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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75년, 나는 왜 야스쿠니신사와 싸우는가
이낙호의 아들 이명구의 진술서
  • 정리 | 남상구,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이낙호의 아들 이명구의 진술서


이명구 원고의 아버지 이낙호는 1914813일생으로 1944120일 육군 군속으로 강제동원되었다가 1945412일 팔라우에서 사망했다. 유족에 통보도 없이 19594월 일방적으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었다.

(2015. 5. 27.)

 

이낙호의 아들 이명구의 진술서

 

저는 이 재판의 원고인 이명구입니다.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이낙호의 아들입니다. 일본에 의해 창씨개명된 일본식 성은 마쓰모토(松本)였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삼촌, 남동생과 함께 소작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가을에 곡식을 수확하면 반은 소작료로 지주한테 내고, 나머지는 면에서 직원이 나와 공출했습니다. 아버지는 1943년 음력 겨울에 강제동원되었습니다. 마을에는 아버지 외에도 청년들이 있었는데 왜 아버지만 끌려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할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면에서 여러 번 나와서 끌고가려는 것을 피해 도망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 숨어서만 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간 거라고요. 조금만 있으면 해방이 되는 거였는데 그걸 모르니 끌려갔다고 합니다.

(중략)

1945815일은 기나긴 식민 지배에서 우리나라 백성들이 해방된 기쁜 날입니다. 원치 않아도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꿔야 했고, 일본 말과 글을 강제로 써야 하는 억압에서 해방되었으니 모두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가족은 해방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1946103(음력)에 돌아가셨습니다.

(중략)

그리고 오래지 않아 할아버지, 할머니도 병이 악화돼서 돌아가셨습니다. 저와 동생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 나이는 아홉 살, 동생은 다섯 살이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 굶고, 병들어 시름시름 앓는 것을 보면서도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 형제는 의지할 데가 없었고, 저는 어린 동생을 잘 돌봐줄 수 없었기 때문에 동생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세상에는 저 혼자만 남았습니다. 지금도 동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사상에 차려진 과일이 먹고 싶다며 울던 어린 동생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형으로서 동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제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일본에 강제로 징용된 후 4년 사이에 모두 죽었습니다.


이낙호의 아들 이명구의 진술서


재판장님, 저는 일본을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어린 동생을 모두 잃었을 때 제 나이는 열한 살이었습니다. 일본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은 고통과 상처가 있었지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가족의 핏줄을 이어갈 책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연탄 공장에서 살면서 제게 주어진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살아서 돌아오실 거라고 믿고 싶었기에 사망신고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다 1964년에 아들을 낳고서야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사망신고를 했습니다.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니 집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신고했습니다. 이처럼 고난을 겪으며 살아온 삶이 오직 저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 의해 가족을 빼앗긴 유족들은 모두 가족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고통을 겪으며 현재까지도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중략)

해방되어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사람이 일본 이름으로 일본 땅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해주십시오.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서 죽게 만든 것도 억울한데 왜 일본 정부는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합사한 것입니까.

(중략)

재판장님을 비롯한 모든 일본인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답해주십시오. 한국 사람들이 전쟁에 끌려간 것은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하고 나라를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한국을 빼앗을 때 저항하던 한국인들을 학살한 수많은 일본인도 합사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것입니까. 이들이야말로 한국인들을 절망에 빠트리고 고통 속에 살게 만든 당사자 아닙니까. 어째서 이들과 제 아버지를 일본을 위해서, ‘천황을 위해서 죽은 사람으로 취급합니까.

앞으로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살아있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야스쿠니신사에서 제 아버지 이름을 빼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끌려가신 날인 1221(음력)에 제사를 지내오다가 1970년대부터는 제사 대신 기독교식으로 추도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스쿠니신사에 아버지가 신으로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버지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괴롭습니다. 자식으로서 일본에 의해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편안한 마음으로 추도하고 싶습니다.

해방된 지 70년이 되었지만 제 아버지는 일본 이름으로 야스쿠니신사에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끌려가 죽은 이들을 야스쿠니신사에 가두어 둔, 전쟁과 식민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아베 총리와 정부 관료들은 오늘도 여전히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합니다. 제 아버지가 왜 이런 사람들의 참배를 받아야 합니까. 이는 우리 가족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제 아버지 이름을 빼내어 해방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가족이 겪었던 슬픔과 고통, 악몽의 시간들을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야스쿠니신사에서 해방시키고 저도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야스쿠니신사에서 제 아버지 이름을 뺄 수 있도록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