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금)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한 성의여자고등학교에서 짧은 강의를 통해 학생들을 만났다. 재단에서 주관하는 ‘2022년 찾아가는 역사·독도 강좌’에 강사로 참여한 것이다. 담당 주제는 ‘고대 한일관계’였다. 어떻게 해야 강좌의 취지에 부합한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오후 1시부터 강의가 시작되므로 식곤증과 사투를 벌일 학생들이 그나마 재미있게 들을만한 강의 주제로 무엇이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에 이제는 십수 년이 지난 학부 시절 후배 한 명이 나름의 결의를 담아 소모임 게시판에 올렸던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성의여자고등학교 전경(성의여자고등학교 이용성 선생님 제공)
해당 소모임은 동양사에 관심이 있는 사학과 학부생들이 매주 주제를 선정하여 미리 공부를 하고 토의를 통해 각자의 생각을 교환하는 세미나 모임이었다. 문제를 제기한 후배는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가 체계화한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이 광개토왕비에 기록된 왜의 활동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이 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될까” 당대의 1차 사료인 광개토왕비에 왜가 백제와 신라를 복속시켰다는 내용이 보인다는 것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무엇보다 확실한 근거가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했을 터. 그는 자신이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빨간약을 먹었다 믿었고, 이러한 선각(先覺)을 바탕으로 선배 및 동료들의 국수주의를 계몽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문득 떠오른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고대의 한일관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주제이면서 정작 무엇을 근거로 그 주장이 전개되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종종 엉뚱한 오해의 대상이 되는 “고대 한일관계의 오해와 편견 바로알기 -광개토왕비를 보는 시각들과 임나일본부설-”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학생들을 만나자.
광개토왕비를 보는 시각들과 임나일본부설
‘임나일본부설’이란 “고대에 왜(일본)가 한반도의 임나(가야)지역을 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통해 직접 지배하고 백제와 신라는 간접 지배했다”는 주장임을 설명했다. 이어서 ‘임나일본부설’의 문제가 단순히 고대의 한일관계를 왜곡하는 것뿐만 아니라, 근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배할 때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일 뿐이라는 주장은 일본 측의 자료인 『일본서기』만을 근거로 했다고 했을 때 적확한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주장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당대의 1차 사료인 광개토왕비라는 데에 있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소개한 후배의 의문 또한 여기에서 출발했으며, 강의를 듣는 학생들 역시 교과서에 없는 생소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약간이나마 식곤증을 쫓아내는 듯했다.
광개토왕비의 이른바 신묘년조에는 “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 百殘□□新羅以爲臣民”(□는 판독이 어려운 글자)이라는 구절이 있다. 1883년 포병대위 사코우 카게아키(酒景信)가 처음 비문의 탁본을 일본에 들여온 이래, 일본 학계는 이 구절을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침공해 복속시킨 것으로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고대 왜의 한반도 남부지배설을 완성시켰다. 그들에게 광개토왕비는 『일본서기』의 고대 한일관계 기록, 즉 한반도 남부에서의 왜의 활동과 한반도의 여러 나라에 대한 우위를 입증해 줄 수 있는 객관적 기록이었다. 한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일본 학계의 주장에 대해 신묘년조의 주어를 고구려로 바꾸어 읽는 독법을 제시했고, 재일동포 역사학자인 이진희는 일본군 참모본부에 의한 비문 변조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비문의 탁본 제작 경위가 밝혀진 현재 비문 변조설은 설득력을 잃은 것으로 여겨지며, 최근에는 신묘년조의 주어를 왜로 읽어도 그것이 반드시 일본의 주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강의는 이상의 논쟁을 설명하고 마지막 결론을 항해 나아갔다.
강의를 듣는 역사 동아리 ‘규장각’의 학생들(이용성 선생님 제공)
임나일본부설의 입증에 실패한 일본 학계
신묘년조의 행동 주체를 왜로 읽더라도 그것이 일본의 주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까닭은 최근의 비문 이해가 비문을 기록한 주체인 고구려인의 의도를 염두에 둘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즉 신묘년조의 내용은 고구려인의 욕망을 반영한 것으로, 이를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치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광개토왕비의 내용을 통해 임나일본부설을 입증하려 한 일본 학계의 시도는 현재 완전히 부정되었다. ‘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적어도 십수 년 전의 후배처럼 단편적 지식을 근거로 고대의 한일관계를 오해하는 일이 없겠지’란 생각이 강의를 마무리하고 상경하는 기차에서 내 머릿속을 내내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십수 년 전 학창 시절의 기억에 전하는 일종의 해원(解)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창작한 '‘2022년 찾아가는 역사·독도 강좌’ 출강기 고대 한일관계의 오해와 편견 바로알기 -광개토왕비를 보는 시각들과 임나일본부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