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 제소
(1997.12.24.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 앞)
지난 6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해자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 피해와 청구권을 인정했기에 이번 판결은 지방법원이 대법원의 판례를 뒤집는 것이었다. 언론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법적인 논리 이전에 판결문에 담긴 판사의 퇴행적인 역사 인식에 크게 분노했다.
일제 식민지배와 강제동원 인권 피해 회복을 위한 소송운동
1995년, 일제강점기 일본 히로시마의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 당한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를 제기했다. 1997년에는 일본제철 오사카제철소에 동원된 피해자들이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모두 패소했다. 일본 재판소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고,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더이상 싸울 방법을 찾을 수 없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들은 다시 한국에서 소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일본제철 피해자들의 소송에서 ‘일제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며,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로 인한 인권 침해에 대해 피고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대한민국이 3·1독립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에 따라 성립되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현행 헌법과 ‘모든 식민주의가 배척되어야 하며,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관련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국제인권법, 인도법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연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는 일제강점기 징용·징병·일본군‘위안부’·근로정신대 등으로 강제동원되어 고통을 겪은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실질적인 진상 규명과 인권 회복 운동을 진행하기 위해 2000년에 결성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의 특성상 일본 시민단체와의 공동 사업과 연대는 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소송을 통한 피해자 인권 회복 사업은 ‘보추협’의 주요 사업이다. ‘보추협’은 1997년 일본에서 제소한 일본제철 사건에서부터 2018년 10월과 11월에 대법원이 확정판결한 미쓰비시중공업, 일본제철 사건의 사무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가해 기업을 상대로 하는 한국 소송 7건을 지속하고 있으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함께 새로운 소송 40여 건을 시작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의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재상고심 판결
(2018.10.30. 대법원 동문 앞)
식민주의 극복과 보편 인권의 확립을 위한 길
지난 6월 7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를 각하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제국주의 시대에 강대국의 약소국 병합이 불법이라고 확정할 수 없고, 서방 세력의 대표 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국과의 관계가 훼손되면 미국과의 관계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많은 시민들은 ‘독립한 민주국가 법원의 판결인가? 왜 재판부가 정치, 외교 문제를 다루며 궤변을 강변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이 판결의 논리에 따르면 일제의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은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독립운동이 불법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이 판결은 대한민국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지난 7월 22일, 제4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1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제철, 철강, 조선, 석탄산업’(이하 ‘메이지산업혁명유산’) 시설과 관련하여 “한국인 등의 강제노역 피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 추모 조치 역시 미흡했다는 데 강한 유감을 표한다.”라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2015년에 이 시설들이 선정될 당시 일본 정부는 해당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 전략’을 마련하기로 국제사회와 약속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나도록 일본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메이지산업혁명유산’은 일본의 근대화·산업화의 핵심 시설이었고 일제의 침략전쟁과 직결된 군수산업 시설이었다. 이 시설에서 조선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뿐 아니라 일본 국민들 또한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당했다. 유네스코의 결정은 해당 시설의 이런 이중적인 측면을 드러내야 세계유산으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곧, 유네스코는 일본 정부에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일제의 침략전쟁과 강제동원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오는 10월 30일이면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온 지 3년이 된다. 2019년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을 빌미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작했고, 시민들은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에는 동참한다’며 자발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이 문제가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가해자의 무책임에 분노했다. 이처럼 일제강제동원 문제는 한국 사회의 정체성, 일본의 식민주의, 국제사회의 보편 인권 문제에 맞닿아 있다.
일제강제동원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한계수명에 달했고, 이미 많은 분이 돌아가셨다. 하지만 스스로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피해자의 싸움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고, 우리 시민들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보추협’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타고난 자유와 존엄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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