간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비변사는 허락없이 일본에 건너갔다 귀국한 안용복을 체포하여 조사한다. 당시 안용복이 비변사에서 진술한 내용을 안용복 진술혹은 비변사 진술이라 부른다.


이 진술은 주로 일본 연구자에 의해 비판적으로 검증되어 왔는데, 안용복이 일본에서 일본인들이 말하는 죽도와 송도(松島, 마쓰시마)는 울릉도와 우산도라고 하는 조선의 섬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죽도와 송도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런데 우산도가 송도라는 것은 우산도가 독도라는 말이고, 이는 독도가 옛날부터 한반도에 속한 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연구자들에 의해 안용복 진술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었고 그 결과 그 신빙성의 훼손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안용복의 비변사 진술의 신빙성을 새로운 관점 하에 재검증한 것으로, 그 훼손된 신빙성의 복원을 지향하였다.


     

안용복 진술을 바라보는 관점


이를 위해 제시된 새로운 관점은 두 가지다. 먼저 제1부를 통해 울릉도쟁계의 이중 구조라는 관점이 제시되어 있다. 안용복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받는 배경에는 울릉도쟁계가 있다. 이에 대해 조선 조정은 죽도는 조선의 울릉도라고 대응했고, 이후 조·일 간의 논쟁은 울릉도=죽도 한 섬을 대상으로 전개되었다. 결론 역시 돗토리 주민의 울릉도=죽도 한 섬에 대한 도해 금지로 지어졌다. , 울릉도쟁계에서 조선 조정이 안용복 진술 중의 우산도=송도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다거나, 그 소속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다는 기록은 없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안용복의 우산도=송도에 대한 주장은 조선 조정도 신뢰하지 않았다’, ‘울릉도쟁계 결과 우산도=송도는 무인도 또는 일본의 섬으로 남았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제1부에서는 한·일의 사료를 아울러 살펴 울릉도쟁계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는 한편, 이 논쟁이 안용복 진술에 상정되어 있는 공간과 주체를 달리하는 또 하나의 논쟁, 즉 돗토리로 끌려간 안용복과 돗토리 어민, 호키국伯耆国 태수와의 논쟁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 안용복 진술이 결코 신빙성이 없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했다.


그리고 제2부에서는 안용복의 진술을 언어적 경험에 의한 진술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여 신빙성 훼손에 대한 문제점을 명백히 했다. 안용복 진술에 대한 검증에는 특별히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하나는 안용복 진술에 상정되어 있는 돗토리에서의 논쟁이 조선 측이 검증 가능한 영역의 바깥에서 벌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조·일 간의 교류는 통상적으로 부산 왜관과 쓰시마라는 공간에 한하여 이루어졌다. 이는 조선 조정이 안용복 진술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한 사실관계 조사 등이 불가능했음을 말해주며, 그 결과 진술은 어떤 관련 기록 없이 안용복의 주장으로만 남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안용복의 진술이 기본적으로 언어적 경험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어로 소통이 가능했던 안용복은 신체적 경험 외에도 많은 언어적 경험을 할 수 있었다. , 그가 직접 어딘가를 가고 보아서 알고 있었던 사실 외에도 주변의 일본인으로부터 장소, 사람, 사건 등에 대해 들어서 알게 된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의 진술에는 이와 같은 언어적 경험이 섞여있기 때문에 관련 기록과의 직접적 대조를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2부에서는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안용복 진술을 재검증함으로써 기존의 검증에 명백한 문제점이 있음을 밝혔다.

     

죽도제찰(竹島制札)


독도 영유권의 근거를 더욱 명확히 해야


안용복 진술이 독도 영유권의 근거로 제시된 지 약 70년이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발굴된 대부분의 사료, 연구 성과 등을 섭렵하여 현재 시점에서 울릉도쟁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안용복 진술을 대하는 타당한 관점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책에서 언급한 돗토리에서의 논쟁을 보다 명백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안용복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논쟁은 돗토리 지역에 남아있는 극소수의 사료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는 있으나,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사료는 부족하다. 더욱 철저한 사료 조사와 발굴, 체계적 연구만이 독도 영유권의 직접적 근거가 되는 안용복 진술을 더욱 명확히 하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