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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침탈사 시리즈2
낭만, 은폐, 망각을 넘어: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일본인들
  • 전성현 동아대학교 교수


부산 부두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인들

[부산 잔교의 우메가카마루(梅ヶ香丸)와 쓰시마마루(對馬丸) 풍경, 출처 한국저작위원회, 2018년 공유저작물DB수집]


침략자

 

메이지유신 이래 조약 개정을 명분 삼아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노력하던 일본 정부는 무력을 앞세워 18762, 조선과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했다. 곧이어 부산구조계조약(釜山口租界條約)’을 체결하여 부산 초량항을 일본인 거류지로 설정하였으며, 원산, 인천 등이 차례로 개항되면서 일본인들이 차츰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1905년까지 일확천금을 노리는 개인적 욕망이든 제국주의적 침략의 국가적 욕망이든 조선으로 건너와 아래로부터 조선 침략을 감행했다. 또한 조선 내 거주지인 개항장, 개시장을 중심으로 점차 일본인 사회(거류지회, 거류민단 등)를 구성하고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더 나아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고자 한 일본 정부를 도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길라잡이 역할을 수행하는 등 조선의 일본 식민지화를 위한 첨병으로 활약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개항 당시 부산에 54명 남짓에 불과하던 일본인은 19053만 명을 넘어섰고 1910년 강제 병합을 전후해 2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제 이들은 조선 침략의 첨병에서 조선 지배의 풀뿌리 식민자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식민자



식민지에 군림하는 ‘식민자’ 일본인(조선 부산정거장 홈)

 

개항 이후 조선 침략을 위해 이주 정착했던 일본인들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일본인 사회를 형성한 이후 제국주의자로서의 제국의식과 식민주의자로서의 조선의식지역의식을 지니고 풀뿌리 식민자로서 그들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식민자로서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자치제는 물론 일본 본국 내의 참정권 운동과 청원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식민지 조선의 지방의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중앙과 지방정치를 통해 자신들을 위한 식민정책과 식민지배를 추진하였다. 또한 식민자 일본인이라는 정체성과 그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문화인 신사와 유곽을 지역사회에 설치하는 한편, 조선인 거주 지역까지 확장시킴으로써 식민지화를 심화시켰다. 특히 신사는 국가신도로 전환되어 일제와 전쟁에 봉사하는 인간을 만드는 중요한 토대로 기능했으며, 유곽은 식민주의 가부장제가 강고하게 존속하는 데 영향을 미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그뿐만 아니라 식민지에 일부 도입된 근대적 도시기반시설과 문화도 이들이 주도적으로 향유했다. 철도, 전차, 전기, 전화를 비롯해 여가, 관광, 소비 등 식민지에 도입된 근대 문화를 그들만의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누렸던 것이다.

 

경계인

 

물론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들도 모두 다 식민자로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니었다. 계급, 계층, 젠더적인 측면에서 하층에 속한 일본인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위계질서의 말단에 위치하더라도 대부분의 하층 일본인들은 이른바 일본인다움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며 그 경계 안에 머물고자 스스로를 규율하며 끝까지 식민자가 되려고 했다. 그래야만 식민자로서 조금이라도 식민지의 이익을 향유할 수 있었다. 다만 일부이긴 하지만 피식민자인 조선인과 관계 맺기를 통해 군림하고 향유하는 식민자가 아니라 식민지민으로 조선인과 함께 삶을 살아갔던 일본인도 존재했다. 1930년대 함경남도 흥남 지역의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에서 조선인과 노동운동을 함께 하다가 투옥되었던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가 대표적 사례이다. 물론 극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이들의 존재는 한일 간의 과거 극복과 탈식민화, 그리고 타자성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조선인과 함께 노동운동을 전개하다 투옥되어 9년을 복역한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중 ‘유일한 비국민’ 이소가야 스에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인과 함께 노동운동을 전개하다 투옥되어 9년을 복역한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중 ‘유일한 비국민’ 이소가야 스에지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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