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단은 구미학계의 중국사 인식을 재조명하고, 구미학계가 중국의 대외관계사 서술에 있어 한국사를 어떠한 방식으로 서술하는지를 연구한 『구미학계의 중국사 인식과 한국사 서술 연구』를 발간하였다. 중국이 글로벌 슈퍼파워로 급부상함에 따라 미중 갈등은 나날이 첨예화하고 있다. 본서는 미중 갈등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중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본서는 20여 명의 저자가 공동집필하였으며, 주요 내용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구미학계의 『케임브리지 중국사』 편찬 배경
『케임브리지 중국사』는 1950년대 미국, 유럽에서 중국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서방의 독자들에게 중국사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1958년 미국정부는 중국의 위협은 전략적으로 명확히 약화됐다는 국방교육 법안을 통과시켰고, 일부 대학에서는 중국어와 문화 강의를 하는 학과들을 개설했다.
책임 편찬자는 미국 중국학의 기반을 조성한 존 페어뱅크로 중국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이론틀인 ‘충격과 대응 논리’를 제안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청나라를 19세기 구미세계와의 충돌로 구질서가 끝난 시기로 인식했다. ‘충격과 대응 논리’에 의하면 중국 문화는 폐쇄적이어서 중국사회를 정체 로 이끌었으며 서구의 충격을 통해서만 비로소 본래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현대화의 노정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한다. 패어뱅크의 이와 같은 주장은 1960년대 출간한 동아시아사 개설서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구미학계의 중국사 인식의 변화
1960~1970년대 구미학계에서는 서구중심적 시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지역의 독자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충격 대응론'에 대한 시각을 조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시기 특징은 충격 대응론의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면서 중국 역사에 대한 중국인의 주체성과 역사의 연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는 개혁개방 시기 다시 협력 상대가 될 중국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었다.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세계시장 참여를 권장하는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외부의 충격과 중국의 반응 논리는 반성의 대상이 되었으며, 서구의 충격과 중국의 대응이라는 모델 대신 중국 내부의 변화와 발전, 내적 동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구미학계에서는 ‘탈근대’, ‘탈식민’, ‘탈중심적’ 담론이 확산됐는데 미국의 ‘신청사’ 연구에 영향을 주었다. 이른바 ‘신청사’ 연구는 청대 만주족이 완전히 한화된 것이 아니었고 비한인 정체성이 청제국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청사’ 연구가 기왕의 중국사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한인 중심주의를 비판한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1994년에 출간된 『케임브리지 중국사』 제6권도 세계제국이었던 몽골사의 중요성을 반영했다. 몽골이 중원을 상실한 원인에 대해서도 중국학계와 달리 몽골과 한족 엘리트의 갈등이 아니라 대칸 권력의 쇠퇴에서 찾았다. 티베트와 위구르제국도 중국사에서 분리하여 내륙아시아 분야에서 서술했다.
한편 상대적으로 뒤늦게 간행된 『케임브리지 중국사』 9권 제2부 「1800년까지의 청조」에는 기존의 서구 중심적 시각을 벗어나 중국 중심적 시각에서 중국을 연구하려는 폴 코헨(Paul A. Cohen) 등 비신청사 학자들이 시도한 새로운 경향이 상대적으로 잘 반영돼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구미학계와 중국학계의 학술 네트워크가 잘 작동한 사례라는 지적이 있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케임브리지 중국사, 육조(220~589년)』 2권에서는 경우 비한족의 역할, 즉 ‘호한(胡漢)’에서 ‘호(胡)’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탈중국’적 경향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중국학계의 반응
중국학자들은 『케임브리지 중국사』를 통해 서양학자들의 중국사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자로 기록된 원문 활용의 저조, 중국학계의 연구성과의 누락, 정치사 위주의 편중된 서술 등을 지적했는데, 특히 민족관계의 서술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면, 『케임브리지 중국사』 3권에서 티베트와 발해 등이 일본·신라와 동등하게 국제관계 부분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청사’ 또한 단순한 역사 연구가 아닌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했다.
구미의 중국 근대사 학계에서 1970년대부터 중국 중심 접근법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중국을 이해하려고 한 노력에 대해서도 중국학계는 서구 제국주의 침략을 옹호하는 입장이 담겨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9년 1월 중국 최대 규모의 역사 연구기관이자 싱크탱크로 설립된 중국역사연구원은 『역사평론』이라는 역사 대중잡지의 창간호에서 “『케임브리지 중국사』의 ‘오류’와 ‘곡해’를 간과하는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전쟁의 중국식 표현인 이른바, ‘항미원조’에 대해 “중국의 애국주의 고조라는 긍정적 영향보다 부정적 영향이 컸다고 평하고 있는데, 이것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케임브리지 중국사』에 드러난 구미학계의 중국사 인식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중국의 역사연구가 당면한 현실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구미학계의 한국사 서술
『케임브리지 중국사』 시리즈는 한중관계사에 대한 역사 해석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케임브리지 중국사』 고대사 부분의 한국사 관련 내용을 보면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의 허상에 대해서도 정확히 서술했다.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도 국내학계와 동일한 입장을 제시하여 동북아시아 국제관계에서 한반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2017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시진핑 중국 주석의 말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한국은 실제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발언이 구미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와는 차이가 있음 을 알 수 있다.
본서의 집필진은 『케임브리지 중국사』의 각 권별 한국사에 대한 서술이 단편적이고 소략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이는 대다수 서구의 동아시아사 전공자들이 주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된 연구성과를 인용하고 한국학계의 연구성과는 거의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따라서 ‘케임브리지 한국사 시리즈’가 아직 출간되지 못한 상황에서 구미학계와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한국학계의 성과를 알릴 필요가 있다.
서양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과 용어로 접근한 한국사를 소개하는 영문 개설서를 발간해 동아시아 역사의 다양성과 상호작용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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