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지역 일간지인 베를리너 차이퉁(Berliner Zeitung) 2020년 10월 12일자의 소녀상 설치 논란 보도 화면 캡처.
사진 아래 ‘이른바 ‘위안부’ 기념물’이라는 소개와 함께, 서울에 있는 기념물의 복제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시 성폭력은 오래도록 전쟁의 일상이며 불가피한 부산물로 여겨졌고, 그 피해자는 여느 폭력 피해자와 같은 '희생자의 권위'를 갖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이를 변화시킨 계기로 평가된다. 김학순의 공개 증언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존재가 가시화되었고, 그들의 말하기와 기억이 공론장에 안착했다.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끌어내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연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기억은 지구적 공간으로 나아가 트랜스내셔널 기억 경관에서 전시 성폭력 희생자의 표상이 되었다. 그러나 '위안부' 기억의 지구화는 동아시아 기억 전쟁의 지구화를 수반하였고, 이는 지난 십 년간 남한 영토 바깥에 '소녀상' 세우기를 통해 전개되었다. 2020년 9월 베를린 한복판에 등장한 '소녀상'이 최근의 사례다.
베를린의 '소녀상'
독일에서 이런 일이 베를린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6년 봄 프라이부르크 시립공원을 시작으로 2017년 비젠트 네팔 히말라야 공원, 2018년 함부르크 도로테 죌레 하우스와 본 여성사 박물관, 2019년 도르트문트 산업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간 독일은 소녀상 건립을 둘러싼 한·일 간 기억 정치와 역사 전쟁의 무대였다. 한국인들은 나치 과거를 '모범적으로 청산'했다고 믿고 있는 독일에서 소녀상 설치가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2012년 초 독일 연방의회는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2007)에 동참하자는 사민당과 녹색당의 제안을 거부하는 냉담한 실용주의를 보인 바 있다. 표면적 이유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본에 가혹한 처사라는 것이었지만, 일본 정부의 체면을 깎아서는 안 된다는 외교적 고려가 깔린 결정이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보수 정당 의원들은 전시 성범죄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며, 제삼자인 독일이 이 까다로운 논의에 끼어드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청산 모범국?
독일인에게 '과거 청산'은 오랫동안 나치 범죄를 다루는 것을 의미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동독 독재 범죄가 추가되었다. 식민지 범죄는 또 다른 문제다. 20세기 초 독일제국 군대의 헤레로·나마족 집단 학살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나치와 동독 과거를 다루는 적극성과 대비된다. 2021년 5월 독일 정부는 나미비아 정부와의 긴 협의를 거쳐 사과와 배상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공식 성명이 아닌 언론을 통해 나온 사과문은 조심스럽게 법적 책임을 피해 갔고, 향후 30년간 지급될 11억 유로는 개발원조이지 배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피해 부족들은 ‘뜨거운 돌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기’라고 비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치 국가와 군대의 전시 성노예 피해 인정과 배상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미풍양속 보호와 성매매 근절을 명목으로 수용소에 격리된 사회 부적응 여성들, 성병과 동성애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하겠다며 체계적으로 운영한 군 매춘소에 동원된 점령지 여성들, 남성 수인의 노동 생산성 제고를 위해 친위대가 운영한 수용소 매춘소에 차출된 여성 수인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의 독일군 성폭력 피해자들, 그리고 종전 후 동유럽과 독일에서 자행된 연합군(특히 소련군과 미군) 성폭력 피해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라벤스브뤼크 기념관. 나치 시대 여자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매춘 또는 매춘 혐의를 받아 격리된 '사회 부적응' 여성들이 수용되었고,
남성 수인의 노동 생산성 제고를 위해 매춘소 강제 노동에 동원된 여성의 일부가 이곳에서 차출되었다.
벽에는 이곳에 수용되었던 여성들의 출신국 이름이 붙어있다.
(사진) 'Wall of Nations' by WordRidden/CC BY스탈린
잘못된 피해자
독일에서 이 주제는 아카데미와 공공 역사에서 다뤄지고 있을 뿐 피해 인정과 배상은커녕 의미 있는 사회적 논의가 없다. 이들의 이야기가 발굴된 것은 1990년대에 활성화된 기억 연구,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의 자극을 받아 1980년대에 활발히 이루어진 여성사 연구 덕분이다. 독일 여성사 연구의 성과는 독일 여성의 나치 공조를 파헤치고, 그들이 인종주의 인구 정책과 재생산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수혜자/가해자였음을 선언한 것이었다. 여기에 ‘피해자 독일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동유럽의 사정도 복잡하다. 독일 군대와 소련 군대에 번갈아 가며 점령당한 폴란드와 체코는 양쪽 폭력의 희생자였지만 냉전과 탈냉전이 과거 정리에 역사적 한계를 그었다. 냉전기에 나치 강제 노동과 성폭력 피해자는 '부역자' 취급을 받았고, 탈냉전기에는 스탈린 범죄 청산이 나치 범죄를 압도했다. 동유럽 여성 운동의 관심사는 여성의 삶과 노동이라는 당면 현실이지 먼 과거가 아니었다.
위안부 기억의 탈영토화를 향하여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는 탈식민 민족주의와 보편적 여성 인권이라는 두 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반일 감정에 호소할 때 대중의 열렬한 반응을 얻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서사의 반일 민족주의는 애초에 발화와 가시화가 어려운 성폭력 피해의 경험과 기억을 공론장에 안착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이 성공을 통해 '위안부' 기억은 지구적 공간으로 나아갔다.
기억 연구자들의 논의에 따르면, 지구화 시대에 기억은 국경을 넘나든다. 그리고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영토나 집단의 틀에 매이지 않는다. 누구에 의해, 어떤 장소에서, 다른 기억들과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획득하고 새롭게 탄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해외의 '소녀상' 설치 현상은 위안부 기억의 '탈영토화'와 연대의 (불)가능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말하기를 가능케 하고 변화의 길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기억은 '지구적 연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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