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양석일(梁石日)의 소설 『피와 뼈』(1998)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1936년생인 양석일은 오사카시 이카이노(猪飼野)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제주도 출신이다. 그는 열여덟 살 때부터 시를 썼고, 생업을 위해 잠시 미술인쇄업을 했다. 사업에 실패한 뒤, 전국을 떠돌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시골 책방에서 헨리 밀러의 『남회귀선』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삶을 살 때까지 도쿄(東京)에서 택시기사로 일했다. 그는 이러한 배경이 토대가 되어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원제: 『택시 광조곡』)를 발표했다.
1993년 최양일 감독은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를 제작하여 베를린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양석일은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식민지 시기의 일본을 살아가는 폭력적이고 괴물 같은 재일조선인을 그려낸 『피와 뼈』를 세간에 보여주었다.
소설 『피와 뼈』의 줄거리
일제강점기인 1923년, 제주도를 떠나 일본 오사카로 건너온 김준평. 그는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오사카로 이주한 후 이영희와 반강제로 결혼하여 딸 하나코와 아들 마사오를 낳는다. 그는 가정폭력을 일삼았으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집을 나가버린다.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그는 갑자기 어묵공장을 차린다. 어묵공장이 번창할 무렵 혼외정사로 낳은 아들 다케시가 찾아온다. 다케시는 김준평에게 돈을 요구하고 두 사람은 다툼을 한다. 이영희에게 얼마간의 돈을 얻어 집을 떠난 다케시는 히로시마의 한 카바레에서 야쿠자의 총을 맞고 허무하게 죽는다.
이후 김준평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기요코와 딴살림을 차린다. 고리대금업을 시작한 그는 점점 더 돈에 집착하게 되고 어묵공장은 결국 문을 닫는다. 딸 하나코는 아버지에게 벗어나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결혼을 한다. 김준평은 기요코가 병들자 새로운 내연녀인 사다코를 데리고 온다. 그는 사다코에게도 성적인 학대를 가한다. 기요코를 돌보는 것에 지친 김준평은 적신 신문지로 기요코의 눌러 죽인다. 살인 장면을 목격한 아들 마사오는 집을 떠나 태수와 영수의 양돈장에서 일을 한다. 이영희가 암으로 쓰러지자 마사오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상의하기 위해 김준평을 찾아간다. 하지만 김준평은 돈을 줄 생각 따위는 아예 가지고 있지 않았다. 김준평은 딸 하나코의 장례식에 갑자기 나타나 사위를 두들겨 패고 난동을 부린다. 그는 난동을 부리던 와중에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진다. 사다코는 김준평이 뇌졸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자 그의 돈을 챙겨 자식들과 도망가 버린다.
김준평은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다시 재산을 모은다. 아내 이영희가 죽자 장례식에 찾아간 그는 자신도 뒷정리를 해야 함을 느낀다. 김준평은 마사오를 찾아가 자신 밑에서 일할 것을 종용하나 아들에게 모진 말만 듣는다. 어느 날 김준평은 사다코의 어린 아들 류이치를 만나, 납치하듯 끌고 북한으로 가버린다. 그는 전 재산을 북한에 기부하고 가난한 생활을 한다. 김준평의 인색하고 몰인정한 성격은 류이치에게도 그대로 유전된다. 결국, 김준평은 아들의 방치 아래 낡은 초가집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일본 상영 당시 『피와 뼈』 영화 포스터
재일조선인 감독, 최양일
영화를 만든 사람, 최양일(崔洋一)은 재일조선인이다. 1949년 나가노(長野)현 사쿠(佐久)시에서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네 살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소학교 1학년 때 도쿄(東京)로 이사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좌익 활동가였다. 최양일은 도쿄조선고급학교를 다녔다. 그는 민족의식과 정체성에 대해 고뇌했다. 이 시기에 형성된 그의 가치관은 이후 그의 작품 곳곳에 반영되었다. “면면히 점철된 일본어가, 일본 제국주의 36년간의 한반도 식민지 시대 및 침략의 유산인 ‘재일’을 이야기할 때, 이 일련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사랑이라든가 연애라든가 하는 보통의 욕망을 누락시켰다. ‘환상의 조국’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재일조선인 최양일은 민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으로 규정되어져 버린 것과 다른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재일조선인의 삶 속에서도 각자의 다양한 개인의 삶과 존재가 있음을 인식하고자 했다. 최양일은 10대 후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해 나갔다.
최양일은 감독으로 데뷔한 후 자신의 가치관을 재일조선인을 다룬 영화 작품들을 통해 드러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재일조선인 공동체의 내부적인 갈등이나 세대 간의 갈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최양일은 재일조선인이란 원래 마이너 존재라고 생각했으며, 주류사회와 소통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재일동포 영화감독이며 극작가인 정의신은 최양일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최양일은 옛날부터 ‘나는 마이너 영화는 만들지 않는다’라고, ‘나는 메이저에서 뛴다’라고 이야기했다. 기본적으로 재일조선인이란 원래 마이너 존재이기 때문에, 그 마이너 존재를 마이너 영화로 만들어 버리면 하찮은 마이너가 되고 만다. 그래서 마이너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 자체로도 좋지만 자신은 메이저로 간다. 즉, 일본의 영화계, 일본사회에 대해 메이저에서 정면 돌파해 간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재일조선인이 불편한 사람으로 그려진 영화
『피와 뼈』의 주요 출연자는 기타노 다케시(김준평), 스즈키 교카(이영희), 타바타 도모코(하나코/김준평의 딸), 아라이 히로후미(마사오/김준평의 아들, 이야기의 화자), 하마다 마리(사다코/간병인이자 김준평의 두 번째 첩), 마쓰시게 유다카(신기/김준평의 친척 동생이자 사위), 오다기리 조(다케시/김준평의 아들, 서자인 셈), 나카무라 유코(기요코/김준평의 첩) 등이다. 최양일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주인공의 아들인 마사오가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 영화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배우로만 출연한다. 그는 평범한 외모이지만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상당한 매력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거칠고 비정한 인물인 김준평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김준평은 성공을 위해서 악착같이 일을 하면서 돈과 가부장적 지위에만 집착하는 괴물 중의 괴물로 그려진다. 돈만 밝히고 지독한 구두쇠인 김준평은 아내와 딸에게 거침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어묵공장의 직원들에게도 폭력과 악담,
그리고 저임금과 착취를 일삼는 인물이다.
러닝타임 2시간 20분 동안 영화는 보기 불편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영화는 김준평의 만행을 통해 어려웠던 당시 시대상, 가부장적 시대의 비참함, 재일조선인 아버지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타국인 일본에서 차별을 딛고 생존해야만 했던 재일조선인. 이 영화는 전후 어렵던 시절 비참한 삶을 살아낸 재일조선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김준평과 아들 마사오의 빗속의 결투
김준평 역을 연기한 기타노 다케시
재일조선인의 뼈, 조국
어두운 자막과 함께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시끌벅적한 한국말과 사물놀이 소리가 뒤섞인 것으로, 제주도를 떠나 오사카로 향해 가고 있는 배 위에서 들리는 소리다.
정의신은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최양일 감독은 일본으로 오는 장면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오사카는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하고, 도쿄보다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식민지의 사람들은 일본을 엘도라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일본으로 가면 돈도 벌고, 여자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생각했다. 모두들 성공을 꿈꾸며, 일본을 향해 왔다. 김준평도 역시 그랬다.”
최양일은 하드보일드 경향의 필름 누아르 장르를 통해 재일조선인을 표현한다. 피와 뼈가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것처럼,
영화에서 ‘피’와 ‘뼈’는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영화에서 피는 혈육과 동시에 폭력을 상징하는 다중적 의미를 내포한다.
그는 피를 통해 혈육의 폭력과 잔인성, 저항을 상징하고자 했다. 최양일의 영화에서 재현된 재일조선인의 폭력은 조국을 떠나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준평의 폭력성은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최양일의 영화에서 뼈는 근본, 즉 본질에 해당한다. 그의 영화에서 뼈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고향 또는 조국, 죽어서도 변질되지 않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최양일은 김준평을 통해 재일조선인 1세대의 지향점은 조국에 있었음을 그리고자 했다.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김준평을 태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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