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30일, 재단 대회의실에서의 정년퇴임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마지막 근무를 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며 재단에서 담당했던 업무, 학술적 활동, 그리고 몇 가지 단상을 적어 보았다.
크라스키노성 발굴 현장에서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2006.8.15.)
왼쪽부터 재단 김은국·임상선 연구위원, 러시아 샤브꾸노프 박사, 레쉔코 연구원, 러시아 학생 발굴단원, 재단 윤재운 연구위원
고구려연구재단에서 동북아역사재단으로
재단이 출발하던 2006년의 무더운 여름이 생각난다.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사연구팀장으로서 속초항에서 발해 성터 발굴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고, 인천공항에서 러시아로 출국했다. 그렇게 러시아 연해주 남단의 크라스키노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던 8월, 고구려연구재단은 해체되고 동북아역사재단이 설립되었다.
2006년 8월 28일, 서대문구 미근동 임광빌딩 12층 재단 사무실에 첫 출근을 했다. 그즈음 언론의 관심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집중되어 있었다. 역사 전쟁의 시간이었다. 9월 5일, 동북공정의 결과물로서 중국에서 발간된 『발해국사渤海國史』의 발해사 왜곡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 KBS TV 저녁 9시 뉴스에 방영되었다. 9월 6일에는 생전 처음 청와대에서 동북공정 현황 등을 보고했고, 9월 8일에는 국회 ‘독도수호 및 역사왜곡 대책 특별위원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9월 28일 10시 30분, 임광빌딩 건물 입구에 현판을 달고 11층 대회의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재단 출범식을 개최하였다.
`
동아시아사 교과서(2015개정)
출처: 비상교육, 미래엔, 금성출판사, 천재교육
재단의 핵심 사업, 교과서 업무
재단의 업무 중 가장 핵심은 교과서라 생각한다.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 정부에 역사 왜곡의 문제를 제기하는 대상은 그들의 역사 교과서에 있는 한국 관련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재단이 주관한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개발은 의미가 크다. 2006년 12월에는 교육부의 요청에 따라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교육과정 개발(대표, 안병우 교수)에 연구위원의 한 사람이면서, 재단 연구협력관으로 참여했다. 각 분야 전문가의 논의 과정에서 한중 및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한 재단의 입장 등을 설명, 반영할 수 있었다.
고구려·발해사 국제학술회의 참가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2011.11.29.)
아래 첫째줄 왼쪽부터 박찬규(중), 지화산(북), 이블리에프(러), 임상선(한), 고지마(일), 주국침(중)
둘째줄 림호성(북), 이동휘(중), 김태순(중), 겔만(러), 김정희(한), 권승안(북), 레쉔코(러), 정영진(중), 김은국(한)
셋째줄 고광의(한), 리창진(북), 러시아 학자, 후루다(일), 김춘종(북), 러시아 학자, 니키틴(러), 이효형(한),
샤브꾸노프(러), 북한 참가자, 러시아 참가자, 북한 참가자, 정경일(중)
남·북, 중·일·러가 참가한 고구려·발해사 국제학술회의
2011년 11월 28일과 2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구려·발해사 연구의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필자는 팀장으로서 회의를 총괄하고, 김정열 박사가 실무를 맡았으며, 고광의 박사가 북한과 중국 학계를 담당했다. 개회식에서 한국 대표로 발언하고 〈발해의 천도와 도성 – 현주顯州와 중경中京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도 발표했다. 일본의 고지마 요시타카小嶋芳孝 선생이 이러한 규모의 발해사 국제학술회의는 동아시아에서 한국, 즉 재단만이 할 수 있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프로시압박물관 벽화 속 고구려 사신 (우즈베키스탄 아프로시압, 2012.11.27.~28.)
벽화 사진의 오른쪽 두 명은 7세기 중엽 사마르칸트의 왕을 알현하는 외국 사절로,
새 깃털 장식을 머리에 꽂은 것으로 보아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하는 인물
고구려 사절단이 그려진 아프로시압 벽화 조사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아프로시압에 소재한 고구려 사절 관련 벽화가 훼손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중앙일보, 2012. 11. 3.)를 계기로, 2012년 11월 26일에서 12월 1일까지 고광의 연구위원과 함께 현지를 방문했다. 재단은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요청으로 벽화의 3D 복원, 다국어 전시 설명 등을 지원했다. 그 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하는 한국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꼭 이곳을 방문하고, 재단의 존재와 역할을 확인하고 있다. 명실상부 선진국으로 도약한 오늘날 한국의 위상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아프로시압 벽화 보존 프로젝트와 같은 국제적인 분야에서 재단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북아·독도교육연수원 설립
필자는 2014년에 동북아·독도교육연수원 설립추진단장을 맡았다. 주어진 임무는 2013년 7월 교육부에서 인가받은 동북아·독도교육연수원을 재단의 정식 직제에 포함하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20~30억 예산의 연수원 운영 계획을 마련하여 교육부, 기재부 등의 예산 담당자를 방문하여 설명하였으나, 다음 해 1월 추진단은 해체되었다. 결국 재단의 현안이었던 교육연수원은 2016년 기획연구처장으로 있을 때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재단의 독립 부서가 되었다.
발해사와 역사교육 연구
15년 동안 재단에서 근무하며 수행한 연구 주제는 발해사와 역사교육이었다. 학술회의 발표 19회, 발표 논문 40편, 단독 및 공동 저서 13권, 그리고 번역 논문 1편, 번역 저서 3권을 발간했다.
국제학술회의 기획
2007년 11월 ‘동아시아 역사교과서의 주변국 서술과 그 특징’을 주제로 동아시아 역사교과서 국제 학술 워크숍을 기획, 진행했다. 중국, 일본, 대만, 러시아, 베트남, 몽골, 한국 등 7개국 학자가 참가했다. 해당 국가에서 유학한 국내 전공자의 도움을 받아 각국의 저명한 발표자 선정, 번역, 회의 진행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기획 연구 『동아시아 역사교과서의 주변국 인식』(2008)으로 발간했다.
연구 방향
고구려연구재단에서 동북아역사재단으로 바뀌면서, 발해사 연구와 사업에 관한 생각에도 변화가 있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학계도 공감할 수 있는 연구와 사업을 생각해야 했다. 방향은 동북아에서 발해사의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듯하지만 발해사를 넘어 재단의 다른 연구와 사업에서도 유념해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발표 논문
〈중국과 타이완·홍콩 역사교과서의 발해사 인식〉은 중국과 타이완·홍콩의 역사교과서의 발해사 내용을 비교 검토한 것이다. 이는 『중국과 타이완·홍콩 역사교과서 비교』(동북아역사재단 기획연구 15)(2008)에 수록되어 있다.
〈북방지역 종족의 계승 관계 검토 - 말갈·여진·만주족을 중심으로〉(2014)는 말갈족과 여진족, 만주족이 상호 종족적으로 계승 관계가 있는지 검토한 것이다. 말갈→발해→금(여진)→청(만주족)이 종족적 연계를 갖고 있다는 중국 학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미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필자는 몽골 방문 연구(2013.7.8.~9.8)를 마친 뒤 『요사遼史』를 바탕으로 〈발해인의 거란 내지로의 강제 천사遷徙와 거주지 검토〉(2013), 〈요대 제할사提轄司와 동경東京 지역의 군사 조직〉(2014), 〈『요사』 지리지의 알로타斡魯朶 주州·현縣〉(2014) 등 발해 유민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 및 공저
2018년과 2019년에 세 가지 연구를 기획하며, 논문을 작성하고 결과물을 출판했다. 〈동단국東丹國의 운영과 발해 유민〉은 발해가 멸망되고 세워진 동단국에 대한 검토이고, 〈『발해고』를 통해 본 유득공의 발해사 인식 검토〉는 유득공의 『발해고』 서문과 본문을 검토한 것이다. 〈안확의 저술에 나타난 한국 고대사 계승 인식〉은 일제 강점기에 다방면에 걸쳐 활약한 안확安廓(1886~1946)의 『조선문명사朝鮮文明史』를 분석한 것이다.
『조선의 역사 전문 외교관, 유득공』은 재단의 교양서로 오는 9월 중에 간행될 예정이다. 유득공이 1790년 연행사의 일원으로서 수행한 역할이 오늘날의 역사 분야 및 국제 문제 전문 외교관의 모습에 가깝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18세기 후반 조선이 파악한 청의 실상, 조선을 둘러싼 국제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다시 신입 연구위원이 된다면
퇴임을 맞아 내가 다시 재단의 신입 연구위원이 된다면 하고 싶은 몇 가지를 꿈꾸어 보았다.
전이형록필 책가도(傳李亨祿筆冊架圖)
ⓒ국립중앙박물관
사료와 이론
역사의 기본은 사료와 해석이다. 중국은 사료를 가지고 있고, 일본은 해석에 강하다. 한국은 사료도 이론도 부족하다. 유득공이 ‘남북국시대’론을 통해 발해사 재정립에 기여하였듯이, 한중 및 한일 관계 사료를 우리 입장에서 해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입장에서 동북아 역사 이론을 세워 궁극적인 역사 왜곡 극복에 나서고 싶다. 그 이론은 한국·중국·일본·몽골이 포함된 동북아 역사를 우열 관계가 아닌 상호 존중과 공존의 관계로 해석할 것이다.
현장의 이해
재단의 사업은 서로 연계되어 있어 총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중국 분야는 일본과 독도를, 일본 분야는 중국과 독도를, 독도 분야 역시 중국과 일본의 연구와 현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 일본의 역사 왜곡 현장과 독도를 방문해 동북아의 역사 문제에 대한 현실감 있는 해결 방안을 찾고 싶다.
연구의 수준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역사와 교육 분야에서 국내만 아니라 동북아, 세계의 관련 학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싶다. 그래야 재단이 살고, 나라가 살고, 동북아에 평화가 온다고 생각한다. 연구위원들이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자유롭고 폭넓은 연구와 대외활동을 할 수 있는 재단 내외의 여건이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재단의 미래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 정세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동북아의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야가 역사 문제이다.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라는 일국사적 입장에서 벗어나 ‘동북아’라는 큰 틀 속에서 역사와 국제관계에 통합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하고 싶다. 우리 재단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 역사 문제를 해결하라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유수의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도 재단에서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항상 재단을 성원할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재단과 함께 한 15년, 분야별 업무와 연구를 돌아보며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